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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Oct 30. 2020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걷는 제주

: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제주의 아름다움

엄마, 우리 제주에 갈까?


"엄마 별일 없지?"


제주에서 살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 매일 얼굴을 보지 못하니, 자주 통화를 하며 엄마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우리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유난히도 엄마와의 통화에서 더 마음이 애틋해졌고, 제주에 도망 온 딸을 걱정해주는 마음에 자주 뭉클했다.


날씨가 유난히도 좋은 날이면 엄마를 떠올렸고,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 엄마와 오랜 시간 통화를 했다


어린 시절에는 강하게만 느껴졌던 엄마가 점점 더 소녀스러운 모습으로 변하면서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제주의 풍경을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소소한 자연의 풍경을 보고 너무 아름답다며 박수를 치고, 메신저 프로필을 내가 보낸 여행 사진들로 바꾸기도 하는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와 함께 제주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내가 생신 선물로 제주 여행시켜 줄게요


겨울은 엄마의 생신이 있는 계절이다

엄마의 생신을 핑계로 제주에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엄마가 단번에 "좋아"라고 이야기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가족들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망설이는 엄마에게 나는 "일단 가자"를 외치며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엄마가 2박 3일 집을 비운다고 해서 가족들이 힘들어질 것도 아닐뿐더러 이번 여행은 엄마와 단 둘이 떠나고 싶었으니 우유부단한 엄마에게는 둘째 딸의 단호함이 필요했다


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 동백꽃밭에서



엄마, 우리 단둘이 제주에 가요


몇 년 전, 처음으로 엄마에게 생신선물로 제주를 여행시켜드리며 동생과 셋이 여행은 온 적도 있었다


추운 계절이었지만,  변함없이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들은 여전히 신비로웠고 엄마의 두 눈으로 마주한 제주 역시 아름다운 섬이 분명했다. 엄마는 함께 제주에 다녀오고 나서야 나의 잦은 제주행을 적극 공감하기 시작하셨다


"엄마 제주 다녀올게요"


일 년에도 몇 번씩 혼자 제주로 떠나는 딸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셨을 텐데,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엄마는 내게 제주에 가는 이유를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제주에서 세 달의 시간을 보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엄마를 떠올리곤 했다. 육지에 돌아가 취업을 하면 엄마를 제주에 모시고 오겠다고 다짐했다. 육지에 돌아오고 나서도 취업은 점점 더 늦어졌다. 이십 대의 끝에 서있던 나는, 단단한 척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최종 합격 후 입사 취소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기도 하고, 매일 이력서를 넣고 다음날 연락을 기다리는 일을 반복했다.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자 나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정도의 사람일까 자책하며 무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책을 읽고 운동을 했지만, 다음날이면 찾아오는 밝은 하늘이 두렵기도 했다.


지친 마음 끝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엄마의 손을 잡고 제주에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이번엔 단 둘이 떠나요"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엄마와의 제주 여행을 계획했다. 세 자매인 나는, 모든 여행에서 엄마와 단둘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 여행만큼은 엄마와 단둘이 떠나자고 이야기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을 때 엄마와 단둘이 제주에 오고 싶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제주의 바다, 유난히도 이곳을 좋아하는 엄마



제주는 언제 와도 참 아름답네, 늘 감동이야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는 일 년에 몇 번씩 떠나오는 제주면서도 엄마와 함께 제주에 오는 일은 항상 다음으로 미뤘던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엄마와 처음으로 왔던 제주에서 엄마가 제일 감동했던 풍경을 또다시 엄마와 함께 마주했다


"제주 바다는 참 예쁘다"


흐린 날씨와 강한 바람이 부는 제주 바다였지만, 엄마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제주였다. 엄마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어떤 생각과 마주했을까. 엄마와 함께 제주에 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제주에 함께 가야 한다며 단호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의 멋진 포토그래퍼, 엄마가 찍어 준 나의 인생 샷
엄마, 떨어진 꽃잎도 하트 모양이야. 참 예쁘지?


제주에서의 2박 3일, 엄마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처럼 시간을 보냈다.


서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하며, 제주의 푸른 하늘과 분홍빛 동백을 마주했다. 내가 좋아하는 제주 바다를 마주하며 엄마와 함께 감동했고, 제주의 핑크빛 동백을 마주할 때면 엄마는 세상 소녀스러운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곤 하셨다.


떨어진 동백을 보며 "엄마, 꽃이 봐봐 참 예쁘지?"라고 말하면 "어머, 꽃잎이 하트네 참 예쁘다"라며 함께 웃어주는 엄마가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엄마가 함께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고, 엄마와 함께 제주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은 더욱 행복했다. 엄마와 단둘이 더 오래 여행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우리 오래오래 함께 여행하며 살아가자


이십 대의 우리 키우느라 바쁘게 살아왔을 엄마의 아름다웠던 청춘을 떠올려본다


결혼을 하고 세 딸을 키우며 분명 행복한 일들도 많았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울면서 세 딸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버거웠을까 상상해본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울었을 엄마의 마음을 안아주고 싶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는, 엄마라는 존재의 강인함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단지, 삶에 지치고 힘들어도 세 딸들을 지켜내고 포기하지 않은 엄마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나 역시 삶에 지친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종종 투덜거리곤 하지만,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며 웃는 엄마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소녀 같은 엄마에게 행복을 자주 선물하는 딸이 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추운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엄마 오래오래 건강해주세요. 우리 오래오래 함께 여행하며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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