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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Oct 31. 2020

사랑하는 섬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서툴지만 한 땀 한 땀 제주를 기억하려 애썼던 날들


제주에서의 삶을 더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우연히 동생이 자수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되면 함께 배우자고 이야기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우선 이번 제주에서의 삼 개월을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에코백을 만드는 자수 수업을 등록했다. 내가 살던 동네의 옆동네 공방에서 진행하던 1:1 수업이었다. 십자수도 어려워하고 뜨개질도 못하는 나는, 1:1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 가짐으로 시작했던 수업은 시작되었다

 

제주의 맑은 가을 하늘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제주 바다를 곁에 두고 걷는 시간이 참 좋다.



공방은 내가 살던 곳에서 20분이 채 안 걸리는 곳에 있었지만, 바다를 보며 하늘을 보며 하얀 모래 위에 글씨를 쓰면서 나는 1시간 동안 천천히 걸어 공방에 도착하곤 했다


예쁜 제주바다를 곁에 두고, 파란 하늘과 제주의 야자나무를 보며 걷는 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매일 같이 산책을 하던 길이었지만, 늘 새롭고 늘 신비로웠다. 나에게 제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신기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를 곁에 두고 산책을 할 때면, 내가 정말 제주에 있구나 라는 안도감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높은 파도가 휘몰아쳐 오는 듯한 마음에 늘 불안하고, 두려웠던 마음은 아름다운 풍경을 곁에 두고 걸으면서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음을 느끼곤 했다. 내가 제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던 날들이었다



처음 자수를 시작했던 날, 두근두근



처음 자수를 시작했던 날, 손재주가 없어서 유독 긴장했던 날로 기억한다


선생님이 그려놓으신 도안 위에 알려주신 방법으로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고요한 적막이 흘렀고, 분명 나를 위한 시간이었는데 혹여나 내가 잘못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했던 시간이었다


디자인을 고민하다가 에코백에 내가 살았던 협재 바다를 담기로 했다


협재 바다와 금능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애정 하는 섬 비양도를 먼저 완성하고 바다의 물결을 자수로 놓기로 했다. 선생님에게 배우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자수를 한 땀 한 땀 놓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없는 편인 나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을 까먹지 않기 위해 자수를 배운 날이면 집으로 돌아와 계속 자수를 놓곤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섬, 제주 그리고 협재



비양도라는 섬을 완성하고, 제주의 파란 바다를 수놓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까지 수놓고 나니 내 기준에서는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홀로 박수를 쳤다


사실 추억하기 위해 시작했던 수업이 조금씩 스트레스가 되면서 내가 왜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까 라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시간이 지나 제주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가지 못할 시간들을 상상하며, 오늘 제주에 있는 이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자며 다짐했다


몇 번의 수업을 가기 위해 제주 바다를 산책하듯 거닐었고 그렇게 나의 자수 수업은 끝이 났다.


내 인생의 첫 자수 수업이자 마지막 수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도전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배웠던 시간이었다, 부족한 작품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완벽한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아름다웠던 가을의 제주를 여전히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추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수많은 경험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스쳐 지나갔던 순간들과 스쳐 지나가는 관계들이 더 많아지겠지 생각했다. 오늘 이 순간에 머물 수 없다면 오늘이라는 순간을 기록하며 기억하자고 다짐해본다.


수많은 순간들이 흘러가겠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애써 기억하려 기록하려 한다


내가 사랑하는 제주,

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제주를 기억하려고 애쓰기도 했고

여전히 그날의 제주를 기억하며 기록하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낀다


추억할 수 있는 제주에서의 순간들이 있어서 행복했고

그 순간 들을 기록할 수 있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들이다


제주를 추억하며 나는 잠시 잊고 살아왔던 제주에서의 몽글몽글한 마음들과 더 자주 마주하며 말랑말랑한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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