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까야에 들어온 남자는 로또에 맞은 형에게 전화를 건다.
분당 정자동 까페거리. 금요일 오후였다. 어둠이 거리를 슬금스금 덮으면서 장대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가게마다 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술 마시기 딱 좋은 날씨였다. 차가 다니지 않는 먹자 골목 안쪽에 작은 이자까야 가게가 하나 있었다. 테이블 10개 정도 있는 가게에는 서너 테이블만 손님이 차 있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가게 규모가 작아서 서로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진청색 트렌치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가게에 들어서 주방쪽으로 빙 둘러진 좌석에 앉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씩 남자를 향했다.
남자는 우산을 옆에 놓고 트랜치 코트를 벗어서 살짝 손으로 묻은 비를 살짝 털어내고는 옆에 빈 의자 위에 반으로 접어 등받이 쪽에 걸쳤다.
남자는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손바닥만한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었다.
그는 이내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했다.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하고 오뎅탕 하나 주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매우 우렁찼다.
잠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남자는 술과 안주가 나오자 세 번을 연거푸 소주잔에 가득 부어서 마시고는 오뎅을 하나 입에 넣고는 오징어 안주를 씹듯이 질겅질겅 씹어댔다.
하도 남자가 혼자서 부산을 떨어대어서 남자쪽을 향해서 앉아 있던 옆 테이블의 여자손님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뭔가 지루하던 차에 재밌는 일이라도 생겼다는 듯이 미소를 머금고 다른 일행들에게 턱으로 신호를 보내자 같이 앉아 있던 여자 손님들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남자는 핸드폰을 꺼내서 익숙한 듯이 한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따금씩 치아를 드러내면서 소리없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남자는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형, 로또 맞았면서?” 남자의 목소리는 음악을 뚫고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들렸다.
그 덕분에 순간 가게 안에 있던 십여 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남자 쪽으로 돌렸다.
“무슨 개소리냐고? 아니 다 알고 전화하는 거야. 그러지말고 나 5억만 주라.” 남자는 이미 전작이 있었던 것 같이 혀가 살짝 꼬여 있었다. 혀와 목구녕에 버터 칠을 한 것 같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그냥 욕이라면 인상을 찌푸렸겠지만 ‘로또’라는 단어에 이자까야 내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귀가 솔깃했다.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일시 중지되고 다들 그 남자를 한번씩 힐끔거렸다.
장대비를 털고 이런 시간에 일행도 없이 혼자 들어온 남자 자체도 의아한데, 그 남자가 전화를 어딘가에 걸었고, 그의 형이란 사람은 로또가 되었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에이 그럼 5천만원만 줘. 뭐, 로또 같은 것 된 것이 아니라고? 만약에 형이 됐으면 줬을 거야? 형 진지하게 말해줘. 안준다고? 에이, 뭐야. 그런 마음을 먹으니까 매주 복권을 사도 안되는거야. 형, 되면 줄거야? 정말 그래도 5천만원은 너무 크다고? 아, 형수 눈치도 보이고. 그렇지 그렇겠지. 형은 정직한 사람이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서 거짓말은 못하잖아. 그렇지 공무원인 우리 형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지. 그럼. 그럼. ”
얘기는 점점 흥미진진해 졌다. 사람들은 가게가 쩌렁쩌렁 울리게 통화하는 남자를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욕하지 말고, 그럼 5백만원만 줘. 뭐? 그것도 크다고? 공무원이 돈이 어딨나고?”
남자가 갑자기 킥킥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알았어, 형 그럼 1백만원만 줘. 정말 꼭 필요해서 그래. 정말로. 형수몰래 보낸다고 아 형 비상금이야? 그게. 눈물겹다. 정말 고맙다 형. 내 농담아니고 10배로 갚아주려고 해. 형.”
남자는 전화기를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상대방이 뭐라고 일장 연설이라도 하는 듯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그래, 그래, 알았어. 허투루 안 써. 어..지금 바로 계좌번호 보낼께”
또 고개만 끄덕였다.
“어, 로또 아니어도 그 정도는 줄 수 있다고? 고마워 형.”
'띵동.' 남자의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어, 지금 알람 떴네, 떴어. 어 받았어. 백만원. 와 우리형 대단하다. 지금 바로 보내다니. 내가 다시 봐야겠어. 고마워 형. 진짜로 보내줘서."
남자는 핸드폰을 마치 연인의 볼이라도 되는 냥 부벼댔다.
남자는 곧 전화를 끊을 태세였다.
“아, 참, 왜 전화했냐고? 아 그러네, 나 까먹을뻔했네. ” 술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잠깐만 있어봐. 형. 나 한잔만 마시고. 기다려. 기다려야 해.”
남자는 왼손으로는 핸드폰을 왼쪽 귀에 대고 오른손으로 소주병을 들어서 가득 넘치도록 따랐다.
그리고, 거의 감길 듯한 눈을 하고는 단숨에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오른손 손등을 들어서 입가에 묻은 술을 닦았다.
“휴, 어, 취하네. 오늘 사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한잔 했어. 형, 실은 나 로또 맞았어. 어, 1등 먹었어.
아니, 이번주 로또가 아니고 지난주 로또. 내가 오늘 확인을 한거지. 1등이 여덟명인데 그 중에 하나가 나 인거야. 아니 형한테 물어본거야. 무슨 5억이야. 아까 내가 물어봤잖아. 형이 물어볼 예상 질문을 내가 한 것이었지. 어 그것 확인하고 농협가서 27억 받았어. 어 세금빼고, 형이 아까 나한테 1백만원 보냈으니까. 난 형이 보내는 돈의 정확히 10배를 보내려고 했어. 어. 그래 1천만원 보낼게요. 일억 보낼 걸 그랬다고? 에이, 무슨 내가 형을 아는데 무슨, 형수가 그걸 허락했겠어? 그래 공 돈 천만원이 어디야. 아 구백이라고? 아 그러네 내가 형이 보낸 돈의 10배니까. 천 만원이 아니고 구 백이네. 하여튼 우리 형이 또 수학을 잘했지. 아무튼 잘 써. 더 달라고? 에이 무슨 그럼 형이 아니고 양아치지. 그래그래. 수고하고. 형수한테도 안부 전해줘. 그래 알지. 어 형 나도 사랑해. 빠이. 형.”
남자가 전화를 끊었다.
이자까야 안에서 누군가 박수를 쳤다.
그 박수소리는 곧 이내 모두에게 번졌다.
남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늘 여긴 제가 살게요.”
남자의 혀 꼬인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