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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아재 Sep 28. 2024

진상고객 우수처리사원, 미혜

콜센터로 매일 전화해서 온갖 욕을 퍼붇는 진상고객들이 사라지고 있다. 


오늘



미혜가 콜센터에서 전화번호를 보자마자 안절부절 했다. 


하필이면 또 그놈의 전화가 자신의 자리 전화기로 울린다. 콜센터 시스템상 발신번호금지표시가 된 전화는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화번호가 보이는 이 번호를 안 받으면 벌점을 받아서 한 시간 수당이 날아간다. 미혜는 3번의 전화벨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여름휴가 기간이라 상담원들이 많이 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00정수기 서비스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최대한 상냥하게 매뉴얼대로 인사했다.


“야이, 씨뿔년아. 이 따위로 일할 거야?” 상대는 화가 많이 난 상태였다. 이 남자는 매일 같이 오후 2시 즈음에 전화를 걸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비를 건다. 미혜가 일하는 콜센터에서는 진상고객으로 소문이 나서 서로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벌써 6개월째다. 


“고객님, 무슨 일이신가요?”


“무슨일이고 나발이고 당장 서비스기사 보내.”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일단 상황을 알아야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까요.”


“얼음이 시원하지가 않아.”


“어제 서비스 기사가 다녀갔는데요. 그럼 다시 일정을 잡아 드릴게요 지금 가능한 날짜가 아무리 빨라도 이 주일 뒤에 가능합니다. “


“지금 장난해? 당장 팀장 바꿔. “


“뭐, 니들이 기계를 잘못 만들어 놓고 또 이 주를 기다리라고?”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다. 아마 내일은 전화해서 또 다른 일로 야단법석을 칠 것이 분명하다. 지난 6개월간 이런 식의 전화를 걸었다. 서비스기사는 보름마다 그 집에 다녀왔다.  


미혜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귓볼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찬바람이 얼굴에 부니 조금 숨이 쉬어졌다. 


‘이렇게 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미혜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한강쪽을 향해서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늘 친절한 남편 찬주는 전화를 받자마자 따뜻한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당신은 걱정하지마. 내가 알아서 할께.”


사실 이건 미혜가 제일 든든해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전화번호랑 그 사람 이름 그리고 주소도 보내.”


남편은 또박또박 말했다. 


‘아 정말 괜히 말했네. 아냐, 이 진상 고객 나한테 너무 하긴 했어. 에이 몰라. 모르겠다고. ‘


미혜는 아까 모니터를 보고 찍어둔 사진을 남편의 메세지로 보냈다. 


  

김점백, 일산 마두동 00아파트 201동 304호


  

당신이 팀장인 척 전화를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아. 아까 팀장 바꾸라고 했는데 내가 그냥 하도 심장이 뛰어서 그냥 끊었거든. 고마워요.


  

걱정마. 수고.



미혜는 그날 퇴근하면서 뉴스를 봤다. 특이사항은 없었다. 퇴근을 하면서 인근 마트에서 장을 봤다. 남편은 그녀에게는 정말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무지막지한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그녀가 너무 친절한 남편이지만 동시에 사회에서는 냉철한 사람이라고 예단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럴려면 우선 남편의 신체부터 알아야한다. 키 180 센티미터에 몸무게는 80킬로그램이다. 배도 거의 안나왔다. 






3년 전 결혼 전




첫 결혼을 실패하고 미혜가 캐디로 근무할때 남편을 만났다. 그는 가끔 라운딩을 하면서 실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요즘 새로 뜨는 PXG 브랜드의 옷이나 MALBON 브랜드 옷을 입고 나와서 골프 좀 잘 치고 잘 노는 한량인 줄만 알았다. 그것도 하도 골프치는 여성 고객들이 자랑을 해 대서 알게 된 브랜드였다. 미혜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저랑 데이트 한번 해요.”


“저희 고객이랑 만나면 벌점 먹어요.”


“그건 핑계가 안되는데.”


미혜는 골프라운딩을 마치고 각자의 골프채를 실어주면서 남자의 차를 보았다. 차가 크고 고급스러웠는데 그 차는 제너시스는 아닌 것 같았다. 전 남편의 차가 제너시스였는 로고가 비슷은 한데 뭔가 좀 달랐다.  


“지지배야, 그 남자 차는 벤틀리야 벤틀리.” 캐디중에서도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말했다. 


“벤틀리? 그게 뭔데.”


“벤츠보다 좋은 차. 그 남자 회사대표인가보다. 왠만하면 만나봐. 나쁘지 않네. 나도 그 남자랑 라운딩했는데 매너 좋더라. 남자들은 골프치면 성격나오거든. 내기를 하니까 남들이 안볼때 벙커에서 몰래 내 던지기도 하고 공이 나갔는데 몰래 공을 놓고 여깄다고 사기치는 인간들도 많아. 나도 그 남자 한 두번인가 담당해서 라운딩을 했는데 18홀을 도는 내내 한번도 못봤어. 성격도 너무 좋고.“


“그래?” 미혜의 눈이 동료 언니를 향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정직하다는거지. 돈 잃었다고 성질 내는 것도 못봤어. 내기도 크게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나저나 부럽다, 미혜야, 아 나한테 그런 미남이 데이트 신청 왔으면 난 받았을거야.” 언니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양 팔로 자신의 가슴을 안는 시늉을 했다. 


“언닌 남자친구 있잖아.” 


“그러니까 그만큼 맘에 든다고 이 바보야.”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한번의 실연으로 마음의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그 굳게 닫힌 문을 그 남자는 해머를 들고 와서 부수고 가루를 만들었다. 


00컨설팅 

부장 정찬주. 


“당신 명함에 00컨설팅은 뭐하는 회사야? 당신은 심지어 회사대표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다녀? 이거 혹시 회사 법인차야?”


“아니, 내 차. 우리회사는 음 개인은 상대안하고 법인만 상대해 회사만 상대한다는 뜻이지. 어렵게 얘기하면 컨설팅이고 쉽게 얘기하면 회사에서 반드시 처리하고 싶은 장애물 같은 것을 제거해 주는 회사야.”


남자는 믿을 수가 없다고 이제 미혜는 의심부터 하고 보았다. 심지어 남편 몸에는 그 흔한 문신도 하나 없었다. 그렇다고 변호사도 아니었고 사기꾼도 아니었다. 

결혼 하기 전에 회사 근처에 가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4개의 빌딩이 우뚝 서 있는 그 꼭대기층쪽에 회사가 있었다. 미혜가 뭐하는 회사인지 궁금하다고 말하니 남자친구는 선뜻 회사로 초청을 했다. 


“뭐, 그냥 와도 돼. 우린 업무상 외부에서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려. 보안으로 유명한 회사야. 외국계기업이고. 암튼 규정상 내가 말 다 못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 찬주는 미혜의 눈치를 살짝 보는 듯 했다. 


모든 남자들은 정장을 입었고, 그 안에는 외국인도 몇 사람 보였다. 입구에서 안내데스크에 대고 남편의 이름을 대니 여직원은 근사한 접견실로 안내를 했다. 창 밖으로 한강이 내려다 보였다. 접견실은 넓고 쾌적했으며 몇 개의 원탁 테이블에는 다른 사람들도 방문해서 웃으면서 미팅을 하고 있었다. 


다만 회사 소속의 사람들이 남자 여자 모두 건장하거나 딴딴한 마치 경호원을 연상케 한다는 점이 조금 의아하게 보였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로써는 그런 것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친구인 찬주는 더없이 자상했고 자신에게 다 맞춰주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제일 중요했다. 





3년 전 결혼 후




결혼하고도 한동안 캐디생활을 했다. 집도 기흥쪽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과 멀지 않은 용인에 신혼아파트였기에 출퇴근 하는데 고작 차로 10분 남짓이었다. 여기 고생하는 동료들과 지난 6년간의 시간이 소중하기도 했고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자아실현의 한 축으로 근무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최소한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평온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깍. 왜 이러세요.”


그늘집에서 거나하게 막걸리에 소주를 부워라 마셔라 하고 나온 김회장의 손이 운전을 하고 있는 박미혜의 엉덩이사이로 쑥 들어온 것이다. 일행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김회장의 손은 가슴으로도 오고 엉덩이로도 왔다. 결국 그녀는 무전기를 통해서 이웃캐디에게 이웃한 캐디는 운영 마스터에게 신고를 했다. 마스터가 차로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겨우 라운딩 서비스를 마칠 수 있었다. 


집에 왔는데도 손발이 덜덜 떨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밥 숟갈을 한 입 입에 넣고 남편이 그 자상한 어조로 식탁에서 미혜의 눈을 바라봤을때 그녀는 무너졌다.

남편은 담담하게 그녀를 서서 안아주었다. 그리고도 그녀에게 당장 그만두라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우는 내내 꼭 안고 있어주었다.어느정도 시간이 지나 진정이 되자 남편은 그녀의 마스카라를 손바닥으로 닦아주면서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혜가 보니 남편의 눈시울도 약간 젖어 있는 듯 했다. 그 눈길을 보니 마음속에서 따스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진정이 되었다.

남편은 차를 따스한 물에 넣어서 테이블 위에 가져주면서 미소를 머금고는 물었다. 


“참, 당신 아까 그 고객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녀도 강단과 용기가 있었다. 사실 이혼 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이런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클럽하우스에서는 그냥 앞으로는 그 회장쪽은 안 맡는 것으로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그 회장은 골프장의 정회원이기도 했고 클럽챔피언이기도 해서 회원들 사이에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골프장도 난감할 터였다. 


그녀의 기억에는 한달이었다. 그로부터 한달 후 즈음 새벽 라운딩 지원을 나가는데 친한 캐디언니가 그녀를 불렀다.


“너 어제 사고 난 것 못 들었어?”


“언니, 저 어제 쉬는 날이었어요.”   


“아, 너는 월요일날 쉬는 조구나. 어제 그 회장 죽었어.”


“그 회장이라니요?”


“그 너 왜 성추행한 인간 있잖아.”


“네?”


“자기네 정부가 있었나 봐. 거기서 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데.”


그렇게 양심적인 사람이었나? 아니면 무슨 죄를 저질러서 쫓기고 있었나?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하지만 미혜는 전혀 몰랐다. 





1년 전




“이대로는 무리입니다. 퇴행성 관절염 초기에요. 직장을 바꾸셔야 할 듯 싶습니다. “

의사의 말을 듣고 다음 일터로 옮긴 곳이 이 곳 콜센터였다. 


첫날 이곳 직원들의 환대에 너무 맘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와 같이 일했던 주혜언니가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팀장을 하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다.


“언니만 믿고 해. 진상들이 있기는 한데 그것만 좀 견디면 나머지는 정말 편해.”


그런 주혜언니가 늦은 임신을 해서 6개월 만에 집에 들어앉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6개월 전




“미혜씨, 3번 전화 좀 당겨줘요.”


언뜻보니 요즘 매일같이 전화를 하는 진상고객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하고 전화를 받았지만 욕을 듣는 일은 몸과 마음을 다같이 상하게 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퇴근길에 마음도 울적해서 삼겹살과 소주를 두 병 사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뭐? 그런 일이 있었어? 연락처하고 주소 한번 보내 봐.”


미혜는 남편이 따라주는 소주 3잔을 마시고 술이 확 취했다. 남편의 손길을 느끼면서 간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미혜씨 5번 전화 좀 당겨줘요.”


새로운 팀장 대행은 힘든 전화마다 미혜를 투입시켰다. 지난달 자신이 새로운 팀장 대행이라면서 팀장 발령이 정식으로 날때까지 잘 부탁한다고 회식을 했었다. 회식후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추자는 남자에게 정중한 거절을 한 이후에 고의적인 괴롭힘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미혜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또 너냐?”


전화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삶을 토로하고 술을 마시고 있다면서 거친 숨소리까지 냈다. 


“한번 주라.”


“죄송합니다. 고객님 전화 끊겠습니다.”


“에라이 미친년, 전화만 끊어봐 당장 달려갈테니.” 남자의 목소리가 귀청을 쏟아져 들어왔다. 순간 귀에서 뭔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전화를 쥐고 있다가 결국 그녀는 눈물 콧물을 다 쏟았다. 그걸 본 팀장 대행은 콧웃음을 치고 고개까지 흔들면서 뒤에서 지나갔다.


“일도 못하는 것들이 꼭 염병 지랄이에요. 지랄이...”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남편을 보자 설움이 복받쳤다. 


엉엉 울었다. 


남편 찬주는 이번에도 말없이 그냥 앉아주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연락처가....” 혹시 몰라서 찍어둔 통화목록이 들어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마치 자신의 그 화면에 들어갈듯이 그 회원정보가 있는 사진을 째려봤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잠은 더 깊지만 기분의 표면은 더 거칠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남편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았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출근을 하고 나니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새벽에 나가고 전화기도 꺼져 있고.” 미혜가 화를 버럭냈다.


“아, 미안해. 여보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어.”


오전에는 다행히 진상고객 전화가 없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오니 다들 상담전화에 정신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였다. 진상고객 전화가 올 시간이었다.


심장이 떨렸다. 다른 전화 고객들은 다들 친절했다. 


심지어 끊으면서 정말 고맙다고 고생많다고 위로해 주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어라, 3시가 되었는데도 진상고객 전화를 받았다고 불평하는 상담원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칸막이 너머로 서로 얼굴을 확인하면서 놀라워했다. 


한 사람의 진상고객 전화가 없는 것만으로도 상담원들은 행복해 했다. 


그 사건은 한달이 지나서 밝혀졌다. 서비스 점검 기간이 되어서 전화를 했는데 어떤 여자가 전화를 대신 받으면서 자신의 전남편 전화기라고 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혹시 전화가 또 올지 몰라서 전남편이지만 다 상황 설명을 좀 해 주려고 전화기를 아직 살려두었다고 했다. 





3개월 전




그리고 한 3개월이 지났다. 또 진상고객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패턴은 동일했다. 이번에는 서울 동부지점에서 블랙리스트로 소문한 진상고객이었다. 본사에서조차 그 진상고객때문에 회사를 그만 둔 직원들이 있다는 얘기가 들렸다. 전화는 돌고 돌다가 팀장 대행의 호기있는 자신감으로 미혜의 지점으로 연결되었다.


“이런 씨부럴년이 너 말다했냐. 너 어디지점이야. 내가 갈께.”


참다못한 미혜가 폭발했고 오열했다. 그런데 그 고객이 또 집에서 자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 때 한 직원이 말했다.


“그 참 진상고객이 미혜씨한테 가면 다 처리가 되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미혜의 온 몬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사실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했다. 3년전 골프장에서의 그 회장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우연히 만난 진상고객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상한 우연이자 자신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이다. 둘째는 자신이 그런 사람들을 남편에게 말한 것이다. 셋째는 대략 한달 정도내에 그 사람들은 세상을 등졌다. 3년전의 그 회장은 우람한 사람이었는데 우울증으로 정부의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정부를 두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고 치더라도 보통은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려야 말이 되지 않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별난 우연의 연속이었다. 


미혜는 순간 우연히 너무 겹친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우연은 자신이 개입되었다는 것이고 공교롭게도 자신이 자신의 남편에게 말을 했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다들 사고사가 아니면 자연사다. 정말 자연사일까. 아니면 자연사를 당한 것일까.





다시, 오늘 저녁




“회사에는 왜 정기적으로 이런 또라이들이 나타나는 걸까?” 


“원래 그래, 세상은 또라이 총량의 법칙이 있거든.” 


남편은 삼겹살에 소주라면 환장을 한다. 그래도 저렇게 체력이 되니 보기엔 좋았다.


“당신, 나 얼마나 사랑해?”


“흠...우리 마님께서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실까요?” 남편이 미혜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이번까지 만약에 진상고객이 죽으면 그건 당신 짓이 분명해. ' 


미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 지금 나한테 텔레파시 보낸거야?” 남편이 고갤 들고 미혜를 쳐다보았다. 


 ' 헉, 어떻게 알았지? '


“그 사람 당신에게 뭐라고 했어?” 남편이 안주를 입어 넣고 우물거리면서 물었다. 


“누구 말야? 아 그 진상고객 김점백 말이야?”


“어?”


“욕이란 욕은 다했지. 나중엔 자기 술 먹었다고 아예 성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던데.”


“흠, 그랬구나.”


“당신은 화 안나?” 미혜의 목소리에 나긋한 고조가 들어갔다.


“화 많이 나지. 지금 삭히는 것 안 보여?” 남편의 목소리는 언제나 나긋나긋하다. 미혜는 그러고 보니 남편이 화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당신이 나한테는 돈키호테 같아.” 남편은 술 한잔 마셨더니 땀이 난다고 샤워를 하겠다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일주일 후



회사에는 그 진상의 전화가 사라졌다. 


미혜는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일부러 일산까지 갔다. 

아파트 입구까지 가자 심장이 뛰었다. 


304호 벨을 눌렀다. 

만일 벨을 받으면 그냥 잘못 눌렀다고 하고 도망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두려움 반, 궁금증 반으로 다시 한번 더 벨을 눌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시 벨이 울렸다.

"띠리 ~ 띠리리리."

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다.


아파트 현관의 경비 그림이 있는 벨을 눌렀다.

이번에는 답이 바로 왔다.

"경비실입니다."


일단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 휴, 진정하자. '


“수고 많습니다. 여기 아파트 304호에 정수기 수리왔는데요, 집에 아무도 안 받네요. 현관문 좀 열어주세요.”


물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아, 거기 아무도 없어요. 아저씨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저께인가.” 


미혜는 멍했다.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

남편은 틀림없이 킬러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죽고싶을 만큼의 치욕과 모욕을 견딘다는 것은 때론 죽음까지 불사하게 만든다.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확 올라왔다. 

모른척 할 생각이었다. 

무시무시한 남편이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따스했다.

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호신, 그녀의 남편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자신의 수호신. 그거면 족했다.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었다. 파랬다.


맞은편에서 경비아저씨가 나와서 아까부터 201동 현관입구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어떤 아줌마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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