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점쟁이가 더 정확하다고?
점백이는 요즘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푸닥거리를 한번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석아, 내일모레면 새해인데 나랑 같이 00 보살인가 하는 곳이 압구정동에 생겼다고 하던데 나랑 같이 점 한번 보러 안 갈래?” 점백이는 가본 적도 없어서 혼자 가기가 민망해서 말한 거였다.
그 말을 하자마자 윤석이가 막 웃었다.
“점백아,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그딴 점이야. 국가인증 AI복점센터가 있어. 정확히는 AI상담센터지만 하도 신통해서 사람들이 그냥 AI복점센터라고 하더라. 인터넷 검색해 보면 나오니까 한번 찾아봐.”
윤석이는 얼마 전까지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다가 동탄 지역으로 이주한 친구였다. AI 점쟁이에게 복점을 치고 진지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성공하게 되었다고 만날 때마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얘기하곤 했다
“내가 그 AI 점쟁이를 만나봤는데, 정말 최고야. 최고.”
이전 회사에서는 늘 야근하고 눈에 다크서클이 어둡게 내려와 있던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회사를 옮기고 나서는,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 보였다.
"그 AI 점쟁이 정말 한번 받아봐. 인생이 바뀐다니까."라고 윤석이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심지어 신문마다 매일의 운세가 나온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알고 싶어 한다.
점백이는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늘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고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인 윤석이의 삶이 백팔십도 바뀐 것을 보고, 자신도 그 ‘AI 점쟁이’를 한번 만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2101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AI복점센터에 점을 보러 갔다. 정확히는 ‘AI상담센터’라고 했었지. 국가에서 아무리 많은 예산을 들여서 홍보를 해도 사람들 머릿속에는 그냥 ‘AI 점쟁이’란 말로 통한다고 윤석이가 말한 것이 생각났다.
왕복 2차선 길 오른쪽에 위치한 AI 복점센터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신년이라 한복을 입은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전통복장을 입고 오면 50%나 할인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그제야 났다. 점백이는 자신도 한복을 챙겨 입고 올 걸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과거의 ‘주민센터’로 사용되는 곳을 개조했다고 들었던 건물에는 마당이 콘크리트 대신에 녹색 잔디가 쫙 깔려 있었다. 로비에는 신년이라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각자의 핸드폰으로 대기번호가 떴다. 뭐 싸우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다. 자신의 순서를 보자 아직 앞에 스무 명도 넘게 있다. 대강 한 사람이 들어가면 대략 20분 즈음 상담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20명이니 400분이다. 하지만 상담기계가 10대이니 4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다른 때 같으면 못 기다리고 집에 갔겠지만, 작년 초와 달리 올해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도 없다. 이혼을 당했기 때문이다.
일단 예약접수를 다시 해 놓았기 때문에, 그는 다시 1층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한잔 샀다. 기다리는 시간은 많고 당장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는 구석의 빈자리를 찾아서 벤치에 앉았다. 앉자마자 회사 일이 생각났다.
그는 지금 하는 일이 재미는 없지만 나름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어디 회사일이라는 것이 재미를 쫓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마당에는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있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무 벤치와 테이블도 몇 개씩 군데군데 놔두어서 마치 공원 어디 귀퉁이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벤치에 앉아 있으니 윤석이가 했던 말이 귓가에 선했다.
“정말? 그 정도야? 햐, 무슨 원리로 그렇게 영성이 있는 점쟁이들도 아닌 기계인데, 어떻게 걔들이 인간의 미래를 점친다는 거야? 난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복채는 얼마나 해?”
“생각보다 비싸. 지금은 올라서 돈 십만 원 할 거야. 작년까지는 8만 원이었는데.”
“뭐? 그렇게 비싸다고? 설렁탕 열 그릇 가격이잖아.”
“허허, 한 번 받아 보고 말해. 너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말할 거야.”
친구는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좋다. 안 그래도 일이 풀리는 게 별로 없었는데.”
점백이는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었다.
스마트 시계가 징징 울렸다. 그의 순서란 뜻이다. 제법 널찍한 방에 안내되어서 들어갔다. 그 방의 중앙에는 메인 공간으로 가기 위한 예비 대기공간 같은 곳이었다.
네 명의 사람들은 제각각 포즈로 태블릿을 들고 뭔가에 표시를 하고 있었다. 점백이 방에 들어오자 의자들이 마치 컨베이어벨트처럼 한 칸씩 이동했다. 점백이 자리에 앉자 가이드로봇은 자신이 들고 있던 태블릿 하나를 그에게 주었다.
“여기 개인취향조사에 체크 좀 해 주세요. 앉아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가이드 로봇의 입에서 사람처럼 매끄러운 발음이 나왔다.
태블릿을 받자 자신의 홍채정보를 활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홍채 정보를 활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찜찜해서 그건 빼고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의료정보와 카드이용정보에까지 체크를 해야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말을 보고 점백은 살짝 움찔했지만 다음 단어를 보고 안심하면서 사인을 했다.
< 절대 이곳에서의 AI 상담 외에 절대 사용 열람하지 않고 바로 폐기처분합니다. 국가 AI보안원장 올림>
현대 AI 세계에서 국가 AI보안원의 말은 믿어도 된다. 양자컴퓨터로 무장된 AI컴퓨터는 모든 해킹시도를 사전에 파악하고 해킹이나 보안 관련 이슈는 살인죄만큼이나 처벌이 강력하다. 전에 해커가 장난 삼아 AI를 활용했었는데 선처 없이 50년째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런 일벌백계의 법정 최고형을 본 다음에는 감히 국가 AI보안원을 향해서는 그 어떤 장난도 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다. 그리고 사실 양자컴퓨터가 AI 서버로 지정이 되면서 해킹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점백 씨, 귀하의 홍채 패스워드는 단 20분간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걸 발급받았고 여기 보시다시피 국가 AI보안인증원에서 보증서입니다. 여기에 다시 홍채를 보여주시면 저희가 상담하는 동안만 귀하의 모든 정보에 액세스(Access)하는 것에 동의가 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네, 단기 패스워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동의하시면 여기를 한번 봐주십시오.”
로봇이 패드를 점백이 눈에서 약 50cm 정도 떨어진 곳에 다시 들었다. 거기엔 동의하시면 홍채를 3초간 응시해 달라고 친절히 큰 글씨의 자막이 깜박였다. 맘대로 해라.
마침내 점백이 차례가 되었다.
그가 상담실로 들어가자마자 그의 눈앞에 매우 빠르게 화면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과거사진과 그의 학창 시절의 학교점수와 병원 검진기록과 특정 데이트앱을 사용했는지와 어떤 종류의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았는지도 모두 엄청난 속도로 스캔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지난 10년간 쇼핑한 목록들이 전부 올라오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콘텐츠를 주로 소비하는지 웹툰, 웹소설, 심지어 수위가 있는 동영상 본 것들도 다 올라오고 있었다. 중간에 잠깐 화면이 멈추었기에 겨우 알아본 것이다.
이미 봐 왔기에 가이드 로봇이 안내하는 데로 대형 화면 앞에 소파에 앉았다.
점백은 남방의 오른팔을 걷어서 오른쪽 팔 받침대에 올렸다. 왼쪽은 나무 받침대인데 오른쪽 받침대는 건강검진 시 채혈도 하고, 검체도 추출할 수 있는 최신형 나노 유리가 붙은 기능성 받침대였다. 올려놓은 오른팔 팔 아래에 옅은 파랑 불빛이 천천히 움직였다. 점백이 DNA와 혈액형 그리고 추후 걱정되는 건강상태까지 체크하는 듯했다. 이미 나노주사가 그의 팔꿈치 여린 살 쪽을 브러시로 빗질을 하듯이 지나가면서 나노침이 점백의 피를 채혈해 갔지만 고통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대형화면에 자신의 지난 행적과 과거들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모든 기관들과 연결된 통합 AI 연결 시스템 같았다. 자신의 핸드폰에 찍은 개인사진에서부터 메모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저 몇 초내에 후다닥 빠르게 스캔되어서 자신의 앞에 있는 ‘AI 점쟁이’로 불리는 기계가 점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전체 대략 한 30초 정도 걸렸다. 이윽고 AI 점쟁이의 얼굴이 모니터에 나왔다. 알라딘의 램프에서 요정 지니가 있으면 아마 비슷할 것 같은 이미지를 하고 나타났다.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그가 점백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점백씨,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뭐 요즘에 하는 일마다 잘 걸리고, 몸도 피곤하고 회사생활도 재미없고 그래서 왔습니다. 새해 운수는 좀 나아지려나 해서요.”
“어디 보자.”
화면 속의 그의 눈이 마치 아래를 향하고 뭔가를 찾아보는 듯 보였다.
곧 고개를 들더니 질문을 한다.
“점백 씨, 지금 생활에는 몇 퍼센트나 만족하세요?”
“지금은 완전히 불만이죠.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거든요.”
“다시 재혼을 하고 싶으신가요?”
“당연하죠. 아직 젊잖아요, 혼자 살기엔.” 점백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 것 같군요.” AI 점쟁이가 말했다.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이 좀 많으시네요,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고요. ”
“네 맞아요.” 점백이 대답했다.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다 알고 계신 거예요?” 궁금한 건 못참는 점백이다.
“지금 김점백씨 피검사를 해 보니 스트레스지수를 가리키는 코티졸 지수가 높네요. 제가 지금 과거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정보랑 비교를 해 보고 있는데 작년 대비 한 40% 정도 높아요. 거기에 심박수도 많이는 아니지만 한 15% 정도 높은 상태이네요. 살도 조금 찌셨고. 혈압도 아주 살짝 높아진 것 등에서 추측이 가능합니다. ”
“살찐 것도 아나요?”
“지금 앉아계신 소파 자체가 스마트 의자예요. 지금 발걸이에 발 올려놓으셨잖아요. 몸무게 및 팔걸이를 통해서 전극이 연결되어 있고요, 체지방을 다 측정하고 있어요.”
“와. 그렇군요.” 점백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위층하고 소음문제는 해결되었나요?”
“아, 아뇨.”
“그것 봐요, 밤에 잘 자야 하는데 위층에서 새벽에 떠드니 어떻게 컨디션 조절이 되겠습니까? “
“맞아요, AI점쟁이님, 그건 또 어떻게 아세요?”
“후후, 점백 씨는 매사에 꼼꼼하시군요. 6개월 전에 천정형 스피커를 구매하셨네요. 아마 그 직전 달이나 위층에서 이사를 온 것 같고요, 핸드폰 사용기록을 봤는데 거기 새벽에 중간에 갑자기 1시간, 2시간 사용기록과 핸드폰 위치가 나와서 그런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새벽에 깨서 스트레스로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와서 핸드폰을 보다가 잠이 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죠?”
“와, 정확하게 맞아요.” 점백의 입이 동그랗게 벌어졌다.
“그래서, 제가 스트레스가 좀 많군요. 요즘에.”
“그렇죠, 거기에 새로운 상사가 새로 왔으니 적응하는데 시간도 걸릴 것이고요.”
“그것도 아세요?”
“직전 상사가 오기 전보다 메신저 사용시간이 늘었어요. 쇼핑도 늘었고요. 그리고 근무시간 중에 상사 골탕 먹이는 법이라고 검색도 하고 관련 자료도 1분 20초간 읽었습니다. 그걸 회사 프린터로 프린터도 하셨네요. ”
그 얘기를 듣자 점백이의 얼굴을 살짝 붉어졌다.
“와우, 정확히 맞습니다. 이건 뭐 점쟁이도 점쟁이지만 명탐정에 더 가까운데요. 네, 맞네요. 어떤 의미에서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AI 점쟁이가 말했다.
점백은 기가 막혔다. 어쩌면 이렇게 정교하게 자신을 분석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을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분석해 주고 미처 자신도 발견하지 못한 자신의 문제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김점백 씨에 대해서는 거의 대강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좀 길지만 최종 분석이니 잘못 들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의 목소리가 한결 나긋해져 있었다.
AI 점쟁이가 말을 이었다.
“김점백 선생님은 일단 올해, 2101년은 운수대통의 해라고 판단이 됩니다.
첫째, 제 예상은 일단 새로운 직업을 얻으시게 되거나 회사 내에서 완전히 다른 업무를 맡게 되실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네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게 되실 거예요. 특히, 동쪽에서 오는 귀인을 놓치지 마세요.”
“네에.”라고 말의 끝을 길게 장난치듯이 했지만 점백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이게 가능하다고? 설마 지금 여자를 말하는 건가?
“셋째, 급여도 올라가고 이사도 가시겠네요. 동쪽으로 말이죠.”
“네에.”
이쯤 되자 슬슬 짜증도 올라왔다. 아니 윤석이는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AI점쟁이를 만나라고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 미래까지 맞춘다고? 말이 되나?
“참, 점백 씨의 에너지 기운에는 ‘화’가 많아요. 그래서 순간 욱할 때도 많이 계시지 않나요?”
“네, 맞아요.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그가 물었지만 AI 모니터에 있는 얼굴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지금처럼 답답한 곳은 추천드리고 싶지 않아요. 넓고 탁 트이면서 바닷가가 인근에 가까운 곳에서 살면 점백 씨의 몸에는 좋을 겁니다.”
“예를 들면요?” 점백이가 물었다.
“뭐, 강원도의 강릉이나, 포항, 부산, 거제도, 통영, 여수 뭐 전국에 바닷가 인근으로 좋은 곳이 많지요.”
“직장인이 뭐 원한다고 바로 갈 수가 있나요, 회사에서 보내줘야 가죠.” 점백이 힘없이 웃었다.
“다들 지방 근무는 꺼려하는데 점백 씨는 그런 것은 없나 봐요?” AI 모니터에는 이제 섹시하게 생긴 여자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넌 좋겠다 네가 마음먹은 대로 이미지 변신이 가능하니까.
점백이의 팔목에 감긴 심박수가 살짝 올라갔다.
“그럼, 저는 올해에는 승진이 될까요?”
“네,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승진이 될 것 같네요.”
“혹시 뭐 더 궁금하신 사항이 있나요?” 모니터에 나온 AI 상담사가 물었다.
“흠.... 저는 돈 복이 좀 있을까요?”
“네... 잠시만요. 어디 보자. 김점백씨가 돈복이... 예, 있을 것 같습니다. 잘 투자해 보세요. 성실하시니까. 곧 큰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겁니다.”
“허허, 덕담 감~사합니다.”
뭐 자신에 대해서 분석을 잘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미래까지 예측하는 흉내를 내는 것은 좀 많이 오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음의 문이 열리려다가만 느낌이었다. 선결제를 하고 들어온 복채 아니 상담료 10만 원이 너무 아까워졌다.
점백이 일어서서 AI 기계 쪽으로 인사를 꾸벅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인사는 제대로 하고 나가자.
그러자 옆에서 서 있던 가이드 로봇이 막 출력되어 나온 종이를 한 장 건넸다.
요즘 잘 사용하지도 않는 종이를 받아서 나왔다. 그의 이마에는 쓸데없는 데 돈을 썼다는 짜증이 올라와서 세로 주름이 졌다. 도무지 그는 이 놈의 기계가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종이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 나이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뭐 사이트도 다 뒤지는데 그까짓 정보정도야.
자신의 MBTI 성격에서 분석된 결과들, 혈액형 분석으로 나온 간략한 정보 그리고 조금 전 AI점쟁이인지 기계인지가 말한 총평 정도였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서 운동을 좀 할 것을 추천했다. 그리고 점백이 기운에 ‘화’가 있어서 그 화를 잠재워 줄 도시가 좋다면서 강릉과 같은 바닷가에서 살면 스트레스 지수도 낮아지고 좋다고 아까 말한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제일 밑에 지역명이 나와 있는데
<1순위 추천지는 경상북도 포항시>
<2순위 추천지는 거제도>
<3순위 추천지는 경기도 화성시>
이렇게 적혀 있다.
하지만 한참을 봐도 이게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은 지금 인천에 살면서 여의도까지 출퇴근을 잘하고 있는데 이게 뭐람.
그리고 훌쩍 3개월이 또 훌쩍 지나갔다.
하반기 인사 시즌이었다.
부서가 술렁거렸다.
"왜요? 뭔데요?" 출근하자마자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그곳 승진자 명단에 떡하니 점백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오잉? 나 승진한거야? 대박.'
그런데 근무지가 이상했다. 근무지는 포항이라고 적혀 있다.
승진과 지방발령이 동시에 난 케이스였다.
“보통 승진하면 본사에서 하는데 왜 지방으로 좌천을 시키면서 승진을 시키는 거야?”
그의 동료들이 볼멘소리를 했다. 점백은 그 순간에 AI 점쟁이가 준 종이가 생각났다.
‘어쭈구리, 그 종이대로 되었네. 뭐 우연히 맞을 수도 있으니까.’
점백이 입장에서는 아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는 아내와 다녔던 데이트 장소만 생각나서 짜증만 올라왔다. 아침 교통체증도 화가 나는 부분이다. 그래, 포항 좋다. 언제 살아보겠어. 바닷가에서 교통체증도 없이 한번 살아보자. 나쁘지 않았다.
보름간의 특별휴가 및 이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포항으로 내려가서 일단 급한 데로 월세 아파트를 구했다. 보증금 3천만 원에 월 100만 원 수준이었다. 매매가격이 30 평해도 2억에서 3억 수준이라 그는 인천 전세 보증금 2억을 빼서 포항지역에 아파트를 아예 사버렸다. 바닷가를 보니 회사에서 잘려도 여기서 살면 가슴이 탁 트여서 돈이 없어도 가슴 시원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AI점쟁이는 이미 의뢰인 점백이가 성격성향상 1순위 지역을 승진 발령의 형태로 내 놓았을때 지방이라고 거절하지 않을 확률이 70%가 넘는다는 것을 계산을 마쳤다는 점을. 그리고 포항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알게 되는 순간 아파트를 구매할 것이란 확률까지 80%가 넘는다고 계산을 마쳤다는 사실을. 점백이는 운 좋게도 빈 아파트가 있어서 남은 일주일 반 동안 큰 짐만 우선적으로 옮겼다.
그렇게 지방공장의 총무과 과장으로 부임했다. 그의 밑에는 AI로봇 4대와 인간 2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AI로봇은 주로 무거운 짐을 옮길 때 지시하면 된다. 그리고, 그의 업무배치가 끝나자, 회사는 일단 믿을만한 지방공장 관리자를 찾던 구인활동 배너를 조용히 내렸다.
다만 인사담당 이사는 매주 월요일 진행하는 회의에서 사장님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 임 이사가 우리 회사에 와서 참 많은 걸 바꿔 놓았어요. 이번에 포항 쪽 총무담당 과장을 뽑는데 서울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서 재무를 아는 지원자가 없어서 고민했는데, 아주 잘 처리했어. 내부에서 지원자를 뽑았으니. 수고 많았어요. 임이사."
"아닙니다. 대표님,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는 AI일자리매칭 서비스에 회사의 고충을 말했을 뿐입니다."
"하하, AI 미쉘이 운영한다는 그곳 말이지?"
"네,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의 고충도 다 알아서 처리를 해 주니 너무 좋습니다."
임 이사는 김점백씨가 본사 재무팀에서 잘 근무하고 있었는데, 처음 AI 인사시스템 도입을 결사 반대했던 일이 생각났다. 진작에 도입할걸 하는 아쉬움이 들곤 한다. 외부에서 뽑히지 않는 문제는 이번에도 AI 인사시스템이 해결을 한 셈이다. 그 이유는 김점백을 특정해서 그의 회사 내에서의 적성과 관련해서 금번 포항지사에서 모집 중인 창고의 자재수급 및 재고관리를 주 업무로 하는 한직으로 김점백을 추천했던 터라 더 놀랬다. 보통 서울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지방근무를 꺼려한다. 자식들 교육에도 서울이 더 좋다는 편견 때문이다.
그리고 김점백 대리가 간다면 본사 재무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전산을 통해서 회사 시스템을 이용하기에도 능하고, 별도로 오리엔테이션 같은 교육도 필요 없다. 틀림없이 사내에서 포항 근무 신청자를 뽑을 때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AI 인사시스템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다만, 회사 내 AI인사시스템은 이번 지방발령을 위해서 사기진작 차원에서 과장으로 승진발령의 형태를 취하면 좋겠다는 추천을 했고, 임 이사는 그것을 따랐을 뿐이다. 사장에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나저나 김점백 대리가 아무쪼록 포항에서 잘 적응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한편, 같은 시각에 포항지역에서는 점백과 성격이나 취미, 환경 등이 잘 맞는다고 매칭률 98%를 보인 아가씨들이 3명이나 있었다. 이 3명의 그녀들은 하나같이 서울 말씨를 쓰는 남자에 억센 경상도 남자가 아니라 섬세한 남자를 원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점백을 만난 여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윤혜숙 씨였다. 그녀가 가장 먼저 점백이를 만난 여자이기도 했다.
물론 전국적으로도 저출산 대책을 위해서 AI 매칭 시스템에는 수없이 많은 젊은 청춘 남녀들이 앱을 이용해서 데이트 상대들을 찾고 있었다. 점백은 아직 데이트앱에 자신의 기록을 올리지도 않았지만 이미 AI 점쟁이는 홍채기록을 체크할 때 자동가입을 하고 심지어 실명인증 및 실제 연락처도 기록해 두었다. 소심한 성격의 점백이에게 맡겨두면 세월아 네월아 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혜숙과 문자는 자신이 대신해서 했다. 점백이 엉뚱한 말을 하려고 하면 자판이 먹히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다. 결국 고백도 어떤 면에서는 AI 점쟁이가 해 버린 셈이 되었다. 에피소드는 많지만 점백과 혜숙이 지금도 술 한잔 마시면 얘기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당신이 나한테 먼저 전화한 것 아니었어?" 혜숙이 물었다.
"내가? 아니지 나도 전화를 받은 건데?" 점백이 답했다.
"당신이 그러니까 어디세요.라고 물었고.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잠깐 전화가 끊겼었어. 다시 연결되었을 때 당신이 나한테 한 말이 난 아직도 기억난다고."
"그게 뭐였는데?"
"전 사실 혜숙 씨를 데이팅앱에서 봤습니다. 맘에 들어서 전화를 했다고 분명히 말했다니까. 그랬어, 안 그랬어?"
나중에는 아내가 눈시울까지 붉히면서 역정을 냈다.
점백이는 그제서야 혜숙을 연결시켜 준 것이 AI 점쟁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 미안, 내가 그랬었네. 따랑합니다. 혜숙 씨.” 그는 꼬리를 싹 말았다.
하지만 뭐가 중요한가.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혜숙도 남편에게 큰 소리를 칠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가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 시간을 체크할 때 AI 데이트앱에서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AI는 혜숙에게 오전 11시 30분 즈음에 만나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식당장소와 차에서 내릴 장소도 지정했다. 혜숙은 그때 왜 자신의 AI가 그렇게 추천했는지 이유는 몰랐다. 신랑이 먼저 말하기 전까지는.
"난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 점쟁이가 동쪽에서 오는 귀인을 만나라고 했었어. 당신이 해안가 쪽에서 차에서 내려서 나한테 다가오는데, 동쪽이잖아. 당신이 내린 곳이 난 그만 한눈에 반했지. 뭐. 하하하."
혜숙은 신랑이 말하는 점쟁이가 그 AI인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국가 공인 AI 점쟁이가 빅데이터로 확인해 준 매칭확률 98%이니 성격이 잘 맞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더구나 대기업의 과장이고, 이미 남자는 포항에 아파트도 있다. 그렇게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만난 지 1년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 2년 만에 첫 아이를 낳았고, 4년 만에 둘째를 낳았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포항에서는 1억 원의 포상금을 주었다. 이들은 금세 저축을 했고, 시중이자율이 평균 2%에서 3% 내외였지만 신혼가구 특별 이자율을 적용받아서 안정적으로 5%의 이자율로 저축을 했다. 아이들이 많아지자 다시 포항의 큰 평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지난 7년간 공사를 했던 하이퍼루프가 개통이 되자 신문은 떠들썩했다. 시속 800km를 오가는 진공 튜브형태의 신교통수단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평균 30분이면 도착하고, 포항까지는 25분이 걸린다. 그러자 포항과 부산의 집값도 들썩였다.
주말을 맞이해서 점백은 포항의 영일만 해수욕장을 찾았다.
벌써 결혼한 지 10년 차가 되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바닷가는 검붉은 색으로 변해가는데 하늘은 검푸렀다. 그 조화가 어스럼히 켜지는 불빛들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큰 딸과 둘째 아들은 부모들 곁에서 멀지 않은 모래사장 위를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모둠회에 소주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아내에게 한 잔 따라주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참, 이거 당신 이름이 적혀 있던데.”
아내가 집안 청소를 하다가 책상 서랍 뒤에서 발견했다면서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혹시 당신한테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해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점백은 뭐지 하는 마음으로 종이를 펼쳤다. 거기엔 10년 전에 AI상담센터에 가서 받아온 그의 상담이력이 적혀 있었다. 점백이 이름과 나이 그리고 자신의 성격등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아래에는 1순위 추천지역으로 경상북도 포항이 적혀 있었다. 그는 비로소 AI 점쟁이 말이 거의 다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지금은 AI 시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