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주목하십시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신을 믿으시나요?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신을 믿으시나요? 신을 믿으신다면 당신이 하는 행동들은 신이란 존재가 작용하는 증거들의 모임일 것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믿고 인식할 것이니까요.) 신을 믿지 않는다면 신이란 개념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까진 믿으시나요? (그러면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부정을 한다면 무엇에 대한 부정이신가요?)
그러면 뒤집어 보겠습니다.
악마를 믿으시나요? 설마... 신은 믿지 않으면서 악마의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겠죠? 악한 존재에 대해서는 믿는다고요? 왜죠? 이 세상의 존재 자체가 악한 존재에 대한 증거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고개만 돌려도 눈에 밟히는 악행들은 모두 인간이 한 것이 아닌가요? 정말 악마고 존재해서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일까요?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은 아니고요?
어떤 선택을 해도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악마는 거울 하나를 만들고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사실 이 존재가 정확하게 악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마귀라고 했고 누군가는 악귀라 했으며 누군가는 악신, 악령, 데빌, 디아블로, 사탄, 앙그라 마이뉴(혹은 아흐리만), 이블리스, 마구니 어느 세계이든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 세계에 존재하고 무엇으로 부르든 부릅니다. 이렇게 본 적은 없지만 존재하는 이것을 편의상 악마 또는 악귀 또는 악신... 아니 마음대로 선택하세요.
어찌 되었든 이 악마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악마 중에 왕, 마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 마왕은 거울 하나를 만들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 거울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조리 찌그러뜨려 거의 보이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쓸모없고 흉측한 것들은 더 크게 비추어 돋보이게 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마음속에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하게 만들었고 거울에 비친 사람들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져 보였습니다. 어떤 작용 원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식하니까 존재합니다. 마치 악마의 존재를 믿는 것처럼...
마왕은 이 거울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이 거울을 가지고 올라가서 천사들에게 보여준다면 서로서로를 미워할 것이고 하늘나라를 침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비밀 중 하나는 신들이 인간을 만든 이유입니다. 많은 나라들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에는 세상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들에 숨겨진 부분은 아주 먼 옛날에는 신이나 인간이나 모두 이 세상에 그냥 존재하던 것들이란 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재하던 것 중 한 종류. 지금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인간들의 감정을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신들은 조금 더 풍족해지고자 인간들을 늘렸습니다. 그중에 기쁨, 행복, 따뜻함, 상냥함 등의 감정을 양식으로 삼는 존재들은 점차 선한 신들이 되었습니다. 한편 분노, 슬픔, 의심 등의 감정을 양식으로 삼는 존재들은 점차 악한 신들이 되었습니다. 슬픔이 꼭 나쁘다고 분노가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그냥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아냐고요? 인간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하면서 그 기억을 후손에 후손에 후손에 다음 세대에 세대에 세대에 전하는데 우리 주변에 기억을 매우 잘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런 오래된 이야기를 '영감'이라(이것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불리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간 세상에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감정을 양식으로 삼는 존재가 있는 상황이기에 인간이 아닌 두 존재들은 항상 싸우는 것입니다. 악마들이 양식으로 삼는 감정 중에는 '탐욕'이란 것도 있습니다. '탐욕'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악마들도 '탐욕'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배부르기 위해서... 하늘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항상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마왕도 그런 이유로 자신이 만든 거울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울을 시작으로 무너질 하늘나라를 생각하니 마왕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것이죠. 그렇게 계속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손에서 거울이 미끄러졌습니다. 그 높은 곳에서 거울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떨어뜨린 거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모래 알갱이보다 작은 거울 조각이 되어 세상 곳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모든 것을 비꼬아 보게 되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부족하게 보였습니다. 때로는 이 거울 조각이 심장으로 가서 박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거울 조각이 박힌 심장은 점차 온기를 잃고 마침내 차가운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왕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거울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실수도 마왕에게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거울을 떨어뜨린 덕분에 인간들의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재미난 모습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왕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 조각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동화책을 나란히 보던 소년과 소녀...
- 아야! 뭔가 심장을 찔렀어! 눈에도 뭔가 들어간 것 같아!
소녀는 소년을 가까이 끌어당겨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없어졌나 봐
소년이 말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선하고 따뜻한 것들을 초라하고 볼품없고 추하게 만들고 악한 것은 도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그 거울의 조각이 박힌 것이다. 고통은 스치듯 지나가 버렸고 그 조각은 안타깝게도 심장에도 박혔다. 그리고 머지않아 소년의 심장은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릴 것이다.
- 왜 울상이야? 꼴을 못 봐주겠네 난 이제 괜찮다니까.
소년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볼 수가 없었다. 친절을 담은 것인지 냉소를 담은 것인지 모호했다.
-우 웩! 저 꽃 무더기에 벌레 좀 봐 시끄럽고 징그럽고 이런 꽃들을 보느니 차라리 벽에 얼룩을 보는 게 낫겠어
말을 마친 소년은 망초대를 우악스럽게 꺾어서 붙어있던 애벌레를 떨어 버리고 꿀을 담는 벌들을 내쫓았다.
-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소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소년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망초꽃 울타리 위로 소녀와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보이던 그 미소였다. 그 미소를 지으며 소년은 꽃을 더 꺾었다. 그리고 소녀를 덩그러니 혼자 남겨둔 채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 소년은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다. 함께 그림책을 보자고 가져오는 소녀에게 그런 건 어린애들이나 보는 것이라 투덜거렸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말에는 마디마디마다 '하지만... 거짓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처럼 괜한 꼬투리를 잡았다. 때로는 할머니 안경을 훔쳐다 쓰고 할머니의 걸음걸이를 흉내내기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보는 사람 모두 배를 움켜잡고 웄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는 온 동네 사람들의 말투나 버릇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버릇이나 흉 잡힐 만한 습관을 집어내 그대로 아니 더욱 우스꽝스럽게 따라 했다.
- 아이가 참 영리해
사람들은 입을 모아 소년을 칭찬했다. 소년은 흉내 내는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좋아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소년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눈과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의 힘이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사람들의 일상 중에 거슬리는 행동이 소년의 눈에는 매우 잘 보였다. 이 힘에 사로잡힌 소년은 결국 자신을 그토록 아끼는 소녀마저 놀림거리로 만들어 버렸다.
눈의 여왕 출판사마다 내용이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