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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 쓰기: 마을 정자 아래 아령

by 기록

저는 시골 마을에서 근무하다가 도시로 근무지를 이동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 가는 것이 귀찮아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정자나 나무 아래에는 종이 박스가 많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앉으실 것을 들고 오기도 하지만 중장년의 어르신이 오며 가며 어르신들께서 사용하시도록 박스를 두기도 합니다. 박스를 수거하시는 분들도 이 박스는 건들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낡은 박스는 종종 깨끗한 박스로 교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 근로를 하는 어르신들이 이곳에서 쉬시면서 파란색 공용 쓰레기 봉지를 두고 가십니다. 서로 오며 가며 이렇게 정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저도 자주 쉬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이곳 그늘에서 쉬다가 종종 운동을 하려고 아령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아령 구입일은 5월 1일, 배송일을 생각하면 5월 17일 이니 10여 일 정도 사용한 아령입니다. 그런데 정자에 둔 아령을 누군가 박스에서 꺼내가고 빈 박스만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우선은 가지고 있던 볼펜으로 아령을 돌려 달라고 방석으로 사용하는 박스에다가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두 분 그리고 젊은 남성분이 헤드폰을 착용하고 오셨다가 제가 있는 것을 보고 근처 의자에 앉아 있다가 가셨습니다. 이 분들을 보면서 저는 저 사람들 중 아령을 가져간 사람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정자에서 쉬었다는 이유로 저는 처음 보는 분들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이 일로 인한 영향력의 범주였습니다. 아령은 5킬로그램으로 부피도 상당하며 2개이기에 무게는 총 10킬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간 사람은 특별하지 않는 이상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아령을 도난당한 저와 제가 의심한 사람 세 분을 포함해 총 네 명의 사람에게 영향력이 행사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조금 더 큰 일이라면 사회적 비용 측면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용은 1회. 소유 기간은 10일 정도인 물품을 도난당하니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금전적인 손해였습니다. 그리고 왜 금전적인 손해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령이 없음을 통해서 탁 트인 야외에서 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바로 떠오른 것은 금전적인 손해였습니다. 아마도 이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가치를 돈이란 가치로 편하게 치환하던 버릇이 작용해서 그런 것이란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습관이 익숙해서 때로는 금전적인 문제가 아님에도 금전적인 보상을 하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는 주로 인간 사이 관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금전적인 손해가 떠올랐지만... 어차피 10일 이상 소유한 기간 중 1회만 사용했던 것을 근거로 '괜찮아. 그리고 돌려주겠지'라며 자기 합리화를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처음에 화가 났을 때는 방석으로 쓰는 종이와 아령이 담겼던 상자에 '새것입니다. 돌려주세요'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정자에서 쉬면서 다른 문구를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밖에서 운동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아령을 상자에 넣어 주세요' 이 문구는 내일 프린트한 후에 정자에 부착해 둘 예정입니다.

시간이 흐르니 구입은 했지만 잘 사용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아령을 도난당한 것에 대해 합리화를 했습니다. 그 결과 어느덧 아령을 찾으면 좋고 잃어버리면 어쩔 수 없지만 생각으로 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령을 가져가신 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령이란 물품의 특성을 고려할 때 금속을 판매하려는 어르신, 이 아령을 집에서 사용하려는 사람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령의 무게가 10킬로그램임을 고려한다면 아령을 가져가신 분은 집에서 사용하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선 두 개의 아령을 양손에 들고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령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집으로 이동할 때까지 인식적 거부감이 드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인식적 거부감은 규칙을 지키지 않음에 불편한 마음으로 작용합니다. 아주 사소하지만 급식 시간에 수량이 명시된 반찬을 다수가 명시된 수량에 맞게 하나씩 가져가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식적 거부감은 사안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다르게 작용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고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거부감을 이겨내고 그분은 아령을 들고 이동했을 것입니다. 다양한 내용들이 익명성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펼쳐진 인터넷의 사례들을 근거로 생각해 본다면 인식적 거부감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합리적인 논리 형성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인식적 거부감이 없었다면 그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생각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물품의 특성상 집으로 가져갔다고 가정하면 이 아령을 사용하거나 집에 일정 장소에 비치해 둘 것입니다. 이렇게 비치해 두었을 때 우리가 화장실에서 우연히 어떤 문구를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처럼 그 아령을 보고 불편한 감정이 들어야 하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거 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문제입니다. 또는 인식적 거부감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점차 옅어진다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성인이라면 그것이 문제 행동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은 매우 적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쓰면서 아령을 가져간 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아령이 버려진 것이라 생각해서 가져갔다면 '밖에서 운동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란 종이를 보고 아령을 상자 안에 넣어둘 것입니다. 만약 아령을 집에서 사용하면서 이 정자에 여가를 보내러 나온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저와 그 사람이 한 공간에 휴식을 취한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구매한 아령, 그리고 정작 구매했다가 쓰지 않은 아령 덕분에 재미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날이 더워서 그런지 의자 위에 부채가 놓여 있습니다. 저 부채는 제가 다음에 왔을 때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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