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겨울의 새벽, 알람 소리를 듣고 겨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일어나지 않은 새벽 6시, 홀로 조용히 씻고 준비를 하고 6시 30분이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눈이라도 온 날이면 뒤뚱뒤뚱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두 다리가 긴장 상태로 걸어야 했고, 비라도 오는 날이면 흩날리는 차가운 비를 맞으며 우산을 옆으로 쓰면서 씩씩한 척 걸어가야 했던 출근길이었다
20대 초반 모르는 사람이 뒤에서 나타나 손으로 입을 막은 후로 트라우마가 생겨 홀로 걷는 길을 유독 무서워하는 나였는데, 내가 살던 집에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이 없는 구간이 많았다. 혹여나 차 사이로 누군가 숨어있다가 나오지는 않을까, 혼자 걷는 나를 뒤에서 누군가 쫓아오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가득한 출근길이었다. 간혹 나와 같은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모르는 이에게 느꼈던 동지애였을까,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나는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며 버스에 오르곤 했다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버렸던 계절 : 나는 매일 가면을 쓰고 출근을 했다
유난히도 몸도 마음도 추웠던 겨울, 나에게는 유독 차가웠던 출근길이었다
겨울은 외로움이 짙어지는 계절이었는데, 유난히도 인생의 어떤 것 하나도 쉽지 않았던 시기에 더 차갑게만 느껴졌던 시기였다. 내가 선택했던 일에 회의감을 느껴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마음도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유난히도 내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다
원하던 회사에 힘들게 취업해 6개월 만에 영업일을 하겠다며 퇴직원을 제출했다. 그저 내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지고 싶었던 나는, 최선을 다하려고 주 7일을 일하며 의지를 불태웠다. 동기들과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면서 일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입사 초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일을 했고, 6개월이 되고 돌이켜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성격상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 능구렁이 가지 못한 나였다. 고객을 속이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더 선명해지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먼저 설득해야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납득이 돼야 타인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설득이 되지 않으니 타인에게도 주늑 들기 시작했고 사람을 만나는 일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일에 사람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을 꼬박 마음의 병을 키워왔다
"나는 다를 거야,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던 일이기에 조금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원이 아니라 내 사업을 하면서 부모님에게 더 빨리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그 생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의 힘듬을 회사 사람들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 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왈칵 눈물이 나버릴 것만 같아서, 가족들이 알면 속상해할 것만 같아서 혼자 끙끙 앓으며 매일 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잠들어야만 했다
매일 가면을 쓰고 출근을 해야 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실적에 대한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의 통장 잔고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가면을 쓰고 출근을 해서 회의를 하고, 사람을 만나러 가야 했고 다녀와서 상사에게 보고를 해야만 했다. 내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상황에서 그 누구를 만나 이야기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겁쟁이처럼, 떠돌이처럼 살아야만 했다. 어떤 날은 너무 추워서 갈 곳이 없으면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영화 두 편을 예매해서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지하철 여행을 하며 지인들을 만나 얼굴을 보고 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혼자 전철을 타고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추운 겨울, 영하의 날씨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매일 8시까지 출근을 해서 오전 미팅을 마치면 각자의 업무에 임해야 한다. 가면을 쓰고 겨우 출근을 했지만 갈 곳이 없어서 떠도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다시 집으로 퇴근할 수 없었다. 딸이 잘 지내는 줄 아는 엄마에게 걱정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버텨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 마음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선택한 일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었던 것 같다. 누구나 쉽게 시작하고, 누구나 쉽게 포기한다는 일을 나도 남들처럼 똑같이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매일 가면을 쓰고 출근을 했고, 매일 가면을 쓰고 퇴근을 했다. 그저 무탈하게 잘 지내는 사람인척 연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안 되겠다"
끊임없이 퇴사를 생각했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28살,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날 받아주는 곳이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 잠시 멈추어야 했다, 포기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써야만 했다. 포기라는 단어 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친한 친구를 만나 나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친구 역시 나의 고객 중 한 명이었기에 나는 친구에게 마저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홀로 걸어온 외로운 시간들이 서러웠다. 친구는 괜찮다며, 네가 힘들면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그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던 계절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코가 시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퇴사를 결정했다
나를 믿어주시던 상사는 그저 나의 힘듬을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잘될 거라며 응원해주셨다. 홀가분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선택한 일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 나에게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게 두렵게 느껴졌던 짙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존심이 쌔고, 내가 선택한 일에 스스로 책임지려고 했던 마음이 컸던 나였기에 더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 같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그렇게 코가 시린 겨울을 닮은 시기가 지나갔다. 누군가와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매일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아직은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가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매일 가야 할 곳을 정해서 뚜벅뚜벅 걸어야 했고,
타인에게는 행복한 사람으로만 보여야 해서 가면을 쓰고 다녔던 2년
나에게 2년은 다시 걷고 싶지 않은 겨울이다.
마음의 상처가 짙어지면서도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그 시기를 걷고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당신이 상처 받는 일을 쉽게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애써 타인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저 당신의 마음이 안녕하고, 당신의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구보다 내 마음이 평온해야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당신이 애써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조금씩 힘을 풀고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보았으면 좋겠다. 분명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포기가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줄 테니까. 누구보다 당신의 마음이 평온한 오늘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