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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Oct 01. 2024

경쟁자

정용이는 찬주의 모든 것이 부러웠다. 심지어...

제목 : 경쟁자




찬주와 정용이는 같은 과 친구였다. 나란히 군대를 다녀왔고, 나란히 취업을 했다. 그것도 같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둘의 차이는 키 밖에 없었다. 찬주는 키가 컸고, 정용이는 키가 작았다. 아, 머리는 자신이 찬주보다 훨씬 좋다고 정용이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정용이는 재학중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찬주는 연애결혼을 통해서, 동네 교회에서 만난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정용이는 선을 봐서 무남독녀 외동딸이면서 부자집 딸과 결혼했다. 




SNS 서비스에 가입을 했다면서 하루는 찬주가 정용이를 같은 SNS로 초대했다. 정용이가 보기에 SNS는 참 신기했다. 내가 친구로 둔 상대가 올리는 모든 사진이나 글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아도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알람까지 오니 마치 친구가 발행하는 친구의 일상 신문을 구독하는 느낌이었다. SNS 덕분에 정용이는 찬주의 아내가 임신을 했고, 곧 아기를 맞이할 것이란 것을 알았다. 정용이는 그날 아내와 거사를 치렀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서 아내가 임신했다는 얘기를 듣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 




‘SNS라는 것이 삶에 살짝 자극되고 좋은데.’


그 때까지는 그랬다. 




신입사원이다 보니 이것저것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다가 알람이 울려도 제대로 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그 주말에 놓쳤던 SNS 알람들을 챙겨 보다가 찬주의 소식도 올라온 것을 보았다. 그것은 찬주가 이번 여름 첫 휴가를 가족들과 일본 오사카로 예약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정용이는 갑자기 국내여행을 가려고 했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제주도에 가서 아내의 친정에 들릴려고 했던 계획을 억지로 취소했다. 아내가 못내 서운해 했지만 정용이는 내 회사에서 첫 여름휴가인데, 이 참에 우리도 일본에 한번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친정은 어차피 얘를 낳고 가도 되니 아내는 선뜻 남편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다. 그는 토요일 내내 컴퓨터에 앉아서 여행상품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서 일본 도쿄로 3박 4일 여행 상품을 신청했다. 그렇게 일본 도쿄로 여행을 갔다. 여행사를 쫓아다니는 여행은 바빴지만 그래도 부부의 첫 해외 여행은 그 자체로 새롭고 즐거웠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글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SNS에 이렇게 올렸다. 


‘일본 도쿄 처음 와 본 여행에 , 사랑하는 아내와 와서 그런지 너무 좋음’ 


그렇게 올리고 찬주의 사진과 글을 보았다. 




찬주는 아내의 배가 나온 사진을 보여주면서 산 달이 한 3개월도 남지 않았다면서 태명을 지었다고 올렸다. 그리고 오사카와 교토의 멋진 신사들과 절들의 사진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정용이는 여행사 버스 안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도 좀 한적한 교외로 여행을 갈 걸 그랬지?”


아내는 말없이 머리를 정용에게 기댔다. 


“당신 무슨 얘기할때마다 요즘 ‘우리도’란 말을 쓰는데 누굴 쫓아하는거야?”


“아냐, 무슨 내 말 습관이 그래.” 정용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회사에 복귀하니 바빴다. 연말이 되고 찬주의 글 알람이 떠서, 알람을 눌러서 링크가 연결된 SNS에 들어가니 찬주가 딸 아이의 손목 태그가 붙은 사진을 올렸다. 


‘사랑하는 딸 00이가 태어났다. 더 열심히 살자. 잇쇼겜메이.’




정용이가 찾아보니 ‘목숨을 다해서’란 의미였다. 


“아니 그냥 한글로 쓰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찾아보게 만들어?” 괜한 짜증이 올라왔다. 




정용이는 가만히 아내의 배를 바라보았다. 


‘나도 곧 아빠가 된다고.’




회사와 집을 오다가 보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이가 태어났다. 


정용이는 회사와 집 그리고 아이를 낳은 아내와 아이까지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더 없어졌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 또 2년이 지났다. 


회사는 만 2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대리 직급을 부여했다. 


직원 이탈을 막기 위한 자구책 중 하나였다. 




대리 직급도 달았겠다 간만에 여유로운 마음으로 SNS에 접속했더니 찬주의 글이 보였다. 


찬주는 아이가 태어나서 아내가 이제 그냥 걸어다니기 힘들다고 새 차를 구매했다고 올렸다. 


사진에 올라 온 자동차는 하얀색 차 인데 멋져 보였다. 차종은 알 수가 없었다. 친구들 모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정용이는 그날 저녁 피곤해서 소파에 널부러져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도 차 한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이제 세 식구인데 말야. 얘 병원 급히 갈대도 필요하고.”


그렇게 정용이도 차 구매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 차를 고르다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찬주에게 전화 했다.


같은 회사이지만 부서가 틀리고 층도 틀려서 굳이 찾아가서 얘기하기도 뻘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만이야, SNS보니까, 너 차 산 것 같더라. 모델이 뭐야?”




“K5 샀지. 장기렌트카로 샀어. 그게 싸더라고.” 찬주는 바쁘다며 바로 통화를 끊었다. 




정용이도 K5가 1,600CC급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도 1,600CC급의 아반떼 급으로 샀다. 


더 큰 2천 CC급으로 사려고 했지만 그만큼 유지보수료가 많이 들어가는 점이 싫었다. 


찬주가 큰 배기량의 자동차를 선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1년에 한번씩 전체 등산회가 있었다. 인근 관악산을 오르고 내려와서 오리백숙을 먹는 코스였다. 오전 9시에 사당역에서 모였다. 회사의 산악회 주최로 신청을 온라인으로 받는데 거기에 찬주의 이름이 있었다. 




그래서 정용이도 이름을 적어 넣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싣고 올라갈 등산가방에 자원자를 찾고 있었다. 


“여기 가방에 여유 있는 사람들 없나요?”




찬주가 손을 번쩍 드는 모습이 보였다. 


“오케이 여기에 막걸리 4통하고 물 500미리 10개. 김밥도 좀.”


산악회 신임 총무가 반색하면서 찬주의 등산배낭을 벌려서 쌓인 음식들중에서 몇 개를 넣었다. 




“자자, 과장급 이하 젊은 친구들 팍팍 도와주세요.” 신임 총무는 일행들을 향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몇 몇의 사람들이 나서서 자신의 배낭을 열었다. 




정용이는 인파에 묻혀서 안들리는 척하고 있었다.


‘무거우면 올라갈때 힘들어. 난 더구나 무릎도 안 좋잖아.’ 




코스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정용이는 가벼운 짐을 든 덕분에 사람들의 느린 걸음을 보면서 위로 쑥쑥 올라갔다. 


거기엔 짐을 별로 안들고 십분 정도 일찍 출발한 여직원들이 있었다. 


찬주가 뒤에 붙었지만 아무도 길을 비켜주지 않아서 한동안 조용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여직원들의 말이 들렸다. 




“영업부의 정찬주 대리님은 꼭 골든리트리버같아. 어쩜 저렇게 착하시니.”


“저번에는 내가 회사 생수통을 갈려고 드는데 글쎄 자리에서 성큼성큼 와서는 한팔로 들어서 팍 꽂더라. 너무 멋졌어.”


“결혼했어?”


“그럼, 연애결혼했는데 아주 깨가 쏟아진다는 소문이 자자해.”




정용이는 같은 과를 졸업하고 자신이 훨씬 능력이 많은데, 찬주가 인정을 받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신은 자금부서에 있다. 자금부는 인사과와 함께 나름 힘이 있는 부서다. 정용이는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속도를 조금씩 늦추었다. 마침내 앞의 여직원들이 옆의 공터쪽으로 잠시 쉬기 위해서 빠지자 모자를 눌러쓰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일년에 한 두번은 이런 식으로 회사 전체 구성원이 모였다. 어느 해는 등산이고 어떤 때는 운동회가 있거나 외부 강사를 모시고 세미나를 했다. 




“정용 대리님이 정찬주 대리랑 같은 과 나왔다고 들었어요. 두 분은 좋겠어요. 같은 과 친구가 같이 성장하니까요.” 인사부 직원이 아는 체를 했다. 




“좋기는 한데요. 가끔 제 앞길을 막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하하하.” 정용이는 농담으로 답했다. 




질문했던 상대방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용을 한번씩 더 쳐다보고 지나치곤 했다. 




또 일년이 지났다. 그날은 새해 승진자 명단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당연히 찬주와 정용 둘다가 승진 대상자였다. 총 12명의 과장승진 가능자들이 있었다. 정용도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앞에 섰다. 단 4명만이 승진이 확정되었는데 그 중에 찬주의 이름이 있었다. 정용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다시 뜨고 봤다. 자신의 이름이 빠진 것 보다 찬주의 이름이 있는 것이 더 그를 자극했다. 




“아니, 나랑 찬주랑 다른게 뭐가 있다고 찬주만 과장을 시키는 거야.”


집에 오자마자 아내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당신은 더 크게 쓰려나 보죠. 대기만성이라고 하니 기다려 봐요.” 현명한 정용의 아내는 정용을 진정시키려고 애썼지만 정용의 마음은 이미 삐뚤어지고 있었다.  




정용이는 마음속에서 뭔가가 뾰족하고 튀어 나오는 것 같았다. 


아내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퇴근길에 평소 연락을 주고 받던 헤드헌팅 회사의 김점백 부장과 통화를 했다. 부장은 바로 시간이 된다고 반색하면서 원래 있던 약속도 취소한다고 말했다. 소주나 한잔 하자고 불렀다. 정용의 집 인근의 이자까야였다. 소주에 삼겹살숙주볶음이 나왔다. 안주는 정용이 보고 시키라고 했는데, 정용이는 그가 좋아하는 안주랑 소주를 한병이나 비웠다. 




어느정도 취기가 오르니 김 부장은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마침 딱 박정용 대리님 같이 전문 자격증도 있는 실력자 분을 과장급으로 찾는 회사가 있다고 말해 주었다. 연봉도 지금 받는 곳보다 1.5배나 높았다. 내년부터 찬주가 20%를 더 받게 되는데 자신은 찬주보다 30%나 더 받게되는 셈이었다. 아팠던 배가 조금 개운해 지는 것 같았다. 




소주 한병씩 마시고 퇴근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밤새 이력서를 고쳤다. 12월 말 종무식은 재택으로 대체를 한다고 문자와 메일이 왔다. 다음날 정용은 바로 이력서를 김점백 부장에게 보냈다. 빠르게 면접날이 잡혔고 1월 말에는 무사히 회사를 이직할 수 있었다.  




회사에 이직하고는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1년을 보냈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 듯 대학 동기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오랫만이다.”




정용이 회사를 그만 두고 이직을 한 후에 1년 만에 만났다. 


명함은 이미 SNS를 통해서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신입사원이 엊그제 였는데 벌써 과장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그래 맞아.”




“정용아, 이제 운동이라도 열심히 해야 돼. 우린 몸이 재산이야.”




“그래, 나도 공감한다.”




“뭐 운동 시작하는 것 있어?”




“마라톤 시작해 보려고 해. 운동화도 샀어.”




정용은 그제서야 얼마전에 찬주의 SNS에서 본 나이키 런닝화가 생각났다. 사실 운동화라면 그도 있었지만 왜 새로 산 운동화를 올렸을까 궁금했었다. 운동화를 자랑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운동화 얼마나 한다고 과장 월급으로 몇 십켤레도 살 수 있는건데 하는 마음으로 넘겼었다. 하지만 운동은 다르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조깅 , 마라톤이었다. 그건 직장인들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정용이도 언젠가는 한번 강바람을 가르면서 뛰고 싶었다. 




한 달 즈음 지나서 찬주의 SNS에서 알람이 울렸다. 


사진에 보이는 찬주는 제법 군살이 빠져 있었다. 


반바지에 티셔츠차림인데 운동화는 그전에 올렸던 나이키 런닝화였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회사가 회계감사기간이라 바빠서 한 타이밍을 놓쳤다. 정용이도 운동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정용이는 그날 퇴근 후 아내에게 말했다. 




“나 운동화 하나 사도 돼?”


“운동화 있잖아?”


“그 왜 조깅할때 신는 러닝화라고 있거든, 좀 달라 단순한 운동화하고는, 슬슬 체력관리 좀 해 보려고 해.”


“그럼 사요. 건강에 투자하는 게 최고의 투자지.” 아내가 쿨하게 답해주었다. 




정용이는 찬주의 나이키를 의식해서 아디다스로 하나 주문했다. 찬주는 집 근처 운동장에서 주로 런닝을 하는 사진을 올렸다. 정용이는 사진은 올리지 않았다. 다만 운동하는 사진은 계속해서 찍어두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살다가 볼록하 배를 가지고 시작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첫날에는 채 500미터도 못 뛰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뛰기 싫었지만 그래도 찬주가 뛸 생각을 하고 억지로 나갔다. 그래도 뛰어보니 전날 보다는 뛸만했다. 거리가 조금 늘어서 어제 뛴 거리의 두 배는 뛰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을 넓혀가니 한달만에 왕복 3km는 거뜬히 뛰게 되었다. 




정용이는 뿌듯했다.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나도 원래 조깅을 할 생각이었다고.’  




그렇게 2년이 또 지났다. 




찬주나 정용이나 마찬가지로 각자의 회사에서 과장 3년차 즈음 되니까 너무 바빠서 공조롭게도 이런 저런 사적인 모임에 나갈 시간도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작년에는 찬주의 책상 서류들이 SNS에 올라왔다. 약간 흐릿한 블러 처리를 해서 너무 바빠서 연말 동기 송년회 못 나갈 듯 하고 쓰여 있었다. 




정용이도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맥이 탁하고 빠졌다. 


그래서 총무에게 참석을 번복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모임을 빠졌었다. 




2년간 찬주의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집에서 식사하는 잡다한 사진이나 아이 크는 사진들이 전부였었다. 조깅하는 사진도 간간히 올라왔지만 그건 뭐 자신도 다 하고 있는 것이라 그리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문제는 올해 연말의 사진이었다.




얼마전 사진에 올해의 매출 200% 달성이라는 사진이 큼지막하게 올라오고 상장과 상금을 받는 사진 그리고 부상으로 일주일의 포상휴가를 받았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댓글에는 찬주의 지인들이 축하해, 뭐야뭐야 하는 궁금한 댓글을 달았지만 찬주는 좀만 기다려봐 하고 더 큰 뭔가가 본편이 기다리고 있다는 예고의 댓글을 답변으로 달았다. .




정용이는 그 내용이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이미 상장을 받았다는 것으로 충분히 배가 아파서 뭘 더 궁금해 하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해외 여행일터였다. 하지만 자신은 이 회사에서 이미 찬주보다 30%나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 비웃음이 흘렀다. 




그로 부터 한달 뒤에 찬주의 SNS에 올라 온 사진은 정용이의 시선을 한눈에 확 끌었다. 


사진에는 거대한 산맥의 정상처럼 보이는 울퉁불퉁한 바위사이로 눈들이 구불지면서 지형을 따라서 쌓여 있었다.산 중턱에서 일출을 찍은 사진은 거대한 태양에서 예리한 금빛 창살이 눈위로 퍼지고 있는 장엄한 배경속에 있는 찬주의 얼굴이 보였다.




‘여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다.’란 글자가 정용의 눈에 따갑게 들어왔다.  




자세히 사진을 보니 배경에 에베레스트 산의 베이스 캠프라고 영어간판이 쓰여 있었다.


정용이는 씁씁해 하면서 컴퓨터에 열어두었던 브라우저 창을 닫았다. 




정용이는 너무 궁금했지만 댓글로 물어보진 않았다. 어차피 올해는 신년에도 동기모임이 한번 더 잡혀 있었다. 찬주 얼굴도 볼 겸해서 동기모임에 나갔다. 




그날 동기모임에서 대화 주제에 있어 화제는 당연코 찬주였다. 




“상 받는데 본부장이 올해 회사에서 우리 부서의 실적이 좋다고 어디가고 싶냐고 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한번 찍고 오면 어떼요 하고 말했지. 그랬더니 본부장님이 자원자를 받아서 같이 가자는 거야. 자기도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말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가게 된 거야. 다녀와 보니까 너무 좋더라. 거기 다녀오면 복 받는다고 하더라.”




“뭐라고, 에베레스트 보고 오면 복을 받는다고? 그런 하찮은 말이 어딨어.” 정용은 말을 뱉어 놓고 아차했지만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동기들을 보면서 짜증이 더 올라왔다. 




“그러니까. 사십대에 하는 것보다는 지금이 낫지 않겠어? 산은 다 좋데, 지리산이고 설악산이고 힘 되면 한번씩 다녀오라고. 복들 받으라고. 지금 안가면 언제 가겠어.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라고. 도전하는 거지. 뭐. 하하하.”




찬주의 저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한편으로 정용이는 자신에게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에 살짝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 찬주가 한다면 나도 할 수 있어. 이미 조깅으로 증명이 되었잖아. 지는 것 싫다고. 에베레스트야 기다려라.’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정용이는 뭐가 올라올때가 되었는데 하고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피식’하고 헛 웃음을 지었다. 




찬주의 SNS가 또 업데이트가 되었다.




병원에서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얘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 그렇게 천방지축 다니니 다리가 부러지지, 그게 무슨 복이냐.’


정용이의 시선이 사진 밑에 있는 글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자전거 출근 중 차에 부딪힘, 종아리가 부러짐, 전치 8주, 그런데 상대차주가 음주운전을 람보르기니 운전자. 이게 왠 로또.’




정용이는 바로 찬주의 SNS에 답글을 달았다. 


‘깜짝 놀랐다. 괜찮은거니? 병문안 갈게.’




다음날 회사를 마치고 찬주가 입원해 있다는 S병원으로 갔다. 


병실은 독실인데, 찬주는 허벅지까지 기브스를 한 왼쪽 다리를 공중에 걸린 쇠끈 같은 곳에 올려두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말도 마라, 새벽같이 자전거로 출근하는데 갑자기 차한대가 내 옆에서 그냥 들이받고는 가로수를 박더라고. 그리고는 난 기절했나봐. 아무튼 뼈가 종아리뼈가 부러졌어. 수술을 급히 받았는데 경과는 좋아. 천만다행으로 내가 무릎보호대를 하고 있어서 무릎관절은 안 다쳤다고 하네.”




“그랬구나. 아 로또 얘기는 뭐야?”


정용이는 궁금한 부분을 찬주가 먼저 말해주지 않아서 살짝 짜증이 났다. 




“아, 그거, 알고보니 나를 친 사람이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깜짝 졸았나봐. 음주운전이지.뭐.


그래서 합의를 봐야 한다고 왔어. 나한테 선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뭐 써달라고 하더라고.


합의서 써줬어.”




“아니, 도대체 얼마를 받았길래 그 합의서 같은 걸 함부로 써 줘.” 정용이가 힘 주어 말했다. 


“10억.”찬주가 툭하고 답했다.




“뭐, 시....십억? 정말?” 정용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무슨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다리 하나 부러졌다고 합의금을 십억이나 받았다고. 이게 말이 되는 말인가.




“어, 봐봐.” 


찬주는 바로 핸드폰을 들어서 자신의 인터넷 뱅킹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정용은 의심스런 생각에 일일히 손가락까지 짚어가면서 소리내어 읽었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 맞네.”




정용이는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 같아서 얼른 화면에서 손을 뗐다. 




“내 말이 맞지? 그봐 이정도 면 써줄만하지.”


“와, 이해가 안된다. 사고 한번 냈다고 10억이나 단번에 내는 사람이라면 뭐하는 사람이래?”




“나한테만 얘기하더라 그 사람 회사가 무슨 화장품 회사인데 전날에 회사를 팔고 2조인가를 잔금으로 받았다고 하더라. 나를 치기 전날에 잔금을 받았는데 1조 8천억을 받아서 자신도 정신이 멍하더래. 그러면서 이 병실 치료비도 다 그사람이 내 준다고 1인실로 잡아준거야. 보험으로만 하면 못오지 난”




“와 그런 회사가 있어.”




“명함도 줬어. 아직은 대표인데 곧 바뀐데. 자기는 이제 뭐 엑싯(Exit)했다고 표현하던데. 암튼 엑싯해서 이제 전문경영인이 올거라고. 여기 명함도 있잖아.”




찬주는 자신의 침대 왼편에 있는 테이블에 놓인 명함을 가리켰다. 


정용이 힐끗보니 거기엔 ‘메이플캐나다화장품주식회사’라고 적혀 있었다. 




찬주의 눈치를 보면서 얼른 네이버 검색창에 검색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초대형 친환경 화장품 회사가 2조에 외국계 펀드에 매각이 되었다고 기사들이 몇 개 나와 있었다. 




“뭐할거야? 그 돈으로.” 정용의 목소리는 끝이 마르고 갈라졌다. 


“뭐 지금 사는 집 정리하고 여기 강남에 아파트나 하나 사야지. 대출 좀 받고 하면 무난할 것 같아. 아직 아이도 어리고. 회사 생활 난 계속할거니까.”




돌아서서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용이는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이런 저런 자동차 사고에 대해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열중했는지 아침이 밝아왔는데도 정작 본인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당신 잠을 안잔거야?”


아이를 학교 보내고 도시락 챙기려고 일찍 일어난 정용의 아내가 정용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어, 난 괜찮아.”




정용은 정신이 멍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였다. 


샤워를 하고 출근 채비를 했다. 가방을 메고 식사는 회사에 가서 한다고 하고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부러웠다. 지금까지는 비슷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금덩이가 찬주에게 쏟아진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섰지만 자신이 타야할 버스가 지나가는 것도 신경쓰지 못했다.


길 건너 맞은 편에 로또판매점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로또라도 사자.’




이제 찬주를 따라갈 방법이 로또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과 이어져 있는 횡단보도에는 녹색 신호등이 깜빡였다.




‘얼른 로또 사고 출근해야지.’




녹색 신호등을 보고 뛰었다. 그리고는 순간 자신의 몸이 ‘땅’하고 부딪혔다가 하늘로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정용은 그 순간 자신도 ‘로또’에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찰라의 순간에 엄청난 통증과 함께 웃음도 나왔다. 




병원에서 눈을 떴다. 


‘하하하, 살았다. 난 얼마를 받게 될까?’ 즐거운 상상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눈에 붕대를 감아 놓았는지 여전히 눈 앞은 컴컴했다.


병원의사가 들어왔다. 




“어머니, 여기 선생님 오셨어요.”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도 옆에 와 있었구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우리 아들은 어떻게 되나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먹였다. 




“참, 힘든 상황입니다. 저희도 수술을 한다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경추쪽과 뇌를 많이 다쳐서요. 경추신경 손상도 문제지만 뇌의 25%를 절제해야 했습니다. 깨어나도 정상적인 생활을 담보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게 무슨말이야. 내가 코마라니. 정용은 크게 외쳤다.




“아니야, 나 깨어 났다고, 난 여기 있다고.” 손발을 공중으로 마구 움직였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상상이었다. 목소리는 속으로만 외쳐졌고 손발은 움직이지도 않았다.


정용이는 그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한문철의 블랙박스가 방영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지난주 방송인데요. 네, 의뢰자가 버스 기사인데요. 신호등이 녹색불이 두번 깜빡이고 바로 빨간불로 바뀌잖아요. 건널목이라도 이렇게 녹색불이 깜빡일때는 들어가면 안되죠. 버스는 정상속도로 운행을 하고 있었죠. 멀리서 볼때 버스입장에서는 녹색불이니까요. 그런데 버스가 건널목 가까이 가면 사각지대가 생겨요. 안보이죠 당연히 운전자 입장에서는요. 그대로 가다가 ‘쿵’. 자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이런 경우 버스가 몇대 몇일까요? 네 보행자가 100대 빵이죠. 지금 이렇게 갑자기 버스에 뛰어들면 이걸 버스가 어떻게 보냐고요. 지금 피해자는 혼수상태에 있다고 하네요. 얼른 깨어나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초록불 깜빡일때 뛰지 마세요. 버스에서는 안 보여요. 네 감사합니다. 저는 다음주에 더 명쾌한 해설로 돌아오겠습니다.”




‘아, 이제 한동안 찬주의 SNS는 어떻게 해야 볼 수 있을까. 내가 회복되면 진도가 많이 나가 있을텐데 어떻게 해야 따라 잡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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