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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읕 Jan 08. 2021

GIO STORY #1

2021년 1월 7일 목요일

지오 이야기


지오가 눈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돌이 채 되기 전에도 눈을 봤었고, 한달 전쯤엔 눈을 맞기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번 눈은 좀 남달랐다. 서울 교통이 마비가 될 정도의 폭설이었다. 도로에 갇힌 사람들, 여러 사고들. 안타까움이 컸지만 지오에게 제대로 된 눈을 구경시켜 줄 수 있다는 설렘도 약간은 공존했다.


재택을 좀 일찍 마무리하고 4시 반쯤 바깥에 나가보니 눈이 발목 정도까지 꽤나 쌓였다. 눈을 밟는 느낌도 뽀드득뽀드드득 남달랐다. 지오에게 좀더 깨끗한 눈을 밟게 해주고 싶어서 집근처 진관사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진관사로 올라갔다. 길가에 서서 지오가 눈을 만지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고 나도 눈을 집어서 지오 앞에 흩뿌려주기도 하면서. 계곡, 기왓장, 바윗돌, 소나무 따위에 눈 내린 풍경을 눈에 담으면서 진관사로 천천히 올라갔다. 주차장에서 사찰까지 대략 4~500미터쯤이었던 거 같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나도 소영이도 지오도 오랜만에 밖에 나와 모두 들떴다. 그런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너무 추웠다. 너무너무. 상상 이상으로! 그런데 신기한 게, 지오는 이제 조금씩 말을 배워가는 단계인데, 내품에 안겨있던 녀석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웠는지 “으춰~으춰~”라고 가르쳐 준 적도 없는 말을 또박또박 뱉으면서 고개를 내 가슴팍에 파묻는 거였다. 아, 위기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했던가! 오늘 지오는 춥다는 두 음절에 담긴 참뜻을, 또래 그 누구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뼛속에 새긴 게 틀림 없다.


그래도 이왕 올라온 김에 대웅전 앞에까지는 가보잔 마음으로 절에 들어갔는데, 왠걸 지나가시던 비구니 한 분이 지오에게 장갑 선물을 주겠다며 따라오라는 거다. 감사합니다하고 뒤를 따라갔더니 예쁜 초록색 털장갑을 선물로 주셨다. 새해 첫날에 절에 오는 아기들에게 주려고 장갑을 미리 사뒀는데 몇 개 남아서 주신다는 거였다. 장갑이 부들부들 따뜻하기도 했거니와 그 마음 씀씀이가 더욱 따뜻해서 연신 고맙다고 스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지오 이놈이 요새 말문이 트이면서 의사전달이 또렷해져서 인지, 스님 앞에서 고개를 세차게 절래절래하면서 아니! 아니! 하는 거였다. 나와 소영이 스님 셋 다 급당황, 뒤이어서 웃음.


 지오 뒤통수를 잡고 감사합니다 인사를 시키고 나서 나도 합장인사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지오를 번쩍 안고 차로 전력질주했다. 아니면 얼어 죽을 거 같아서.


손꼽힐 정도로 추운 날이었지만, 한없이 따뜻한 날로 기억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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