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반짝이는 별이 되어버린 너에게

: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 버린 네가 보고 싶어 지는 날이면

by 윤슬


저 내일 검사받으러 가요


직장 동료인 K는 회사에서 몇 없는 여자 동료 중 한 명이었다


갑작스럽게 휴무를 바꾸고 병원을 가야 한다는 K였다. K는 자궁경부암 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으니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자궁경부암 주사를 맞았고, 10년 전 자궁경부암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지만 그 이후로는 이상 소견이 없어서 괜찮아졌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별일 없을 거예요! 걱정 마셔요"

"그렇겠죠? 검사 잘 받고 올게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일 없을 것이라며 너무 걱정 말라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이틀 후 출근 후 K가 아닌 상사를 통해 K의 검사 결과 소식을 들었다. 자궁경부암이 맞다는 소식과 며칠 동안 검사를 받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암 판정 소식에 나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K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K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내가 암 진단을 받았더라면 난 어떤 마음일까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찔 했다.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라는 마음이 차올랐고 내 주변 지인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는 거센 파도가 나를 흔들었다. 내가 아픈 건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어떤 이가 아프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슬픔이 찾아왔다



누군가 아프다는 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이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으니까



20살, 가장 예쁠 나이에 동생이 여행을 떠나버렸다


나랑 동갑이었던 사촌 동생은, 나보다 네 달 정도 늦게 태어나 늘 나에게 "누나"라고 부르며 어린 시절에 소꿉장난부터 수영장도 가고, 자전거도 타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함께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사춘기가 오면서 우리 사이는 어색해져 옆집에 살았지만 고작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게 다인 어색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20살이 되고 어른이 되면 다시 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촌동생은 열아홉 수능이 끝나고 살이 빠지기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동생은 수술은 받았지만 항암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암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행을 다니곤 했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여전히 동생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는 건 동생이 치료비 때문에 치료를 포기했던 건가 하는 마음이다. 친척들이 돈을 모아 수술은 받았지만, 보험 하나 없어 스스로 치료를 포기했던 건 아닐까. 나 역시 20살이었던 그때, 동생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나였기에 여전히 마음 한편에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치료를 받지 않으면서 암세포가 빠르게 퍼져 나갔고,

21살 설날에 함께 윷놀이를 하고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동생은 제대로 먹지도 걸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동생이 먹지 못하더라도 음료 몇 병을 담은 검은 봉지를 들고 병원을 찾곤 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생을 볼 때마다 차오르는 눈물을 들켜버릴까 봐 동생의 곁을 오래 지킬 수 없었다


내가 병실에 가면 늘 옆에서 누군가는 "누나 왔네"라는 소리를 했고, 동생은 밤새 아픈 몸이 진정이 되지 않아 약효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고통 속에서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 했다고 했다. 동생은 그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저녁 내내 제대로 된 호흡이 되지 않아 밤새 고통스럽게 보내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던 동생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려온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누워서 보냈던 하루하루가 동생에게 얼마나 큰 지옥이었을까


이 세상이 얼마나 미웠던 걸까
동생은 21살 봄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났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동생을 떠올린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동생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차오른다. 동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는 미안함 그 이상의 감정이 나를 억누르곤 한다. 동생이 떠나던 날, 나는 동생에게 약속했다 "네 몫까지 내가 더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게. 다음 생에는 네가 원하는 삶을 마음껏 누려" 네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내가 더 넓은 마음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 내겠다고 말이다


너에게 했던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홀로 너를 만나러 가곤 해


누군가와 함께 갈 때면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숨길 수가 없어 너에게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오니까, 홀로 너를 보러 가곤 해. 10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나였다면, 너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네가 치료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졸졸 쫓아다니지 않았을까. 2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네가, 1년 만에 우리 곁을 떠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곳에서 머물러 있는 너를 만나러 가는 날이면 나는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보곤 해. 네가 경험하지 못한 행복들을 내가 더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나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잘살고 있는 걸까. 여전히 답이 없는 너지만, 홀로 너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네 몫까지 잘 살아 내겠다고 다짐했으니 더 잘살아야 된다며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곤 해


네가 긴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우리는 자주 함께 였을 거야. 시시콜콜한 고민들을 나누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겠지. "누나"라고 부르며 씩씩하고 밝은 미소로 늘 내게 손을 내밀었던 너였기에 더 자주 떠오르고 보고 싶었던 것 같아. 엄마와 이야기 끝에도 늘 네가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곤 해. 너는 늘 씩씩하고 다정한 미소를 가진 아이 었으니까


1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너를 떠올리곤 해

그리곤 누군가의 아픔이 오래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야. 누군가 아프기 시작하면 주변의 모든 이들의 마음도 수도 없이 흔들린다는 걸 너무나 잘 아니까. 흔들림 끝에 마주하는 이별이 얼마나 아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아니까. 오늘도 수없이 흔들리는 마음들이 평온하기 만을 바랄 뿐이야


언제나 밝고 씩씩했던 너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

너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고 그 여행길 위에서 어쩌면 나와 한번 더 만나게 되지 않을까



21살 반짝이는 별이 되어 버린 너를,
31살의 나는 여전히 그리워하곤 해



그리곤 다시 한번 너의 미소를 떠올리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곤 해. 네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더 행복하게 살겠노라고 다짐했던 약속을 되새기곤 해. 수많은 상황과 마음에 치여 잊고 지냈던 너와의 약속을 다시금 꺼내어 다짐하는 오늘


31살의 나는 너에게 다시 약속할게

건강하고 씩씩하고 자주 웃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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