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에 들어가자 부부는 서로 또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김 형사는 조사실 안쪽에 있는 팀원들과 경찰서장에게 싸인을 보냈다. 남편과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남편이 살해되었고 용의자는 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 사건은 벌건 대낮에 일어났다. 용의자가 8명이나 있고 아울러 범인을 뺀 목격자가 일곱 명이나 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남편이 죽어서 졸지에 과부가 된 아내를 참고인으로 불렀다.
형사가 말했다.
“지금부터 녹음합니다. 편하게 말씀 하시되 좀 자세히 진술해 주세요.”
“남편과 저는 부부싸움 중이었어요. 남편은 저랑 싸우고 나면 보통 한 두달은 말을 안해요. 서로 침묵하는 거죠. 제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고 밥도 밖에서 사 먹어요. 주말 같은 때는 거의 하루 종일 방에만 있어요. 제가 안방으로 가면 안방에 있다가도 건너방으로 가죠. 보통은 한 일주일 정도 있다가 제가 먼저 답답해서 남편에게 말을 걸거나, 사과를 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게 한번 두번 세번 계속해서 패턴이 반복되자 저도 인간인데 짜증이 올라오더라구요. 저번에는 사소한 문제로 다투기 시작했는데 남편이 그러더라구요.‘어쭈 또 싸움을 거네? 한번 해 보자 이거지? 이번엔 잘 알아둬.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말 안할꺼야.’ 그랬거든요. 그건 저에게 침묵의 전쟁 선포같이 들렸죠. 결국 얼마 전에 어버이날도 있었는데 시댁에 연락 못했어요. 아니 정확히는 할 기분이 아니었어요. 남편이 저렇게 대화 자체를 안하는데 제가 무슨 시부모님들 챙길 기분이 나겠어요?
그 뿐이 아니에요. 이런 냉전 상황에서는 집안일도 온전히 제 몫이어요. 원래도 잘 집안일을 도와주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런 저와의 갈등을 핑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죠. 저는 청소에 대해서 약간의 결벽증 같은 것이 있어서 집 안이 지저분하면 온 몸이 따끔따끔해지는 것 같고, 막 간지러운 것 같은 느낌이 와요. 결국 집안의 온갖 청소는 제 몫이 되죠. 이렇게 냉전 중에는 남편은 외부에서 음식을 사오거나 배달을 시켜서 먹고 자신의 방에 그낭 방치해 두었죠. 설겆이는 당연히 하지 않고요. 한번은 제가 화가 나서 건너방안에 일주일간을 아예 안 들어가 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글쎄 날씨가 더워서인지 음식물 쓰레기에 곰팡이가 시커멓게 폈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남편과 저는 새로운 집에 이사를 들어가게 되었어요. 물론 부부싸움을 하기 전에 계획된 것이었죠. 공교롭게도 막 준공을 마친 아파트의 추천 입주기간이라 많은 세대들이 한꺼번에 이사를 들어왔어요. 당연히 저희 앞집도 저희랑 같은 날 입주를 하게 되었더라고요. 그 집이 오전에 이사를 들어와서 정리가 끝나자, 그 집의 이사를 도와던 인원들도 저희 집 이사를 돕더라구요. 알고보니 모두 같은 이사짐센터 직원들이었죠. 원래 저희 집 이사를 위해서 온 이사짐센터 직원이 4명이었고 앞집도 4명이었죠. 그런데 앞 집 이사를 마무리하고 오후가 되자 그 직원들까지 저희 집으로 넘어온거죠. 마침 창립기념일이자 저녁에 큰 회식이 있다고 했어요. 서로 돕고 빨리 끝내고 본사로 복귀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사의 마무리는 정말 빨랐어요. 8명이나 33평 아파트 이사에 동원이 된 셈이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한번씩은 다 주방집기들을 옮겨주었죠. 하지만, 남편이 저한테 말하지 않고 이사짐 센터 직원들에게 제가 싱크대 왼쪽 선반위에 셋팅해 달라고 지시해 놓은 것을 다 오른쪽 선반으로 옮기라고 했더군요. 제가 나중에 발견하고 다시 왼쪽으로 옮겨달라고 했어요. 오른쪽은 너무 불편하거든요.
그런데 , 그 별 것 아닐 것 같은 문제가 또 다시 저희 부부의 싸움의 단초가 된 것이죠. 남편이 말하면 남편이 말하는데로 제가 다시 말하면 제가 말하는 데로 서너번 옮긴거죠. 그걸 몇 번 하다가 보니 이사짐센터 직원들도 짜증이 났나 보더라구요. 당연하죠. 저 같으면 한두번 해 보고 진작에 양쪽을 한꺼번에 불러놓고 물었을거에요.
이사짐센터 직원들이 이제 저희 부부가 서로 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싸우는 부부는 금방 티가 나 잖아요.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아뇨 정확히 말하면 이 부부가 서로 대화가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어요. 남편에게 자신들은 두 분의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고 말한거에요. 그 말을 누가 했나고는 묻지 말아 주세요. 당시 저는 이사짐 정리를 도와서 왔다리 갔다리 했기에 저도 그냥 남편과 그 이사짐센터 직원분과 대화를 귀로만 들은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죠. 누군지는 몰라도 참 제대로 된 말한다. 그 분들은 일당을 받고 짐만 옮겨주고 가면 되는 건데요. 지금 정리할 다른 것도 많은데 사소한 주방기기 위치로 부부가 서로 싸우고 있으니 말이죠.
그런데 남편이 화가 많이 나 있었나 보더군요. 이사짐센터 직원이 더는 못합니다라고 한 거죠.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욕을 하면서 칼을 집어 든 것이에요. 직원들은 다들 면장갑 위에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요. 직원 한 명이 ‘어어’ 하는 소리를 내더라고요. 상대는 여덟 명이고 남편은 혼자이잖아요. 그러니 남편이 칼을 휘두른 것 같았어요. 물론 남편이 칼을 휘두르는 것은 본 적은 없어요. 제가 들은 것은 ‘선생님 진정하세요. 여기서 칼을 휘두르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얘기를 듣고는 주방쪽으로 나가 봐야 하는데 저도 화가 많이 나 있었잖아요. 그냥 쉽게 생각했죠. ‘에이, 저러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겠다.’ 마음은 그랬는데도 사실 걱정보다 화가 더 나있었어요. 저는 그냥 체념을 한 상태였죠. 이 남자하고 내가 계속 살아야 하나, 살 수가 있을까. 형사님은 이렇게 긴 기간동안 사모님과 말 안하고 살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폭력도 문제이지만 친밀한 배우자간에 침묵도 폭력이에요. 그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영역이죠. 긴 기간의 침묵은 상대를 향한 증오의 연속입니다. 마치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폭언의 낙숫물같은 것이죠. 상대를 보든지 안 보든지 침묵의 증오를 뿜어내고 있으니까요. 그건 마치 잘 마른 장작을 넣고 땐 뜨겁게 달구어진 난로에서 뿜어나오는 열기 같은 것이에요. 침묵의 난로에서는 대신 분노의 열기가 지속해서 나오죠. 침묵의 난로의 연료는 결국 상대를 향한 무시와 경멸 이런 것들이거든요. 침묵의 탈을 쓴 폭력에 대해서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저는 안 방에서 박스에서 나온 짐들을 닦고 있었어요. 밖에서는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고 그랬죠. 그래도 뭐 당연히 이사짐 들어오는 곳이니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밖에 나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안방 문이 확 열렸죠.
남편이 놀란 눈을 하고는 서 있었어요. 그 모습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요. 남편의 배에는 피가 흘러서 허벅지쪽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바닥으로는 피가 뚝뚝떨어지고 있었죠.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남편은 이미 배에 칼이 꽂힌 상태였어요. 나오니까 주방쪽에서 여덟 명의 남자들이 당황한 채 서 있었어요. 저는 누가 그랬냐고 물었죠. 남편이 칼을 가지고 휘둘려서 8명이 다 달려들어서 칼을 뺏으려고 다들 말리기만 했다는거에요. 제가 안방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던터라 상황을 모르죠. 그게 사건의 전말입니다.”
여자가 긴 설명을 마친 후에 형사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제 말씀을 다 드렸습니다. 혹시 범인은 누군지 특정되었을까요?” 여자의 예리한 질문에 형사는 아직 답을 하지 못햇다. 형사가 입을 오무리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게 참 애매한 사건입니다. 거기에 있었던 모든 남자들의 손에서 남편분의 혈흔이 발견이 되었어요.다들 이사짐을 옮긴다고 목장갑을 끼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그 칼에 범인의 지문을 특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DNA 검사도 했었죠. 여덟 명의 남자들 장갑에서 모두 동일하게 DNA가 나왔어요. 그렇다고 자상이 열개라면 모르겠지만 자상은 단 하나뿐이었거든요..”
“그 참 신기한 사건이네요.” 여자는 마치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일인 듯 무심하게 말했다.
“어쨌든 저희로써는 현장에 용의자가 분명히 있다는 것에는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범인이 확실히 누군지는 좀 더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죠. 잠깐 혹시 그래도 한번 용의자들 중에서 의심이 가는 사람을 한번 지목을 해 보아 주시겠습니까? 증거 보전 차원에서 아직 손도 씻지 못하게 해 둔 상태입니다.”
“그러죠. 뭐.”
형사는 여자를 용의자를 특정하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범인들은 유리벽때문에 보이지 않고 형사와 여자는 잘 보이는 방이었다. 조사실과 유사하지만 조금 더 크고 세로로 긴 형태의 방이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여덟 명의 남자들이 길게 여자와 마주보고 있는 유리벽을 향해 섰다.
여자는 여덟 명의 남자들을 쭉 살폈다. 그들은 오후에 봤던 남루한 작업복 차림이었다. 붉은 목장갑은 손등부분이 군데군데 붉은 피의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 용의자들에서 유독 키가 큰 턱수염 남자는 콧날이 오똑했다. 그의 목에는 가슴팍에서 시작한 어떤 한문 글자처럼 보이는 문신의 일부분이 올라와 있었다. 그 남자였다.
여자는 그 순간 남편이 안방문을 열고 외친 소리가 생각났다. 또렷히.
“여보, 저 문신한 턱수염 남자가 배를 찔렀어. 이 미친 놈이...” 그리고는 남편은 방문 앞에선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었다.
형사는 아내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아내분, 혹시 용의자로 의심되는 분이 있나요? 혹시 듣거나 보거나 뭐든지 좋습니다.”
아내는 아직 남편과 부부싸움을 마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편이 자신에게 먼저 사과할때까지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내의 긴 침묵이 이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