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나를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뿐 이라는 현실을받아들여야한다
파도는 생각지 못한 순간에 밀려온다
"이제 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가야 할 거 같아"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현재의 집 명의가 언니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명의를 이전하기에는 큰돈이 필요해서 지금 이 집을 팔아야 할거 같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눈은 참 슬퍼 보였다
30년 동안 엄마는 남모르게 많은 눈물을 참으며 살아오셨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아빠는 해외에서 사업을 해보겠다며 패기 있게 우리를 두고 홀로 해외로 나갔던 적이 많으셨다. 현실적으로 아빠가 생활비를 보내주시는 것도 아녔기에, 엄마는 겨우 카드로 생활비를 쓰며 어린 딸 셋을 바라보며 살아오셨다. 엄마는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세상을 어린 딸 셋 손을 잡고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상상할 수가 없다
사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는데, 고작 30대 후반의 나이를 살아오고 있던 엄마에게는 너무나 큰 두려움이지 않았을까 싶다. 남편의 부재로 의지할 곳이 없었을 테고 생활비가 없어서 아끼고 아끼며 우리에게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가시가 가득한 마음이었을 테니까
우리 가족이 울고 웃었던 산동네 우리 집
그런 엄마에게,
늘 꿈이 있었다.
우리 가족의 편안한 보금자리, 엄마의 꿈은 항상 우리 가족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쾌적한 집이었다
처음 내가 우리 집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집은 달이 가깝게 보이는 일명 산동네에 있는 작은 집이었다. 7살 때 이사를 와서 10대의 끝자락까지 살았던 집의 추억은 참 많다. 웃었던 일도, 무서웠던 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던 기억들까지 말이다
동네에 강아지가 많아서 세 마리 정도의 강아지가 어렸던 나를 쫓아와 멍멍하고 짖을 때면 너무 무서웠고, 우리 집을 지나 산꼭대기에 있던 절에 있던 강아지들이 나를 보고 전력질주를 해서 쫓아 내려왔던 적도 많아 골목 모퉁이에서 강아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집으로 후다닥 달려갔던 날들이 많았다
어떤 날은 산에 불이나 집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해야 했고, 태풍이 심했던 날에는 집을 덮고 있던 철로 된 지붕이 날아가 자연재해가 참 무섭다고 생각했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었으며, 오르막길을 올라야만 있던 우리 집은 겨울이면 연탄을 뿌려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면 미끄러지지 않으려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려와야만 했다
사춘기 시절, 산동네에 사는 일이 부끄러워 내리막길을 내려와 또래 친구들을 마주할 때의 부끄러움이 싫어서 최대한 사람이 지나가지 않을 때 눈치를 봐서 후다닥 뛰어 내려왔던 기억들이 사춘기 소녀에게는 남아있다. 사춘기 시절까지 함께 했던 우리 집은 재개발이 되어 우리는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사실 좋았던 기억들보다, 부끄럽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기억들이 더 많이 자리 잡고 있지만 산동네의 작은집은 종종 꿈에 나온다. 오랜 시간 살았고, 나의 20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집, 이제는 하나의 공원이 되었던 집을 우리는 오늘에서야 웃으며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평생 꿈을 이루다
산동네를 떠나 우리는 전셋집을 거쳐서 오래 살았던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우리 가족의 큰 행복이었다, 처음으로 이사 갈 집의 새가구와 가전제품을 고르는 과정들이 참 행복했다. 처음으로 다섯 가족이 생활하는 집에 방이 3개나 되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이었다. 무엇보다도 사춘기 시절을 산동네에서 보냈던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은, 산동네의 골목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갈 때 누군가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하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동네의 조금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이 참 많았던 날들이었다. 주말이면 동네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엄마와 산책을 했고, 동네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힘들었고 넘어질 때마다 나를 잡아주었던 곳들의 추억들이 가득했던 곳이다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서 8년을 살다가,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와야만 했다
아빠가 사놓았던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와야만 했고, 원래 살던 집과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다는 것은 어쩌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지만 20년 이상 살았던 동네를 떠나기로 했다
엄마의 꿈이었다
화장실이 두 개인 집, 신발장이 넓은 집
새로 입주를 하는 집으로 우리는 그렇게 이사를 오게 되었다
새로운 우리 집은 외딴섬을 닮아 있었다
지금의 이사를 온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입주를 시작하고, 우리는 가장 먼저 이사 온 집이 되었다. 산속의 아파트, 고요한 주변 환경은 좋았지만 생활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일단 주말이면 버스가 끊겨서 엄마의 차를 타야만 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서 어떤 날은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 여성들만 아파트로 태워주겠다며 나쁜 행동을 하려던 사람들도 생겨났다. 주변에 가장 먼저 생겼던 건 편의점과 마트였고, 이곳에서의 배달이 되는 곳은 한 군데도 있지 않았다. 푸드 트럭들이 들어오는 날이면 우리는 우르르 나가서 줄을 서서 음식을 사 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주변 환경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에 도서관, 스포츠센터가 들어왔고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왔다. 시내에만 있는 체인점들도 가득 생겨 이제는 이곳의 평온함이 참 좋다. 시내보다 온도가 낮고, 겨울이면 눈이 와 꽁꽁 얼어버리기도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또 다른 것들을 누리며 살아왔다
좋아하는 도서관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스포츠센터에서 춤을 추며 운동에 대한 재미를 배우기도 했다. 주변에 산과 저수지가 많아 자연의 풍경들을 마주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고, 여행지에서 잠깐씩 렌트를 하며 운전을 했던 나는 이곳에서 첫 번째 차로 운전을 하게 되었고, 두 번째 차를 사게 되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고,
엄마의 꿈이었던 우리 집을 좋아하게 되었다
1년 후 온전한 독립을 꿈꾸다
시내와 15분 거리에 외딴섬처럼 자리 잡고 있던 우리 집이 좋아졌는데,
갑작스럽게 집을 떠나야 한다는 소식은 엄마와 나의 슬픔을 안겨주었다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밀려오는 파도에 내 마음이 휩쓸려 버렸다
갑작스럽게 이사를 해야 한다는 소식에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내가 이 집을 참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시내와 거리가 있어 직장과도 거리가 있어 불편함도 물론 있지만,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과 평온함에 이 집을 꽤 많이 좋아하고 있었나 보다. 엄마의 30년 동안의 꿈이었고, 30대가 된 나도 좋아하게 된 집이었다
이사를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였고,
오랜 대화 끝에 일단은 이사를 조금 미루기로 하였다
이사는 미뤄졌지만, 내 마음이 쿵 내려앉았던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고 있다. 1년 후 우리는 이 집을 떠나야 할 수도 있고, 이 집을 지켜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1년 후 독립을 꿈꾸고 있다
이 집을 떠나는 독립의 의미라기보다는 이 집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내가 스스로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마음의 독립이 먼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금전적으로도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무엇보다 나의 마음이 독립이라는 단어에 의연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서른, 이제는 1년 후 독립이라는 단어를 마주해도 의연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