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조금 늦은 여름휴가로 제주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8월 중순쯤이었을까. 여전히 더운 제주 날씨에, 멋을 부리던 23살의 나는 짧은 원피스에 배낭을 메고 열심히 셀카를 찍으며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첫날밤이 지나고 조식을 먹기 위해 일어났던 아침, 게스트하우스 창문 밖으로 보이던 푸른 제주 바다를 잊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제주 바다를 보며 살아볼 테야"
자연스럽게 잊힐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꿈은, 단순히 꿈으로 끝나지 않았다. 회사가 다른 회사로 계약이 이전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었고, 이직을 준비하기에 앞서 제주살이를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제주 살이를 준비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했던 건 제주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갈 것인지 교통이 편리한 터미널쪽에서 살면서 자주 여행을 다닐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나는 제주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을 했고, 사장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 안심이 되었는지 고민해 보라는 언니의 말에 "저 제주도 갈게요"라고 바로 결정을 했다
"엄마 나 제주도에서 한 달만 살아볼게요"
매일 카페에 올라오는 게스트하우스 스텝 공고를 보느라 바빴는데, 이제 갈 곳을 정했으니 엄마에게 제주도에 다녀온다고 했다. 경주에서 1년을 지낸 덕분인지 제주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엄마는 잘 다녀오라며 나의 제주행을 응원해 주셨다
내가 처음으로 제주살이를 했던 2014년은 제주살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던 때다. 그저 직장 생활을 하다가 힘든 시간을 보내던 청춘들이 제주에서 길게 여행을 하다 보니 스텝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일이었다. 게스트하우스마다 근무 조건이 모두 달랐다, 글로 판단할 수 없었다. 조금 조심스럽게 고른 곳이, 사장님이 여자분이신 곳이었고 파티를 하는 곳이기보다 조용한 공간을 가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제주 집은 거실 창으로 제주 바다가 보이고 거실에는 책장에 책이 가득한 아늑한 곳이었다. 옥상으로는 뻥 뚫린 제주 바다가 보이고, 밤이면 옥상에서 별이 보이는 낭만 가득한 곳, 나에게 첫 제주살이가 낭만이 되었던 곳이었다.
첫 제주살이
제주 살이를 결정하면서 기간은 최소 한 달을 잡았다
조금 더 마음이 흔들리다면 두 달까지 생각해 보기로 했고, 나는 한 달치의 짐가방을 튼튼한 두 팔로 안고 제주로 떠났다. 비행기에서 내려 터미널로, 터미널에서 서일주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를 가야 하는 나의 숙소. 버스 맨 앞자리에서 무거운 가방을 안고 1시간 30분을 달렸다, 설렘과 두려움이 반복되었다
"잘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제주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순간들이 궁금했고,
나는 휴대폰에 새로운 노래들을 넣으며 처음 만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
낯선 마음들이 피어오른다.
나는 그럼에도 제주에 왔고, 이곳에서 매일 바다를 마주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에 일단 두려움을 잠시 집어넣기로 했다. 지금보다 낯가림도 훨씬 심하고,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이십 대의 제주 살이가 걱정스러우면서도 그저 바다를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행복한 순간이었다
내가 앞으로 한 달 동안 지낼 방을 배정받았다.
좁은 방 한 칸에 이층 침대가 두 개 놓여 있었고, 가운데 길로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길만이 존재했다. 1층에는 짐을 놓고, 2층에서 생활했다. 자다가 핸드폰을 떨어트린 적도 여러 번이었고, 내려올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사다리에 온 힘을 다해야 했다. 혼자 생활하는 방이 아니라 최소 2인에서 3인까지 함께 사용했던 우리 방, 각자의 삶이지만 우리의 삶이어야 했다
서로 조심해야 했고, 조금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마음이 든든했다
그저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온 육지의 청춘들,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불을 옥상으로 올려 탈탈 털고 광합성을 시켜줬다, 1층부터 3층까지 청소를 하고 점심을 같이 먹는다. 점심을 먹고 땀으로 범벅되어 있는 몸을 씻고 나서야 카페를 가거나 거실에서 바다를 마주한다. 때로는 숲으로, 오름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고 여름이 돼서는 함께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한 달이 두 달이 되었고, 두 달이 조금 넘어 나는 두 달 반의 시간을 제주에서 보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바다를 마주하고
매일 저녁이면 옥상에서 일몰을 마주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전체 소등 시간이 있어서 모두가 잠든 밤, 거실에서 은은한 조명을 켜놓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일을 좋아했고 근처 포구로 밤 산책을 갔다. 좋아하는 쿠키를 먹고, 노래를 들으며 소소한 이야기가 오갔던 날들. 제주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저 나에게 설렘이었다, 모든 순간들이 처음이었고 다시 오지 않는 날일지도 모르니까.
여행 그리고 사람
모든 순간의 처음이 존재한다.
여전히 일 년에 3번 이상 제주를 가지만 나에게는 첫 제주살이의 기억이 가장 짙게 남아있다
걱정이 많아 오랜 시간 고민하고 결정하는 타입인 나는, 제주살이를 준비하면서도 꽤 많은 걱정을 했다. 혹여 위험하지는 않을지, 이상한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지, 제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지 말이다. 그리고 제주 여행을 가기 전 날, 인사를 하려고 오랜만에 만났던 언니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여행에서 만난 사람과의 관계까지 걱정을 하게 되었고, 또 다른 누군가도 자신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일을 보며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 가득 몰려왔던 순간이었다
" 가지 말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또다시 여행에서 만난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두렵고, 나는 잘하려고 했던 일들이 결국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일이 두렵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저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 한두 명의 사람이 널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고 해서 넌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그 한두 명만 빼면, 모두가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잖아. 그런 사람들 말 때문에 상처받지 말고 다녀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그저 나의 마음을 공감해 주려고만 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덧붙여 나에게 사람에게 정을 너무 주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던 친구의 마음 덕분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내서 제주행을 택할 수 있었다
첫 제주살이 덕분에 나는 여전히 제주를 사랑한다
첫 제주 살이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일기를 시작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24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는 나이에 혼자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었다. 여전히 내가 살았던 제주 바다를 사랑하고, 노을 지는 바다를 사랑한다. 첫 제주살이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무언가를 시작하기 두려워하고 있다면,
내가 그 시작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그 시작을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저 제주 바다를 보며 살아보겠다고 생각했던 육지 청춘이었던 나는,
그저 제주를 살아 보겠다는 소소한 꿈을 이루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첫 제주의 짙은 추억들은 이십 대의 나에게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음이 분명하다. 용기를 낸 나에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응원해 준 내 사람들에게, 제주에서 함께 첫 제주살이를 했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 날들. 나는 그렇게 여행과 삶을 통해서 여전히 삶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