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변산반도 여행4

by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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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에 '채석강'을 입력하면 위 사진과 같은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주차 요금은 무료이고 화장실도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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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내소사보다는 채석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걸은 후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쉰다면 소소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렌차이즈들은 그 이면에 '표준화'란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오늘날은 개개인의 특성을 중시하는 시대인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프렌차이즈를 선택합니다.

그 아래에는 너무 많은 선택권이 있고 불확실한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내가 아는 것을 선택하는 심리의 반영이라고 봅니다.

한편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모순적인 성격을 많이 지녔고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두 가지 성격 모두 원하는 성향(양가적)임을 고려한다면...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프렌차이즈 선택이 많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봅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공장에서 만든 옷이기에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매우 쑥스러워 하고 이러한 공감이 모여서 TV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의 소재로 활용됩니다.

일반적인 제품들보다 수가 적은 명품이라 불리는 제품들도 동일한 디자인으로 하나 이상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희소성을 근거로 높은 가격을 책정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수는 분명 적은데...동일한 모습의 제품들이고 사람들의 관심이 있기에 적은 수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눈에 더 많이 띕니다. 여기에는 관련 제품의 이미지 활용된 사례와 검색이 쉬운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명품'에 대한 시선 때문에 주목을 더 많이 끌고 사람들의 인식 내에 각인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단기간 많이 생산하는 일반 제품과 달리 오랜 기간 조금씩 생산한 것이 결국은 제품의 누적이란 결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그래서 남들과 특별한 구분점이 되고자 명품을 사용하지만 오히려 개인의 개별적인 성격을 확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명품보다는 제조 과정에서 원석을 부숴야 하거나 금속 배합을 활용하여 일정한 모습을 만들 수 없는 제품들이 개별적인 디자인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수용하는 가격은 명품이 개별 디자인을 가진 제품보다 더 비쌉니다. 이것 또한 개별적 특성(개성)과 표준화(개성 없음)의 두 성격을 모두 지닌 경우라고 봅니다.


명품이란 제품들은 공정상의 차이가 일반 제품과 다른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숙련 기간을 지닌 장인들이 최고의 가죽을 활용하여 제품(가방)을 바느질해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내는 제품은 어떤 장인이 만들든 특정한 디자인을 정확히 재현(표준화)할 때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하나의 제품만 나올 수 밖에 없는 공정(우연을 이용하는 경우 등)으로 만든 제품(악세사리나 특정 문양을 지닌 칼 등)보다 높은 가격이 책정됩니다. 명품들의 표준화된 디자인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은 공정 과정의 개별성이 높은 가격을 수용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롱패딩이 유행할 때가 있었습니다. 롱패딩 안에는 차이가 있을 지라도 길거리에 보이는 모습은 모두 비슷했습니다. 롱 패딩이란 유행으로 표준화되더라도 그 안에는 개인의 개별성을 만족시켰기에 멋짓 스커트를 입은 분도. 스포티한 차림을 하신 분도 일반 교복 차림도 모두 일정 시기거리를 나가면 외형이 똑같아지는 롱패딩을 선택하고 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서로 시선을 마주치면 부끄러워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물론, 패션적 이유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추위로 인해 선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하의 날씨에도 맨살이거나 스타킹 한 장으로 추위를 버티면서 스커트를 착용하는 모습을 근거로 한다면 옷차림[비언어적 표현)을 통한 의미 전달과 패션에 대한 무언의 표현 이유도 있으리라 봅니다. 많은 업체에서 동일 디자인의 롱패딩을 제작한 것은 그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었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 채석강이란 자연이 만들어 낸 특별함이 있는 관광지에서 어디에나 있는 프렌차이즈를 보니 시선이 갔습니다. 저 또한 평범한 사람이기에 채석강이란 특별한 곳에 와서 개별적인 맛을 내는 카페를 들어갈 수도 있고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개성의 선택이라면 특별한 곳에서 특별함을 즐기고 싶은 마음의 작용이고... 프랜차이즈의 선택은 특별한 곳에서 표준화로 실패(평균 이하의 맛의 경험)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선택일 듯합니다. 그래도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생각할 때, 미각을 만족시키는 일도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201122_093825.jpg 채석강 가는 가까운 길로 향하는 표지판을 못 찾고, 돌아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을 찾아서 작은 동산을 넘어 채석강으로 감
20201122_100750.jpg 채석강으로 바로 가는 평지. 상가 사이라서 채석강으로 가는 길인 것을 몰랐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다보면 계획되지 않은 즐거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오전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주차장 자리도 널널하고 무리지어 이동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표지판 따라서 이동을 했습니다. 가장 빠르게 채석강으로 가는 길은 사진처럼 주차장 앞으로 가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게들이 있는 상점가인가 하고 다른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돌아가는 언덕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서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상황을 살피지 못한 자신에게 '아직도 멀었구나'란 말을 먼저 했습니다. 채석강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계획없이 간 여행이기에 채석강이 강이라 생각했습니다.)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다가 있는 낮은 지대를 선택해야 했는데 높은 언덕쪽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당시에 언덕을 오르면서 '이 언덕 사이에 강이 흐르고 그 끝은 바다와 만날 것이다'란 상상을 하면서 열심히 걸었습니다. 산길로 향하는 길을 가면서 급한 것 없이 온전히 나에게 쓰는 시간인 만큼 돌아가도 늦어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을 하다보면 메신저나 공문에 꼭 일시와 장소가 들어갑니다. 특정 직업군을 제외하면 다수는 시간과 장소안에 얽혀 있을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런데 여행이란 것은 이러한 얽힘에서 잠시 풀려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석강을 찾아가는 길은 (채석강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바로 뒤돌아서 집으로 가도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시간 안에 들어가야 하는 출근길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채석강을 다 돌아본 후에 주차장에서 상가들 사이로 걸어가는 짧은 길을 찾았을 때는, 오히려 같은 길로 오가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란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관광 대상을 향하는 길에 사람이 몰리니 상가들이 모여 있는 것인데 그 자연스러운 현상과 그 결과로 생겨난 상점가 사이로 지나가는 길을 읽어내지 못한 미련함을 반성했습니다. 단순 생각해도 내소사를 가는 전나무 길이 시작되기 전까지 좌우로 상가들이 즐비했는데 채석강에서는 이전 여행지에서 본 현상을 적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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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동산을 오르고 내리니 나무 데크로 채석강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이곳에 도착하고 들은 생각은 우연히 간 바닷가 옆길에서 썰물을 보고, '지금 가면 채석강을 볼 수 있겠다'를 떠올린 제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감이었습니다. 그 만족감 다음으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풍경에 대한 감탄이 나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고 나서 들은 생각은, 아직도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힌다지만 생각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눈에 보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지금 바로 보이지 않는 풍경에도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채석강을 가야겠다고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은 바다 옆 길을 갈 때 바다가 썰물로 물이 빠진 것을 본 순간에 감작스럽게 생긴 마음의 흔들림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착해서 봤다는 만족감까진 좋았지만 반대로 물이 찼을 때의 채석강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많은 사진이 있겠지만 그것은 사진을 찍은 사람의 채석강이지 나의 채석강은 아닙니다.

채석강에서 썰물로 생긴 물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걸었던 걸음. 채석강을 등 뒤에 두고 본 바다. 안전 로프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하면서 가까이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등은 그곳에 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여정이라고 봅니다.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채석강 다 봤다라는 짧은 생각으로 돌아올 것이 아니라 물이 차기를 기대리며 잠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야 안다고... 물이 빠진 사진들만 보면서 물이 얼마나 찼을 것인지 그 풍경은 어떨 것인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련함에 대한 반성으로 나중에는 물이 차오른 채석강을 다시 찾아가보고자 합니다.

왜 그 순간에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잊는 것인지 그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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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침식 작용이 계속되는지 관리직원인지 연구원인지 알 수 없는 분들이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낙석 주의를 위해 로프로 경계선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사람들 모두 그 선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로프 옆을 따라서 계속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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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다시 봐도 약간의 두근거림이 생깁니다. 아직은 기억이 희미해지지 않았나 봅니다.



일상에서 '멋'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을 엄격하게 규정해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범한 일상복의 정갈함에서 멋을 느끼고 누군가는 평소에 입고 다니기 어려운 모습을 보고 멋있다고 할 것입니다. 문학에서 멋은 변화 속 균형이란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억을 떠올려서 채석강이 왜 감동적이었고 그 감동의 원인이 '멋'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채석강의 전체 모습은 침식으로 인하여 일정한 층을 이룬 균형잡힌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개개를 보면, 파도가 같아 보여도 내 발 앞까지 오는 파도가 있고 저 멀리서 끝나는 파도가 있듯이 채석강의 층이 만드는 무늬는 모두 다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이를 생각해 본다면 전체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개개의 모습은 모두 차이가 있기에 멋있다고 느낀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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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려 채석강의 큰 규모와 작은 나의 대비에서 오는 감동도 있을 것입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이렇게 거대한 암석과 아주 작은 나를 대비하는 환경이 없으니 특별하게 느껴지고 특별하게 느껴지니 일상과 다름에서 오는 발견과 마음의 움직임을 준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위험을 위해 선을 두었는데 그 안에 넘어가서 직접 암석을 만져보지 못한 것은 아쉬웠습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그리고 채석강과 같은 자연물을 두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맨질맨질한 부분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만지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을 만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만지지 말라는 것을 아는데 왜 만졌을지가 궁금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만지지 말라는 이성보다는 만지고 싶다는 욕구와 본능이 앞선 것(감성)이라고 봅니다. 본능이란 것에 대해서 인간 행동을 이해할 때 종종 활용하는 듯합니다. 우선 과학 분야에서 이전에 설명되지 않던 행동들을 설명할 때 본능 또는 유전자에 새겨진, 행동이라 설명을 합니다.

교과서에서 언어, 준언어, 비언어 제시를 하면서 비언어 부분에서는 언어적 부분보다 시각적 정보를 많이 받아들이는 인간의 특성 때문에 언어와 함께 쓸 경우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오른쪽으로 가라면서 왼쪽으로 손짓을 하면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경우 등) 중 비언어적 표현을 따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 그 의견이 옳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성적인 옳음을 무시하고 해당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를 일상 중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들을 생각할 때 만지지 말라는 것을 만지고 들어가지 말라는 것을 들어가는 경우는 이성적인 부분을 감성적인 본능이 앞서서 스스로를 설득(생각이나 행동을 하도록 변화시키는 것)시켜서 그런 금지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채석강에서는 위험하다고 라인을 둘러 놓은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 그 아래서 찍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은 보지 못한 듯합니다. 어쩌면 위험하니 주의하란 것이고 들어갈 수는 있는 것인데 라인만 보고 직접 라인 안으로 들어가서 만져볼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기억이 흐릿해 지는 것을 느끼면서 어디 여행을 많이 다니는 것 보다는 여행을 하는 도중에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뒤늦게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여행다니면서 좋은 장소를 볼 때마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란 말을 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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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을 등지고 바라본 바다의 모습입니다.

파도치는 바다의 모습이 지루하다 할 수도 있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도가 처음 바라봤던 곳과 비슷하게 올 때도 있고 조금 덜 올 때도 있고 넘어설 때도 있어서 바다와 파도라는 크게 보던 것에서 조금 자세하게 보면 불멍에 못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20201122_095052.jpg 채석강 길 끝의 모습입니다. 저기도 찾아가 볼까 했는데 바다라면 어디에나 있는 모습이기에 가지 않았습니다.

채석강 길을 가로질러 가려고 했는데 가는 길이 밀물로 잠겼는지 낙석 주의를 위해 둘러놓은 로프 밖으로 길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프 안쪽으로 들어가서 건널까 하다가 그냥 걸음을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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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다시 사진을 찍어 봅니다.


멋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처음 이 길을 왔을 때와 같은 감흥은 줄어든 듯합니다. 왔던 길과 다른 점은 풍경이 오른쪽에 위치하던것이 이제는 왼쪽에 위치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로는 채석강은 이제 와 본 곳이다란 생각이 자리 잡았나 봅니다.

이곳에만 와야 볼 수 있기에 빠른 걸음을 걸었던 걸음과 재촉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반대편까지 건너가보지 못한 아쉬움과 이곳은 이제 다 봤다는 마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갔습니다.

그래서 20분 전에 봤던 풍경과 되돌아서서 보는 풍경이 다른데 그 차이에 대해 감흥은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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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왔던 나무 데크를 기점으로 다시 올라갈까와 그 데크를 지나서 더 갈까를 고민했습니다.

기왕 150km 이상의 거리를 왔으니 조금이라도 더 보자는 마음으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해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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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강 입구로 나가면서 본 안내판입니다. 처음에 '채석강'이란 말만 들었고 잠깐 검색을 했을 때 썰물 때 가야 한다고 해서 강인데 썰물에는 수위가 낮아지고 밀물에는 수위가 높아지는 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좌우로 산이 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강이라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채석강은 바다에 있는 퇴적층이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상력도 이야기하지만 그 상상력은 마치 블록 쌓기 놀이를 하듯이 네모난 불록들의 모임이 건물이 되고 놀이기구가 되는 것처럼 기존의 것들의 모임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모습을 생각하더라도 기존의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편 상상력은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뛰어넘어 현실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 없어도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만들어 낸다고 봅니다. 채석강에 대하여 제가 생각한 채석강의 모습은 양쪽으로 강의 경계를 지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물이 되면 일반 강이 바다로 이어지고 썰물이 되면 강의 폭이 줄어들면서 강을 따라 걸으며 좌우로 물이 빠진 부분을 감상하는 풍경이었습니다. 비록 변산반도 채석강은 이런 곳이 아니지만 상상했던 장소가 언젠가 어디서 우연히 만나면 여행의 재미가 배가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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