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창에 웬 찬란한 치장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누군가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잠시 사라졌다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 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어 본다
추운 겨울에는 놋쇠 화로도 좋겠지만 무엇이든 부족한 이 동네에서는 허투루 버리는 것이 없었다. 깨진 항아리와 어디선가 주워온 나무도막이 훌륭한 화로였다.
- 하얀 벌떼가 밖에서 윙윙거리는구나
창 밖은 성에꽃으로 가득해서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데 할머니는 그 풍경이 보인다는 듯이 가만히 말했다.
-저기에도 여왕벌이 있나요?
진짜 벌의 세계에서는 여왕벌이 있다는 걸 아는 소년이 물었다.
- 그럼, 있고말고! 눈의 여왕은 눈이 가장 많은 곳에 떠다닌단다. 다른 눈보다 훨씬 큰 데다 땅에는 절대 내려앉지 않고 먹구름 속으로 날아다니지. 겨울밤이면 거리를 날아다니며 창문 안을 몰래 들여다본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유리창이 얼어붙어 활짝 핀 꽃처럼 보이는 거야
할머니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네, 저도 본 적 있어요.
두 아이가 동시에 외쳤다. 아이들은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 믿었다.
- 눈의 여왕이 집 안에도 들어올까요?
소녀가 물었다.
- 올 테면 오라지! 뜨거운 화로에 넣고 녹여 버리고 말 거야
소년이 깨진 항아리 속 재를 뒤적이며 불기운을 높였다. 다행히 저녁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화로에서 스미는 따스함은 충분했다. 할머니가 용감하게 말하는 소년의 머리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소년은 옷을 벗다 말고 창가로 다가가 작은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는 여전히 눈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큰 눈송이가 창가에 내려앉았다. 그 눈송이는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아주 섬세하고 얇은 흰 옷을 입은 여자로 바뀌었다. 가끔 산너머 아파트 단지를 보러 갔을 때 커다란 자동차에 내리는 예쁜 누나들이 입은 옷들보다 더욱 하늘거리고 예뻤다. 소년은 자신이 아는 단어가 없어서 그 상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반짝이는 수백만 개의 눈송이로 옷을 만든다면 저렇게 멋진 오싱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아름답고 우아했지만 눈부시게 반짝이는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분명 살아있었다. 두 눈은 별처럼 환하게 빛났지만 따스함이나 편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가 창문 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은 했다. 소년은 놀라 뒷걸음질 쳤고 순간 커다란 새가 창가를 스쳐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날씨가 추웠지만 얼마 후 눈이 녹아 봄이 찾아왔다. 그렇게 매섭던 눈보라가 왔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봄이었다. 태양이 환히 빛났고 초록 입들이 땅속에서 고개를 내밀었으며 제비들은 둥지를 틀었다. 두 아이는 겨울 동안 얼어붙어서 열 수 없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 어떻게 이렇게 금방 날이 따뜻해지지?
소년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는 망초꽃이 유난히 더 피었다. 아름다웠고 좁은 두 집 사이에 더욱 빽빽하고로 풍성하게 노랗고 하얀 꽃이 가득했다. 딱 붙은 두 집 사이 좁은 틈에 빛이 드는 시간도 짧을 것인데... 그 적은 빛도 나누었는지 신기하게 창턱을 넘어서까지 크고 꽃도 풍성했다. 두 집안이 궁금해서 그랬는지 망초는 작년보다 더 자랐다.
망초 망초 노란 심지 하얀 날개 / 누가누가 더 크려나 들쑥날쑥 북적북적
소녀는 망초꽃을 훑으면서 노래를 불렀고 소년도 따라 불렀다.
- 노란색에 하얀 바탕이 꼭 계란 후라이 같다.
아이들은 손을 맞잡고 망초꽃에 입을 맞추고 흩트리고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저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야기를 나눴다. 여름날은 더없이 찬란했고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은 아이들의 키만큼 무성한 망초 덤불은 천국이었고 그 둘만의 장소였다.
어느 날 두 아이는 새와 동물이 나오는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마침 버스에 책을 가득 싣고 돌아다니는 도서관이 산 너머 아파트 단지에 왔었고 이를 보던 소년은 엄마와 아이가 그 버스에 들어가서 책과 장난감을 가지고 나왔고 어느 한 집이 아이와 놀이터에 놀다가 두고 간 것을 가져온 것이다. 자신들이 사는 마을과 산 너머가 세상 전부인 두 아이에게 그림책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보다 저녁 어스름이 덮을 때쯤 갑자기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 아야! 뭔가 심장을 찔렀어! 눈에도 뭔가 들어간 것 같아!
소녀는 소년을 가까이 끌어당겨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없어졌나 봐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최두석의 성에꽃 활용
프라이가 표준어. 어감을 생각하면 후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