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나그네 윤순학 Sep 13. 2017

#. 블랙커피를 사랑한 발자크

프랑스가 낳은 대문호 - 발자크와 커피

#. 검은 물, 블랙커피를 사랑한 문학가. 발자크



간밤에 내린 비로 베란다 창밖이 촉촉하다.


주말이라 휴식의 여유를 즐기며 잔뜩 찌푸린 창가를 내다보니 따듯한 커피 한 모금이 생각난다.

그다지 커피 마니아는 아닌 탓에 우리 집에는 간단한 드립용 도구 한 세트가 있어, 나름대로 원두커피를 즐길 순 있다. 사실 나는 커피맛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분위기 낼 때는 원두커피를 좋아하고,

업무 중이나 회의 중에는 믹스커피를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따라 달달한 맛이 댕겨 막 내린 커피 한 컵 속에 각설탕 두 개를 빠트렸다. 짙고 검은 물. 한입을 들이켜니 첫 입맛은 달고 혀 맛은 쓰다. 어울리지 않는 오묘한 맛이다.


오래전 아라비아에서 처음 건너온 커피를, 서양인들은 악마의 검은 물이라 저주했지만 이내 곧 열광했다. 검은색 자체가 신비하고 때론 공포스럽기도 했지만 머리를 맑게 해 주고 피로를 가시게 해주는 묘한 효능에 신기해하며 감탄했다. 비록 커피 속의 ‘카페인’이 부린 조화이지만 말이다.


역사상 유난히도 커피를 사랑한 예술가가 있다. 발자크


프랑스의 위대한 문학가. 발자크. 그의 커피 사랑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1시에 일어나 블랙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갈까마귀 깃털로 만든 펜대로 쉼 없이 꼬박 책상에 걸터앉아 오전 7시까지 쓰고, 목욕 후 삶은 달걀과 커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또다시 글쓰기 작업에 열중한다. 점심도 커피와 곁들인 간편식을 들고 오후에도 또 커피 한잔. 그가 글쓰기를 마치는 시간은 대략 오후 6시다. 글 쓰는 내내 중간중간 마시는 커피는 감히 셀 수도 없다. 


하루 16시간, 글쓰기 노동. 하루 커피 50~80잔

저녁이 되면 커피 대신 와인을 들고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긴다.

이유는 곧 늦지 않게 내일 일과를 위해 잠을 청하기 위해서다. 내일도 힘든 문학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기에.


그는 매일 커피 50잔을, 때로는 80잔, 100잔까지 마셨고

전해지기론 평생 5만 잔의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누가 그걸 일일이 세어 본 것은 아니겠지만,

발자크 스스로 그만큼 인정하고 외부인들에 전했기에 가능한 얘기다.     


아무리 커피 애호가라고 해도 하루 수십 잔의 쓰디쓴 커피 마시기가 가능한 일인가?

평범한 우리네는 하루 대여섯 잔 정도는 마셔본 기억이 있지만, 그 이상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신 날은 아마도 불면증으로 밤새 날밤을 새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발자크에게도 애환이 있었다. 진정 커피를 즐기는 애호가가 분명하지만

더러는 고된 글쓰기 작업을 위해, 잡념을 쫓고 머리를 끊임없이 긴장시키기 위해,

혹은 피곤한 심신에 몰려오는 잠을 쫓기 위해 선택한 눈물겨운 커피이기도 했다.     


글쓰기 노동을 위한 눈물겹고 쓰디 쓴맛일 수도… 예술과 현실의 아이러니.    


그의 글쓰기 작업은 거의 매일 하루 14 ~ 16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힘든 노동의 산물이었다.

사업 실패로 남은 빚을 갚기 위해, 사교에 치장할 비용을 벌기 위해

그는 다수의 작품을 끊임없이 생산해 내야 했다. 


많은 작품을 써서 출판사에 초고를 넘기고 그에 대한 원고료를 받아 막대한 생활비를 감당했다.

발자크의 거대한 저택 유지와 사교계 활동에 드는 씀씀이가 어마한 만큼

그의 고된 문학 노동의 강도도 갈수록 더해갔다. 


발자크는 평생 5만 잔의 커피를 마셨다.

51세의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발자크는 900여 편의 소설을 집필했다.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인간희극]등 그의 대표작 속에는 프랑스의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생생한 조감도가 녹아들어 있다. 프랑스가 위대한 국민작가로 그를 추앙하고 사랑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창작해 낸 그 막대한 량의 작품 뒤에는 생애 그가 마신 5만여 잔의 커피의 역할이 컸다.   


 





그 당시에 왕성한 활동을 하던 예술가들도 사정은 이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이 시대에 커피를 사랑한 유명인 사는 발자크 이외에도 많다.


베토벤, 바흐, 볼테르, 장자크 루소....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음악가, 미술가, 철학가등이 포함된다.

역시 커피의 오묘한 기능이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분명 도움을 주었음은 틀림없다고 보인다.


베토벤은 매일 아침, 정확히 60개씩 원두를 세어 커피를 내려마실 만큼 맛에 엄격했다.

손님이 오면 손님 수만큼 120개, 180개…

이렇듯 일일이 원두를 세어 곱게 갈아 대접했다고 한다.


아라비아에서 건너오는 커피값이 매우 비싸 원두를 구매하느라 주머니 사정이 만만치 않았지만

가난한 베토벤도 커피 추출기를 먼저 구입할 만큼 커피에 대한 사랑은 지극했다.


계몽주의 선구자 볼테르도 하루 50잔의 커피를 소비한 커피 마니아를 넘어 ‘커피 폐인’이었고,

늘 그와 함께 했던 장 자크 루소 역시 커피 마니아로

프랑스 시민혁명 사상적 근간은 두 사람의 커피타임에서 나눈 무수한 대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훗날 사람들이 이야기할 정도이다.    


음악가 바흐도 커피를 사랑한 딸과 반대하는 아버지의 실랑이를 소재로 한 ‘커피 칸타타’로 알려진

 ‘칸타타 BWV211’을 남겼고, 브람스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악보 종이, 담뱃갑과 커피 추출기를 찾을 만큼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커피 애호가였다. 




커피가 생소하던 구한말 우리나라에도 커피를 사랑한 군주가 있는데.


비운의 마지막 임금. 고종이다.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 가비]의 모티브가 된 실화이지만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도 커피 사랑이 남달랐다고 한다. 고종 임금의 사망에 대해 독살설이 유력한데, 어느 날 평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시던 커피맛에 이상을 느껴 입속의 커피를 뱉었는데 이는 암살을 시도하기 위해

독(아편)을 넣었던 것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대한민국 커피시장’은 어머어마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6년 기준으로,

시장규모 6조 4천억 원 이상, 커피 수입 세계 7위, 국내 커피전문점 3만 개 육박

성인 연간 377잔 음용 (1일 1 커피)    


가히 커피 소비대국. 커피 공화국의 외견 지표로서 손색이 없다. 


커피공화국, 대한민국!

요즘은 커피시장이 포화라는 시그널이 계속 들려오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의 커피 사랑이 식을 날이 과연 올까? 

위대한 대문호 발자크가 하루 작품을 위해 고뇌하며 음미한 쓰디쓴 블랙커피.

그가 마신 쓴 커피맛에는 예술의 진한 열정이 녹아들어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생활의 여유, 낭만의 감성보다는 현실, 고독, 고통의 애환이 가득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비 갠 주말 오전, 내가 마시고 있는 쓰고 달달한 이 커피도 많은 사색을 자아내게 한다. 오늘만큼은 그 옛날 발자크가 마시던 그 커피맛을 어림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뒷맛이 좀 쓰다. 






작가의 이전글 요괴마을에 사람들이 몰려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