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백이는 보이는 모든 물건들의 가격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점백은 가난하지만 아내와 함께 아들 한 명을 두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출근하는데는 보통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집에서 전철까지 걸어서 20분이 걸렸고 판교에서 갈아타고, 다시 신사에서 걸어서 10분정도 들어가는 곳에 작은 영상편집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직원은 겨우 30명 남짓하지만 그는 벌써 20년째 이곳에서 부장으로 근무중이다.
판교에서 경기도 광주쪽 초월역까지는 20분 남짓이지만 문제는 전철이 30분마다 보통 온다는 것이 문제였다. 원래 서울에서 살다가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 더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 선택한 곳이 이곳이었다.
점백은 뭐 크게 이루어 놓은 것도 없었지만 딱히 욕심도 크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십년전에 산 낡은 검정 나이키 운동화에 바지 밑단이 헤어진 검정 진바지를 입고 있었다. 낡은 주황색 배낭은 그의 아내가 그에게 사준 십 오년전 물건이있다. 그 안에는 항상 아내가 싸주는 점심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강남에서 점심값이 보통 돈 만원 가까이 하기에 아내가 점심값을 아끼라고 사 준 도시락이었다.
박봉에 시달리지만, 세 가족이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의 연봉이 나왔다. 이제 그의 나이는 딱 마흔이 되었다. 남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라면서 추켜세웠지만 그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영상편집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철에서 어떤 노부부가 탔다. 누가 봐도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할아버지는 정장을 입었고, 할머니는 고운 회색 한복 차림이었다.
“여기 앉으세요.”
“고맙네, 젊은이.” 할머니가 좌석에 앉았다.
“쟤를 그대로 두면 안되겠는데..” 그건 어떤 노신사의 말이었다.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시선이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점백의 뒤를 쫓았다.
그들의 머리에는 작은 뿔이 달려 있었다.
그날, 퇴근 길 지하철 안에는 우산을 쓴 사람들로 바닥이 물기와 진흙이 뒤섞였다.
초월역에 내려서 우산을 펴는 순간 점백은 번개를 정통으로 맞았다.
‘번쩍 !’
‘쾅’
“저기요, 여기 초월역인데요. 사람이 번개를 맞았어요.”
그렇게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는 응급실에서 긴급처치를 받았다.
새벽 6시에 그를 진료한 의사는 고개를 가우뚱했다. 일단 번개를 맞으면 머리가 다 타야 하는데 그가 막 진료한 환자는 넘어지면서 생긴 타박상 말고는 큰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번개를 맞았다고는 하지만 흔적은 그저 머리끝이 다 섰고, 끝이 바싹 2센티 정도 탔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혈압과 피검사, X레이를 했지만 큰 이상이 없자 어쩌면 번개를 맞았다는 사실 자체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는 환자에게 퇴원 권고를 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집에 온 점백은 정신없이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은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30분’
시계를 한번 힐끔 본 다음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방금 본 시계가 뭔가 좀 이상했다.
그는 다시 시계를 보았다.
‘왠 회색 종이가 길게 붙었네’
시계에 붙은 회색 종이를 떼려고 했는데 손에 잡아지지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건 종이가 아니었다.
그건 손에 잡히지 않는 회색 바탕에 흰색 숫자가 적힌 말풍선 같은 것이었다. 심지어 회색 태크는 투명해서 뒤가 살짝 비춰보이기도 했다.
숫자를 자세히보니 ‘₩20,000’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이 전자 시계는 3년전에 그가 마트에서 10만원을 주고 산 물건이었다.
‘엥, 이게 뭐지?’
거실로 나가면서 벽 등 스위치를 눌러서 불을 켰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 소파와 식탁 테이블이 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자세히 TV쪽을 보니 TV의 하단 구석에 또 회색 말풍선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거실의 TV에는 5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건 5년전에 50만원을 주고 산 물건이었다.
그는 매우 신기했다.
혹시 다른 물건에도 있는지 살펴 보았다.
식탁테이블에는 한번에 가격표가 보이지 않아서 한참을 살펴보니 왼쪽 구석쪽 다리 아래쪽에 조그맣게 회색의 투명한 태그가 붙어 있었다.
‘3만원’이었다.
자신의 욕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안경에는 3천원, 티셔츠는 9천원 반바지에는 5천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심지어 벽에 붙은 거울에도 3천원이라는 작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맞은 번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전에는 자신에게 이런 현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욕실의 모든 물품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쓰다만 비누에도 50원이라는 투명한 가격표가 붙어 있었고, 삼푸통과 샤워기에도 가격표가 달려 있었다.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코, 남편이 자는 사이에 장을 보러 나갔던 아내가 들어왔다.
점백은 자신에게 보이는 것이 아내에게도 보이는 것인지 궁금했다.
“당신 혹시 저기 저 가격표 보여?” 그는 아내에게 물었다.
“어제 번개 맞고 당신 머리가 좀 이상해 진 것 아닌지 걱정이 되네.”라고 아내가 점백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현상이 자신에게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이상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내가 그에게 다시 가격표 얘기를 했는때 그는 그냥 이젠 안보인다고 에둘러 화제를 바꿔 버렸다.
더 확인이 필요했기도 했고, 굳이 아내에게 확인도 다 안된 것으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곧 그가 보는 모든 물건에 가격표가 오직 그의 눈에만 보인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본능적으로 이것을 통해서 잘하면 돈을 벌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런 그의 능력으로 무엇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일반적인 물건들은 가격이 다 있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니까. 그것보다는 조금 일반인들이 확인하기 힘든 골동품이라면 어떨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골동품만 정확히 찾아내서 가치보다 싸게 살 수 있다면 돈버는 것은 보장된 일일터였다.
문제는 사진만으로는 그 가치를 알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실제 눈앞에 보이는 물건에만 말풍선이 보이는구나.’라고 그는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물건의 소유자들이 지방에도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는 일일이 찾아가기는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만으로 1차 선별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골동품을 보는 안목부터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도서관에 들러서 관련된 책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하는 와중에 사이사이 골동품 사이트에 접속해서 열심히 골동품을 찾아서 보았다.
그렇게 한달 즈음 지나자 그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도자기의 역사와 유래 그리고 특징을 알게 되었다. 가구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는데 자개장이나 한약장, 만들어진 층에 따라서 이층장과 삼층장 오층장 등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짧은 기간의 공부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는데 한참을 또 그렇게 자료들을 찾아복 공부하고 하니 이제는 골동품의 특징을 좀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여전히 그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접속해서 일단 사진으로 봐도 가능성이 보이는 골동품을 찾아보고 있었다.
대다수의 물건들은 볼품이 없었다.
당연하지만 사이트에서 보이는 사진만으로는 말풍선이 뜨질 않아 가치를 바로 알 수는 없었다.
실물이 아니어서 말풍선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지만 사진만으로도 가치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골동품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사진으로 보기에도 꽤나 괜찮아 보이는 접시를 하나 발견했다. 그릇의 표면에는 선의 흐름이 유려했고, 꽃과 나무가지가 정교하게 그려진 접시였다. 판매가는 5만원이었다.
판매자는 ‘아버지가 보관해 오시는 접시인데 이제 더는 필요가 없어져서 판매합니다.’하고 사연까지 적어 놓았다. 판매자의 판매지수를 확인해 보니 신용은 높아서 사기의 위험은 적다고 판단했다. 하긴 5만원에서 사기를 당해봐야 뭐 얼마나 피해를 당하겠는가. 그는 혼자 실소를 지었다.
다시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고 그는 사진을 한참동안 살펴보았다. 여느 예사 물건 같지 않았다.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오후내내 들자 마음에 결심을 하고 그는 그렇게 연락을 취했다.
판매자는 무척이나 반가워 해주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도 연락이 없던 차에 반갑다면서 문자를 보내자마자 1분도 안 지나서 답장이 왔다.
그는 거래자를 만나러 갔다. 접시의 판매가격은 5만원이었다.
판매자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서 만났다. 판매자는 손에 종이백을 하나 들고 서 있었다.
그는 판매자가 내 놓은 접시를 보는 순간 그 접시 옆에 300만원이라고 녹색 말풍선이 적힌 것을 보았다.
‘빙고’
심장이 요동쳤다. 그는 판매자에게 현금 5만원을 내고 그걸 사 왔다.
집에 와서 식탁 테이블 위에 접시를 놓고 접시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은은한 옥빛에 실금이 군데군데 가 있는 오래된 접시였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 채비를 하고 인사동에 나갔다.
종이에 잘 포장한 접시를 내 놓으니 금테안경 낀 골동품 가게 사장은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한 100만원 가치가 있다고 팔 의향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점백은 이미 가치를 알고 있기에 300만원을 요구해 보았다.
골동품 가게의 나이든 사장은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어허,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보실 줄 아시네요. 어디 다시 한번 봅시다.”
사장은 책상 서랍에서 손때가 묻은 대형 돋보기를 가지고 와서 조명까지 비춰가면서 다시 상세히 접시를 살폈다.
“판매자 분 직업은 모르겠지만 그건 물건의 정확한 가치가 맞기는 해요. 하지만 우리는 이걸 사서 우리가 사용하는 게 아니어서 마진이 좀 남아야 합니다. 당장 매수자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50만원을 더 얹어서 150만원에 팔려면 파시고 아니면 그냥 가지고 가셔도 좋습니다.” 골동품 사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점백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건 사장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사장님 말씀도 일리가 있네요. 알겠습니다. 150만원이면 저도 만족합니다.”
점백은 손을 내밀었다. 사장이 악수를 받아주었다.
원래 가치의 절반인 150만원이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기에 그는 흥분했다.
5만원에 산 접시를 통해서 하루 사이에 무려 30배나 벌었으니까.
그는 매우 만족했다.
세상의 모든 돈을 다 벌 것만 같은 자신감이 올라왔다.
이제 자신은 인간 자동 가격감정사였다.
지구상의 유일한 인간일터였다.
이런 가격표가 사람에게는 없을까 하고 면밀히 아내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아내에게는 그런 가격표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하철에서도 그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에게는 가격표가 없었다. 그가 들고 있는 가방이나 옷에는 가격표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 사람의 가격표는 아니었다.
그는 욕실 거울에 서서 자신을 살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는 가격표가 있지만 그건 자기 자신은 아니었다.
자세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욕실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상체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가격표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아내의 화장대 위에 손거울이 보였다. 그걸 들고 다시 욕실로 갔다.
손거울을 들어서 자신의 뒷통수를 한번 보고 싶었다.
손거울을 정확히 대고 욕실 거울을 보는 순간 그의 동공이 커졌다.
그의 뒷통수에는 보라색 말풍선이 떠 있고 그 안에는 선명하게 1,000억이라고 적혀 있었다.
1천억이 맞나? ‘0’이 하도 많아서 그는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읽었다.
정확히 1천억이 맞았다.
‘에이 내가 1천억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도 안돼.’
사람이 유일하게 단번에 시선이 가지 않는 곳이 자신의 뒷통수인데 그곳에 가격을 적어놓다니 당연히 거울로 비춰봐도 잘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건 어떤 숫자인지 의미는 와 닿지 않았다. 본인이 1천억을 벌게 된다는 것인지 자신의 가치가 1천억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본인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동안 하는 일마다 안 풀려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었는데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숫자는 자신것만 보이는 것 같았다.
욕실에서 나와서 아내의 뒷통수를 보았지만 아내의 가격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 요즘 정신이 없어보여, 얼른 씻고 나와서 출근 준비해요.”
그가 아내 뒤에서 아내의 몸에도 가격표가 있는 지 구석구석 살폈지만 아내에게서는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에서도 사람들 몸에는 없었다. 지하철에서 여성들이 들고 있는 가방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재밌었다.
어떤 여성은 명품 디자인을 한 가방을 들고 있었지만 가격표에는 달랑 1만원으로 적혀 있었고, 어떤 여성은 낡은 가방인데 100만원으로 적혀 있었다.
그 차이가 뭔지는 한번에 와 닿지는 않았다. 아마도 진품과 가품의 차이인 듯 싶었다.
회사일을 하다가도 짬이 나면 그는 중고품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골동품은 거의 다 가짜였다. 일천 만원짜리 물건이라도 더 좋은 가치라면 살 의향이 있었다.
그는 눈을 부라리고 중고품 사이트를 샅샅이 살폈다.
하루는 조선백자라고 하면서 감정서까지 있다고 하는 물건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사진까지 올라왔다.
감정서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다.
하얗고 둥근 도자기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진품처럼 보였다.
그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1천만원에서 단 한푼도 깍아드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판매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달항아리 옆에 뜬 말풍선을 보았다.
거기에는 달랑 단돈 5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0’을 정확히 손가락으로 꼽으면서 세었다. 50만원이 맞았다.
“죄송하지만 이거 중국에서 사 오신건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이게 모조품 같네요. 아무튼 제가 찾는 물건은 아닙니다.”
점백은 그렇게 거래를 중단하고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골동품 만으로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옛날 가전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이쪽은 약간의 블루오션이었다.
오래된 라디오나 축음기를 5만원이나 10만원에 싸게 사서는 중고 도매시장을 찾아가서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업자들에게 30만원이나 50만원에 다시 팔았다.
하루에 50만원 100만원은 그냥 벌리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경동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을 천천히 돌았다.
그런식으로 그의 통장에는 조금씩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보물창고였다.
한번은 중고 가구점을 지나가는데 이렇게 살펴보니 뭔가 묵직한 납덩어리처럼 생긴 것이 있었다.
다른 것들은 그냥 20만원 30만원 가격표가 보였는데 거기 떠 있는 말풍선에는 5억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님, 이것도 파는 거에요?”
“어, 그건 납덩어리에요. 안그래도 누가 가구를 팔면서 내 놓고 갔는데 처치곤란이었는데 10만원만 주소.” 가구점 사장은 선심쓰듯이 말했다.
점백의 가슴이 살짝 뛰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말풍선의 효과에 대해서도 확실한 검증이 될 터였다.
점백은 그걸 사가지고 왔다.
창고처럼 사용되는 건넛방문을 걸어 잠그고 쇠톱과 저울을 가지고 들어갔다.
집에 와서 납 덩어리를 통째로 무게를 달아보니 12kg이었다.
쇠톱으로 가운데를 잘랐다.
예상대로 사각 납 덩어리는 금을 납으로 감싼 것이었다.
그날 저녁내내 밤 12시까지 납과 금을 분리했다.
금의 무게만 재보니 5kg이 넘었다.
가격은 시가 5억원에 달했다.
다음날 종로 단성사쪽에 즐비한 한 곳을 정해서 금은방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물건이 있다고 하니 지금은 돈이 없고 삼일 정도 후에 오면 돈을 마련해 놓겠노라고 했다.
사진을 보내주니 바로 사겠다고 한다.
결국 금을 팔고 5억원을 받았다.
그날 저녁 샤워를 하면서 보니 그의 머리 뒤에 가격표는 994억하고 나머지 숫자들이 복잡하게 적혀 있었다.
‘아’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머리뒤에 있는 말풍선 숫자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자신이 보고 살 수 있는 물건의 가치인 듯 싶었다.
매일 조금씩 그리고 이렇게 로또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뭉칫 돈이 들어오자 그는 오만방자해졌다.
어제까지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던 그의 아내가 갑자기 뚱뚱하고 나이들어 보였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의 아내는 틈만나면 반찬을 집어먹고 반찬 묻은 손가락을 누렇게 때가 탄 앞치마에 쓱쓱 닦았다.
그만큼 그녀는 주방에 서서 가족을 위해서 식사를 준비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까지 잘 키워주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내였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자만과 교만이 자라났다.
“저것 봐, 시련보다는 돈을 주면 달라지잖아.” 신사가 밑에 눈이 빨갛고 뿔이 달린 아이들을 놓고 한마디 하는 꿈을 꾸었다.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끝이 포크처럼 생긴 꼬리들을 깔고 앉아 있었다. 꼬리의 두께가 엄지와 중지로 감아도 안 잡힐 만큼 두꺼워보였다.
눈을 뜨니 땀이 쫙 났다.
점백은 꿈 내용이 마치 자기 자신을 놓고 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얘써 무시했다.
‘이런 개꿈이 있나.’
점백이 낮잠에서 깬 것을 보고 그의 아내가 말했다.
“여보 저녁 먹어요.”하고 돌아보는 아내를 보면서 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아내 얼굴의 자글자글한 기미 주근깨들을 보았다. 그는 아까 까페에서 본 예쁜 알바생이 생각났다.
그는 단숨에 아내에게 이혼을 얘기했고, 그가 지금 사는 집과 현금 10억원을 주겠다는 말에 아내는 ‘계’라도 탄 듯이 눈이 동그래졌다.
“당신이 10억이 있기는 해? 그래, 좋아. 얘 다 키웠고 당신 코고는 소리가 지긋지긋했는데 잘 되었네. 그 돈이면 남은 여생은 편하게 살 수 있겠네. 고맙네. 고마워. 당신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잘 살아. 잘 살아 보라고.”
아내는 선뜻 이혼에 동의했다. 결혼한지 15년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상호 동의하에 끝이 났다.
그는 중학생 아들까지 잘 키워주겠다는 아내의 말에 금을 현금으로 바꾼 돈 5억과 그가 회사에 희망퇴직을 내고 받은 돈 5억원을 합쳐서 10억원을 아내에게 위자료로 내밀었다.
아내는 점백을 사랑하고 있었다. 얼마전 회사를 잘릴 뻔한 위기도 부부는 슬기롭게 넘겼었다. 그녀는 점백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 뭔지 모르지만 지금 남편은 얼마전까지 회사에서 실적압박으로 힘들다고 어깨가 축 늘어져서 주말에는 소파에 누워 리모콘만 쥐고 있던 남편이었다.
‘그래, 결혼하고 15년간 아이들 같이 잘 키웠으면 나 할일은 다했지. 뭐.’
아내는 새롭게 변모한 남편의 모습에 자신은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기꺼이 이혼에 동의해 주었다.
점백은 아내와 이혼서류가 마무리 되는날 짐을 챙겨서 인근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80만원의 원룸이었다. 그는 날아갈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다.
자신은 이제 돈만 벌면 된다. 돈 벌어서 새로운 제 2의 인생을 살아야지. 세상은 전부 그에게 돈을 벌 기회를 줄 것이기에 그는 자신 있었다. 다시 예쁜 여자를 만나서 결혼도 해야지. 그는 아무도 없는 방에서 천장을 보면서 웃었다.
다음날 부터 그는 헌책방을 돌면서 책을 쭉 살펴 보았다.
그의 눈에는 다 쓸모없는 금액들이 즐비했다.
눈으로 가격표를 쭉 살폈다.
‘3천원, 5천원....30,000,000,000원’
뭐, 300억이라고?
그의 눈이 한 뭉태기의 책에서 멈추었다.
구석에 쌓인 책들 중에서 중간 눈 높이 정도에 위치한 책 뭉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장님, 저건 얼마죠?”
“그건 ....좋은 물건입죠.” 사장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까 얼마냐구요.”
“저건 못해도 1억원은 받아야 합니다.”
헌책방 사장의 이마에서 땀이 찔끔 흐르는 것 같았다.
“아마 먼저 오신 분이 계신 데 그분도 생각을 좀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헌책방 사장은 오랜 시간을 장사해 왔다. 그는 어떻게 해야 물건을 쉽게 빨리 파는지 잘 알고 있었다. 헌책도 따져보면 희귀품이었다. 절반이 되고 나면 대부분의 책들은 분실되고 파손되고 정상적인 것들은 잘 남아 있지 않다. 더구나 지금 그가 가진 저 책은 그가 튕길 만 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었기 때문이었다.
점백은 아내에게 위자료를 주느라 호주머니에 돈이 한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서 100억이라고 가치 판정이 나온 물건을 보고 온 그는 눈이 뒤집어 졌다.
가슴이 마구마구 뛰었다.
이거 한방이면 그의 인생이 확 바뀔 찬스였다.
그는 이것이 찬스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무슨 수를 써서도 잡아야 해.’
하는 수 없이 그는 대부업체를 찾아갔다.
“연리 50%입니다.”
“딱 삼개 월만 빌릴게요.”
“선이자를 떼고 줍니다.”
“선이자라면?”
“1억원을 빌리면 50%니까 5천만원만 나가는거죠.”
참 말도 안되는 계산법이다. 그러니 대부업체들이 욕을 바가지로 쳐 먹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 점백이 불법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대부업체는 그랬다.
“그럼 2억원을 빌릴게요.”
지금 눈앞에서 300억짜리 가치 있는 책을 본 그로써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물건을 사서 바로 팔고 돈 2억원은 껌 값일터였다.
신체포기각서까지 쓰고서 그는 선이자를 뗀 1억원을 빌릴 수가 있었다.
다시 헌책방을 찾았다.
그 물건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10권의 책은 탄탄한 끈에 묶여 있었다.
말풍선은 그 중 한 곳에 색이 보라색으로 나타나 있었다.
보라색이면 최소 억대의 물건을 나타냈다.
“한번 좀 봅시다.”
“죄송합니다. 손님 여기서 보는 것은 안됩니다.”
“네? 보지도 못하고 사야 한다고요?”
“손님, 저게 어떤 책인지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1억원씩이나 주고 사려고 하시는 것이고요.”
“저게.....” 점백은 말끝을 흐렸다.
“네, 훈민정음 해래본입지요.”
점백은 그 옆에 가격이 보이는 말풍선칸을 다시 쳐다보았다. 숫자 8이 정확히 90도로 옆으로 누운 모습이다. 소위 ‘무한대’를 가리키는 가격이었다.
현찰로 가지고 간 1억원을 건네고서야 그 물건을 차 트렁크에 실을수가 있었다.
그는 그날 저녁 TV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속보입니다. 지난 달 간송미술관에서 도난당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범인의 CCTV 장면이 나왔습니다. 이 화면속의 인물을 잘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
CCTV속 얼굴은 자신이 물건을 산 바로 그 중고책 서점 주인이었다. 점백은 아찔해졌다.
2억원이나 빌려서 산 책은 사실상 분실당한 국보 70호 작품이었던 것이다.
점백은 조심스럽게 인사동 골동품 상 한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혹시 만약에요, 훈민정음 해례본을 팔려고 한다면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가격은 글쎄요. 못해도 100억이나 200억? 뭐 매수자가 꼭 사고 싶다면야 1천억도 가능하겠지요. 근데 문제는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잃어버린 것이라, 요즘은 구매자를 찾을 수가 있을까요? 워낙 인터넷이 발달해서 이제 유명 제품은 누구 것인지 소유자가 확실해서...매수자 입장에서도 그걸 사서 전시도 하고 자랑도 하고 해야 하는데...지금은 쉽지 않지요. 허허. 그나저나. 그걸 가지고 계신가 보네요?”
점백은 놀라서 전화를 끊었다.
그는 다시 대부업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슈, 내가 그걸 대신 받아서 뭐에 쓰게? 난 그 딴 종이에는 관심이 없소. 하여튼 3개월 후에 봅시다. 참, 당신 눈 1.2에 1.2 확실하지요?”
“네 맞습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다.
다음 날 집을 나서는데 경찰이 막아섰다.
“잠시 집안 수색 좀 할게요. 여기 긴급 수색영장입니다. 제보가 들어와서요.”
정복을 입은 사내 둘이서 경찰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점백은 장물구입한 사람으로 구속이 되었다.
재판이 벌어지자 사안의 심각성으로 고려해서 징역 3년에 벌금 1억원이 부과되었다.
그는 벌금을 내지 못해서 노역장에서 작업을 했다.
마침내 3년의 시간이 지나서 출소를 했다.
교도소 앞에는 검은 색 세단이 있었다.
대부업체 사장이 치렁치렁 금목걸이에 금팔찌를 나고 나타났다.
“바로 갚을게요.”
“늦었어요. 사장님.” 사장이 금니 사이로 침을 바닥에 탁 뱉었다.
“저 사실 물건의 가치를 볼 수가 있어요. 정말입니다. ”
그날 밤.
대부업체 사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들의 가격을 맞추는 그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자까지해서 갚을 돈이 10억이 넘어요.”
“10억이 될 때까지 한번 최선을 다해 보리다.” 점백은 빚을 갚아야 자유의 몸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20억.” 사장이 흉터진 볼에 힘을 주었다.
“좋소.”
그렇게 점백은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의 물건 가치를 보고 판단하는 감정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화를 내던 사장도 점백 덕분에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보고 돈을 벌게 되니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것 같았다.
사업은 점점 번창했다.
사장과 함께 일을 하면서 사장은 점점 돈을 벌었다.
대부업체 사장의 자동차는 그랜저에서 제너시스로 그리고 외국산 자동차로 점점 바뀌었다. 그에 비해서 점백의 삶은 그냥 사장이 주는 기본급으로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돈을 벌지 않았나요?” 점백이 어느 날 볼멘 소리를 했다.
언제부터인가 말풍선으로 선명하게 보이던 가격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전파를 잘못 잡은 TV화면처럼 지지직 대기 시작했다.
혹시 해서 손 거울을 들고 화장실 거울에 뒷통수를 비춰보았다. 쓰여진 금액은 겨우 몇 백만원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전부 대부업체 사장의 물건을 감정하는데 써버린 것 같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것이 그의 가치인지 그가 향후 더 감정할 수 있는 물건의 가치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마침내,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다.
며칠 후, 어떤 남자가 돈을 빌리려고 명품시계를 가지고 왔는데 말풍선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은 숫자가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점백은 말하면서 사장의 눈치를 살폈다.
사장은 소파에 앉은채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자 점백은 너무나도 졸렸다.
음식에 수면제라도 탄 듯 싶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이 너무 아파서 잠에서 깼다.
눈을 분명히 떴는데 방안은 컴컴했다.
“불 좀 켜주세요.”
그는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푹 잔 것 같은데 아직 한밤중이라니.
“이미 대낮이야. 24시간이나 지났다고.” 사장의 목소리였다.
사장은 말을 계속했다.
“이걸로 갚은 셈 치자고, 그간 고생이 많았어. 당신 덕분에 돈 좀 벌었네. 그래서 두 눈으로 갚는 것으로 했지. 혹시라도 당신이 다시 가격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경쟁회사로 간다면 내 손실이 커진다고. 그래서, 어차피 당신이 써 놓은 신체포기각서가 있으니, 난 나름 합법이야. 자 당신은 이제 자유니까. 어디든지 가도 좋아. 일단 적응은 해야 하니 암튼 침대옆에 그 지팡이는 내가 하나 가져다 두었어. 맘대로 가도 좋아. 당신 발목에 이제 더이상의 쇠사슬도 없으니까. 난 그럼 바빠서 이만.”
탁 하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점백이는 당장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아내도 없이.
어디선가 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지 않는 그의 눈앞에 양복을 입은 신사의 모습이 선명이 보였다. 그는 강당에 서서 많은 숫자의 정체모를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점백의 눈에 감긴 피가 묻은 붕대가 보였고, 낡은 침상에 누운 점백의 모습이 모니터로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강연중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저것 봐, 내가 몰락한다고 했지. 인간은 저렇게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다 주어야 해. 옛날처럼 박해하고 하면 더 뭉치고 기도하고 한다고. 우리 선배들은 잘못 접근한거야. 이렇게 마구마구 퍼 줘야 인간 바탕의 교만과 자만 그런 본질이 우러나오지. 이제 우리쪽으로 추가 기울었으니 언제든지 쟤가 이제 낙담해서 한강다리에서 뛰거나 하면 바로 수거하자고. 크크크”
강연자의 뒤로 큰 플랭카드가 붙어 있었다.
‘ 선한 인간을 공략하기위한 새로운 전략에 대한 이해 ’
머리에 작은 뿔 달린 참가자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짝.짝.짝.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