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작은 개에게 쫓겨 허둥거리는 것은 참으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개가 자신보다 7-10배나 큰 인간에게 짖으며 달려들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주인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 아닐까 합니다. 또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본능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주인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할 것이란 추측은 주인이 없는 떠돌이 개들을 보면 인간을 피하고 때로는 저 멀리서 지켜볼 뿐,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산책 중 달려드는 개에 대하여 개의 주인이 취하는 행동(반려라고 하지만 결국은 종속된 관계가 아닐까 합니다.)은 인간대 인간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보호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개가 쫓아왔고 제가 허둥거리며 그 개를 피했다는 것이고 이후 개 주인이 다가왔을 때 목줄을 하지 않은 것과 입마개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항의했습니다. 주인은 제 항의에 기분이 상했는지 작은 개라 입마개 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과 없이 개 목줄을 채운 후 지나갔습니다.
개 목줄과 관련해서는 지자체의 축산 경제과에서 담당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축산 경제과에서 안내해 준 것을 바탕으로 쫓아오는 개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가격할 경우 재물 손괴죄에 의하여 7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22년도 1월 기준) 하지만 벌금보다 더 귀찮은 일은 경찰분과 함께 조서를 작성하고 이후에는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감정을 이기지 못해 개의 주인과 언쟁 중 물리력 행사한다면 개에게 물리는 것과 별개로 처리됨을 예측 가능하실 것입니다. 이런 제도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쫓아온 개와 그 주인을 촬영해 신고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순찰 도는 사람이 목격했을 때 범칙금을 물리는 것이 현재 취할 수 있는 방법이고 그 사람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에 대하여 축산 경제과에 연락해 순찰을 부탁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입니다. 이 과정에서 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보다 낮은 수준에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애견인들이 말하는 '우리 개는 순해요, 안 물어요'와 같은 말은 오래된 농담인 상인이 '손해보고 파는 겁니다'와 같은 성격이라고 봅니다. 오랜 시간 우스개 소리로 자리 잡은 상인이 '손해보고 판다'는 것은 이익을 남겨 생계를 이어가는 상인이란 개념에 대해 모순을 일으며 웃음을 유발하는데 그 특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와 비슷하게 애견인들이 제시하는 말 또한 개가 달려들거나 이미 물어버린 상황에 제시하는 말이라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 개에 대하여 좋지 않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 때문에 그 본질 자체가 흔들린 유머란 공통점이 있다고 봅니다. (문제 상황을 바로 촬영해 신고하기 위해서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농림 식품부에 건의가 많이 들어가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연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바로 촬영해서 신고할 수 있도록 지역 담당 부서에 건의를 넣어 주시면 산책 중 개에게 쫓기더라도 안전하게 쫓길 수 있으실 것입니다. ) 특히 물지 않고 달려들거나 짖음으로 인해 감정이 상한 상황에 대하여 애견인 분들의 인식은 그럴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추측할 수 있는 행동들을 보이십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직접 폭력을 가하지 않은 것들도 법의 범주에 들어온 것을 근거로 할 때, 그런 법의 제정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 반영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가 문다는 물리력 행사가 아니라 으르렁 거리는 위협 행위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축적되면 법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다른 일로는...
제가 사는 시골마을은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제 일상 중에 어르신들의 일상을 종종 엿보기도 합니다. 어르신들 중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보행기를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보행기보다 유모차를 더 많이 사용하십니다.
그 유모차를 보면 아이들을 다 키워내시고 창고 구석에 있던 것을 걷기 힘들어지실 시기에 '아 거기 있었지'라고 떠올라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행기처럼 스테인레스 프레임도 아니고 충격 방지를 위해 검정 가죽과 스펀지로 지지하는 부분도 없는 유모차이지만 가만히 보면 보행을 돕는 기본 기능을 충족하면서 유모차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친구와 나눠 드시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보행기와 달리 쓰임을 끝낸 후 다시 꺼낸 유모차가 그 나름의 장점이 있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제삼자의 위치이니 실제 이용하시는 분의 입장과 다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평일에는 어르신들께서 돌보미 분들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셨다가 제가 퇴근할 시간에 맞춰 집으로 오셔서 주차장을 보행기로 왔다갔다 하십니다. 아무래도 길보다는 주차장이 평평하고 어르신들의 운동 거리가 길지 않아 주차장을 돌면 충분하기에 주차장을 운동 공간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차가 들어오는 길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몸을 움직이시지만 느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멈춘 차 안에서 가만히 보자면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일렁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돌봄 서비스가 없으신지 동네 어르신들이 근처 산책로로 나오십니다. 자녀들의 방문도 주로 주말과 휴일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마을 주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산책로에 승용차가 계속 서 있습니다. 1차선이기에 차를 세우면 사람들은 포장된 길 밖으로 나가서 지나가야 합니다. 보행기나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는 어르신들 경우는 포장된 좌우 공간을 통해 이동해야 하는데 그 공간은 경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차장에서 운동하시면서 들어오는 차를 피하는 것도 힘드신 어르신들께 그런 경사로를 보행기나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긴 어렵습니다. 당연히 그 길을 돌아서 가야 합니다. 너무 사소한 일이지만 제가 그 어르신들이라면 자신이 계획했던 길을 갈 수 없어 기분이 상하셨을 것이고 그 안에는 보행기나 유모차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인한 감정이 상하는 일도 함께 일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이 무력감은 보완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이기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상황에서는 추측만 가능하다 봅니다. 나이가 들어야 알겠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노력했던 시험이나 기타 기준에서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 추론해 봅니다.)
이렇게 주차된 차 옆으로 자전거를 끌고 지나서 이동하다 보니 한 중년 남성이 보행기를 끄는 어머님이 운동하실 때 옆에서 보폭을 맞춰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확신은 없지만 상황을 근거로 볼 때, 그 남성이 길에다 주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그분이 1차선 산책로에서 진입금지 봉이 있는 앞까지 차를 끌고 와서 주차를 하신 것은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겨울 중 가장 볕이 따뜻한 시간에 보폭을 맞춰 걸으시는 두 분의 모습, 그리고 유모차와 달리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큰 보행기를 근거로 추측한 것입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유모차는 허리를 구부려야 한다면 보행기는 지지부분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 우선 두 사람을 위해 산책로를 지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에 반론 논리를 추측해 보면 약자에 대한 배려를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해당 산책로에서 운동하는 사람 다수가 건강한 사람들이기에 몸이 불편한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자를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어르신들의 통행을 방해한 것을 근거로 한다면 그 논리도 반영되기 어렵다고 봅니다. 한편 어머님을 위해서 길을 막고 주차한 행동이 자신이 아닌 어머님을 위한 마음에서 한 행동이라도 그 안에는 어머님을 위한다는 자신의 만족감이 움직임을 만든 동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남성분의 행동은 약자를 위한 배려 측면에서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통행을 막았다는 것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한 행동이 아니란 측면에서는 자신의 어머니를 배려해서 자신의 심리적 위안과 만족감을 얻으려 한 행동이기에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문제제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간단하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목줄을 하지 않아 입마개를 하지 않아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그냥 지나가시는 분처럼. 어머니를 위해서 잠시 주차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하는 행동처럼 우리 일상 중에도 법만으로 규칙만으로 당위성 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들에 대하여 답은 없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는 것은 그런 일들로 인한 갈등이 일어났을 때 접근점을 찾는 시작점으로 삼거나 상대와 이야기할 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 동안 있었던 일 중 또 다른 일로는... 고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본가인 아파트는 3개의 서로 다른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아파트 단지 한쪽으로 산이 있고 그 산 아래는 작은 약수터가 있습니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깔끔하게 지붕을 만들어 낙엽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수도 시설을 만들어 깔끔합니다. 하지만 이 깔끔함이 누군가의 선의로 유지된다는 것은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다시 목격하는 모습에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추운 요즘 약수터에 물을 뜨러 오시는 분들은 당연 냉기가 조금이라도 덜 들어오도록 단단히 여미고 움직임도 최소한으로 빠르게 끝내려고 합니다. 저 또한 두 개의 약수터 수도 중 어디가 어 물량이 많은지 계산하는 시선을 보내며 빨리 물을 받아 가려고 움찔거립니다. 그러던 중 뒤에서 움직임이 느껴졌습니다. 물이 많이 나오는 수도와 물이 덜 나오는 수도 두 개 모두 자리가 날 상황에서 물이 많은 수도 뒤에 줄을 설까봐 물을 뜨시는 분 뒤에 두었던 거리를 조금 앞당겼습니다. 암묵적으로 물이 많은 쪽에서 내가 먼저 뜰 것이란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뒤에서 난 그 인기척은 약수터 옆에 있는 빗자루를 잡더니 바닥을 쓸기 시작했습니다. 겨울이라 사람들이 뜨고 난 물이 옆으로 튀었고 그것이 얼어 살얼음이 되어 위험하니 치우는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약수터에 산에 운동하러 온 사람들이 편하게 물을 마시라고 두고 가는 컵도 바가지도 그분들이 두고 가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이가 든 지금까지 본가에 오면 이 약수터를 산책 삼아 왔다 갔다 하지만 이곳에서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선의로 추운 날씨에도 남을 위해 선행을 하는 분들이 계셨던 것입니다. 이전에도 알 수 있을 만한 일이지만 최근 공용으로 이용하는 산책로에 주차하고 짖는 개에게 쫓긴 경험 때문에 평소라면 넘어갔을 이 행동이 마음에 울림을 준 것은 아닐까 합니다.
친구와 종종 연락할 때 매일이 그렇지나 바쁘지만 하루하루가 재미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일상 중 재미와 특별함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