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초반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볼 거야!'라는 단단한 마음이 있었다. 첫 직장 역시 내가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을 찾아 시작하게 되었고, 두 번째 직장 역시 기쁜 마음으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면접을 보던 집으로 오던 길 '저는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걸요!' 라며 웃으며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그저 회사는 보람과 즐거움이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가득 차올라있던 시기였다
두 번째 회사의 계약이 만료된 후 세 번째 회사와 네 번째 회사는 이름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학병원과 대기업이었다. 좋은 회사인 건 분명했지만, 나는 계약직 사원이었다. 20대 중반이 되자 불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계약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없다는 불안감과 최대 2년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나는 또 다른 회사를 찾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타인과의 비교가 나를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승진을 하고 경력을 쌓아 가는 것만 같은데 나만 뒤쳐져 있는 느낌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내 꿈은 어느 회사의 '정규직'이 되었던 것 같다. 정규직이 되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느낌, 그렇게 나는 대기업 계약직 자리를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고 몇 년 동안 방황 아닌 방황을 하게 되었다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던 일은,
내가 노력을 해도 나와 맞지 않는 일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곳을 나가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 두려움에 쉽게 포기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더 많은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저 새로운 시작을 통해 성장하고 싶었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나는 대기업 계약직 사원의 안정적이었던 생활을 그리워하며 한동안 내 선택에 대한 자책을 해야만 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내린 결정이었고 후회 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혼자 울고 또 울었다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여전히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실패한 인생인 것만 같았다
아마 그때의 나는 마음 곳곳에 병이 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고, 글을 쓰지도,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저 아프다는 핑계로 이른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는지 잠을 자며 현실 도피를 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에 잠들어 다음날 아침에 일어 나는 날도 많아졌다. 하루의 시작에서 아무 희망이 없었고, 하루의 끝에서 그저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다렸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의 병을 더 키워갔고, 영업 사원 특성상 보이는 게 중요하다는 상사의 말에 타인에게 밝은 이야기 만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있었던 시기였다. 28살, 회사에서 도망쳐 나오면 내가 너무 못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버티고 또 버텼지만 매일 울고 있는 내 마음이 안쓰러워 결국 퇴사할 용기를 냈다. 퇴사를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맑은 햇살만이 나를 반겨주었고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용기를 냈던 28살 그리고 삼십 대가 된 오늘
28살 여름, 나는 스스로에게 갭이어를 선물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잠시 멈추고 내가 좋아하는 일과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을 찾는 시간, 나에게는 제주에서 살아보는 게 갭이어가 되었다. 두 달이 넘은 시간 동안 제주에서 내 마음과 마주했다. 그저 나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누구보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두 달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하루를 채워 갔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 애써 웃지 않아도 웃음이 나기 시작했고,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28살 백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지나간 시간들과 상처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육지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 볼 용기가 생겼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29살의 나는 다시 이력서를 내야 했지만 20대의 나보다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긴 상태였다
매일 도서관에 갔고 책을 읽었다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할 때면 글을 썼고, 다 잘될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다정해진 마음 덕분일까 우연히 한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30대가 되었고, 안정적인 생활에 만족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또 다른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회사의 정규직이 되어도 회사는 나를 평생 동안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 회사를 평생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기 때문에 회사를 곁에 두고 또 다른 도전들을 하는 중이다. 회사와 병행하는 게 쉽지 않지만, 조금씩 차근차근 도전하는 게 요즘 내 삶의 목표이다
많이 경험한 덕분에 많이 방황도 했지만 - 덕분에 나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할지 모르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백수가 되었을 때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어도 돈을 생각해야 했다. 오늘의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내가 베푸고 싶을 때 베풀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작은 회사의 정규직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하고 퇴근 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과 앞으로 배우며 도전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힘든 시간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누군가의 위로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깊은 동굴 속으로 숨어 아무도 만나지 않고 홀로 울었던 시간들이 가득했다. 힘든 시간을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은, 그저 주변 사람들의 응원이 아니라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잘될 거야 라는 마음보다 비록 내가 오늘 힘들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나에게도 생각지 못한 순간에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수없이 방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언젠가는 방황이 끝날 것이고, 그 방황 속에서도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난 사람처럼 보였던 날들이 있었고 어떤 날은 내가 제일 특별한 사람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날들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결정 한건 온전히 내 몫이지 않았을까
나 역시 여전히 보이지 않은 미래와 내 꿈을 안고 살아간다
서른이 넘었지만 여전히 꿈꿀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하며 내 미래를 그려본다. 조금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선명해지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흔들리는 우리의 삶에,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기에, 오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로 채워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