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슬 Feb 12. 2021

삼십 대가 되고서야 선명해진 것들

스물아홉을 지나고 처음 마주했던 서른 살의 기록

이십 대 그리고 삼십 대


수없이 흔들렸던 이십 대를 보내고 작년에 서른이 되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기 전부터 여자 나이 서른이 되면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기만 했다. '이럴 거면 얼른 서른이 되어버렸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서른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삼십 대를 마주하게 되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는 듯이 나에게 겁을 줬지만 사실 여자 나이 서른이 되어도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왜 여자들에게만 서른이라는 숫자가 유독 더 크게 느껴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남은 채 나의 서른은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그렇게 서른 하나가 되었다


여전히 주변에서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이들에게 휘둘려 겁을 먹고 있는 스물아홉이 있다면 나의 서른의 기록을 마주하고 조금 더 용기 있는 서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서른을 기록하고, 나의 서른하나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 하려 한다.






처음 20살이 되었던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호불호가 강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분명하였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관심 없는 사람 역시 분명했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거짓말을 선천적으로 못하는 성격이었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기보다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하는 것들을 찾아서 묵묵히 해나갔다. 조용하고 소심한 부분도 많았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도움을 받지도 않았던 독립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나의 성향도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이른 나이에 시작했던 사회생활에 10년 정도 서비스업의 성향을 띈 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관심을 갖어야만 일처리가 진행됐다. 사람의 눈과 말투만으로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게 일을 하는데 수월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소심했지만 대범하려고 노력했고, 내 할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면서 산다는 것은 나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에 담아두기보다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렇게 나의 원래의 성향과 이십 대를 보내고 난 후의 지금의 내성 향은 어쩌면 많은 부분에서 변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분명 있지만 좋은 점을 조금 더 깊게 보고 키워나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심하고, 혼자 수많은 것들을 안고 살아가며 자주 넘어지고, 울었던 내가 이십 대를 통해 마주했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서른 살이 되어 마주했던 일 년을 정리하며 누군가에게는 함께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평범하지만, 수없이 도전하고 넘어졌던 나의 이십 대를 보내고 마주했던 삼십 대의 시작을 함께 마주하며 앞으로의 삼십 대를 함께 고민해 나갔으면 좋겠다




삼십 대가 되고서야 선명해진 것들


수많은 관계에 집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여전히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자주 마주하곤 한다. 가까운 가족부터 친구들 그리고 직장 동료들까지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며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나 역시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던 이십 대에는 수많은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인간관계에 조금 더 단호해지자고 다짐했던 일들이 꽤 있었는데 두 가지 경우가 나에게는 크게 느껴졌다


하나는, 혼자 처음 떠났던 여행에서 만났던 여행자와 꽤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어느 그분은 진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삶을 마음대로 평가했고, 나의 직업/연애/관계 등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나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운함이 가득했는데 돌아보니 나에게 무례한 사람에게 건네줄 마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주변에서 당신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면, 그 관계에서 멀어져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둘,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해오는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괜찮다. 한 친구는 꼭 자기가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나에게 연락을 취해오곤 했다. 주변에 아는 알바 자리가 없는지, 자신의 힘든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기도 하고, 심지어 남자 소개를 원할 때만 나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어렸던 나는, 하나하나 다 답변을 해주면서도 마음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니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해오는 무례한 사람에게는 나 역시 친절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오랜만에 여행 계획을 핑계로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나눌 수 있다는 기쁨과 내가 좋아하는 곳을 누군가도 마주하며 행복감을 몇 배로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자주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았고 나에게 남은 건 허무함 뿐이었다


그렇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관계/ 앞에서 칭찬하고 뒤에서 나를 욕하는 관계/ 나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 내가 잘되면 질투하는 관계 등 - 나에게 마음의 안정과 용기를 주는 관계가 아니라면 지금부터 조금씩 멀어져도 충분히 괜찮다


언젠가는 멀어질 관계들 때문에 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 받지 말고 지금 말하는 연습은 필요하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무례한 말을 건네서 내가 마음이 좋지 않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지 말고 지금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 역시 늘 할 말을 하지 못해서 마음속에 꽁꽁 감춰두고 나중에 꼭 이 말을 해야지 라고 다짐했던 날들이 수두룩 하다. 내 마음이 상처를 자주 받다 보니, 내가 누군가의 말에 더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다 할 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는 항상 타인의 무례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상처 받고 돌아오는 사람이었다. 타인은 장난으로 건넨 말이겠지만, 나는 상처가 되었고 그 상처가 깊어질수록 나는 더 날카로운 사람이 되고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고나서부터 지금 할 말을 미루지 말자고 다짐했다, 누군가 나에게 건네는 상처를 온전히 상처로 받지 말고 조금 더 유머러스하게 받아치자고 다짐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기 한 달 전부터, 나에게는 '곧 서른이네요'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서른이 된다고 한들 '나'라는 사람은 달라지는 게 없는데 나이만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이 꽤 무례하다고 느껴서 나 역시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에게 '네, 전 곧 서른이네요. 곧 마흔이시네요.'라거나 '네 전 곧 서른이네요, 곧 오십이 되시니 어떤 기분인지 알려주세요' 라며 지금 말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마음은 평화로웠다. 그 순간에 내가 해야 할 말을 미루지 않고, 무례한 말에 조금 더 유쾌하게 받아치는 내 모습이 꽤 대견해 보였으니까. 나처럼 소심하고, 할 말을 미루면서 상처 받는 이들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웃으며 자신의 할 말을 세상에 소리쳤으면 좋겠다


'너. 나. 잘. 하. 세. 요'라고 말이다.



서른의 관심사는 단 하나, '나'


삼십 대가 되고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관심사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십 대에는 수많은 것들을 나보다는 타인과 세상의 시선까지 생각하며 나의 일상을 꾸려 나갔다면, 서른하나가 된 나의 일상은 온전히 내 것이며 나 스스로 컨트롤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선 넓다고 자부했던 인간관계는 좁아지기 시작했다. 이십 대에는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내가 관계 속에서 뒤처지는 것만 같은 불안함에 쉬는 날에는 꼭 약속을 잡아야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일을 챙기고, 안부를 물으며 피곤하게 살아왔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고, 삼십대로 넘어오면서 나의 관계는 좁아졌지만 분명 깊어졌다. 늘 나에게 용기를 주고, 마음을 건네주는 이들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게 되었고 나의 소중한 시간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채워나가려 노력하면서 나의 행복은 더 커졌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꼭 필요한 몇 명과의 관계만으로, 나의 삼십 대는 훨씬 풍요롭다.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타인의 눈치를 보려고 하기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다.


사실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온전히 나만 생각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면서도 타인의 눈치를 보기도 했고, 연애를 하면서도 타인의 연애는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정답이 없는 관계 속에서도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진짜 서른이 되고, 나의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의도적으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 노력했고, 내 마음의 소리에 더 신경 쓰고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무례한 사람의 무례함을 스쳐 지나가려고 노력했고, 세상에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 또한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와 타인은 철저하게 다른 사람이고,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아낀다는 사실이 참 따듯했다


서른이 되고 가장 큰 관심사는 온전히 '나'라는 사람이다


내가 왜 슬픈지, 내가 어떤 순간에 웃는지,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떤 행복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나는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순간에 힘을 얻고 어떤 순간에 힘이 빠지는지, 나는 어떤 사람과 잘 맞고 어떤 사람과 잘 안 맞는지 등등 -


하나부터 열까지 삼십 대의 중심에는 온전히 나라는 사람이 서있고,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서른을 보내고 난 오늘의 나의 관심사가 '나'라는 사실이 꽤 괜찮은 서른을 보낸 것만 같아서 뿌듯하기만 하다






그렇게 서른 하나가 되었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불안해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며 나를 안아주면서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다


얼마 전 여전히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나 자신이 못나게만 보였다. 내 탓은 아닐지라도 자주 넘어지는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부터 부모님의 갈등을 보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서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흔들리는 우리 집 상황과 그런 부정적인 상황을 흡수하며 작아지려는 나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이십 대,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자주 넘어지고 또 넘어졌던 나는 - 우리 아빠의 삼십 대와 꼭 닮아 있었다. 가족들에게 조금 더 여유로운 경제적 상황을 주고 싶었던 아빠는, 우리를 두고 자주 해외에 돈을 벌러 다녀오셨다. 결론적으로, 아빠의 본업보다 훨씬 못한 상황만 남아있었고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날들이 참 많았다. 내가 자주 넘어지고 삼십 대가 되고 나서야 아빠의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곤 한다


 아빠에 대한 원망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아빠의 삼십 대를 꺼내어 조금 더 안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더 나은 모습을 기대했던 아빠의 선택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이렇게 꿈이 있는 사람으로 키워주셨으니까 말이다


경제적 자유와 더불어 일상 속에서 많이 웃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것들부터 실천하며, 하루하루 성장하고 싶다고 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늘 경험을 게을리하지 않고, 배낭을 메고 자주 떠나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은 여전히 넓고, 내가 배워야 할 일들은 여전히 넘쳐나니까 말이다


삼십 대는 참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 때 경험했던 일들을 토대로 조금 더 현명해지고, 조금 더 유연해진 모습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나의 삼십 대가 참 대견하다. 이십 대를 보내고 삼십 대가 되면서 한 뼘 더 자라난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여전히 흔들리는 서른한 살을 보내겠지만, 그럼에도 서른하나의 끝에서 나에게 박수를 보내줄 수 있을 만큼 용기 있고 씩씩한 서른하나를 보내보자고 다짐한다. 서른하나의 끝에서 이 글을 읽을 때면, 나에게 정말 수고 많았다고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꼭 한번 나를 더 안아주고 싶다



더불어,

오늘도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우리가 자주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조금 더 많이 웃고 조금 더 따뜻한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늘 응원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