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멀어진 관계에 속상하기도 하지만

: 그럼에도 깊어지는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용기가 되어 주니까

by 윤슬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멀어지는 관계에 대해 상처를 받곤 했다. 혹여나 내가 실수를 했던 게 아닌지, 우리 사이가 멀어지는 게 꼭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때로는 인연이 되었던 우리가 멀어질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20대의 나는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관계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소홀해지며 서운한 관계가 생긴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9년 전 오늘 있었던 일을 확인해보세요


눈을 뜨자 알림 표시 하나가 보였다

9년 전 내 SNS의 기록을 확인해 보라는 알람이었다. 몇 년 전의 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나지 않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궁금한 마음으로 알림 표시를 눌었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만나 인연이 되었던 언니 K의 워킹홀리데이를 응원하는 편지와 책 한 권을 선물했던 날이었나 보다. K는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나를 태그 해서 글을 올렸었다. "언니 1년 뒤에도 웃으며 만나요"라는 말을 했던 나 그리고 1년 뒤 만났던 우리는 각자의 삶에 변해 있었고 결국 자연스럽게 연락을 끊는 쪽을 택했다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마음으로 만났던 우리


1년 후 만난 우리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퇴사 후 제주도에서 지내기 위해 지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K 역시 집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기에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와 우리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K는 약속을 잡으면서도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약속을 뒤로 미뤘다는 생각 때문인지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 반가운 미소보다 어색한 표정의 K를 보며 나도 당황스러웠다. 점심을 함께 먹는 내내 내 이야기를 들으며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이야기하는 K앞에서 나 역시 서운한 감정을 꾹 참고 있었다. "네가 지금 그 공부를 할 때가 아니지 않아?" 꾹 참고 있던 마음의 눈물이 툭 하고 터져 나와 버렸다. 전공과 다른 공부를 하고 있었던 나, 곧 제주로 떠나는 내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며 단호하게 말하던 K앞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쩌면 믿고 의지했던 K였기에 나 역시 서운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K와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속상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싶었던 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을 반복하고 있던 그때, K가 했던 말이 여전히 선명하다. K의 말에 의하자면 나는 착한 척을 하면서 상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20대 초반의 나는, 내가 정말 타인에게 그런 사람인가 싶어 꽤 오랜 시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우리의 인연이 멀어질 수 있기에

20대 초반의 나는, 사람 대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꽤 중요한 사람이었다

혹여나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그저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스치면 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했고, 스치듯 만난 우리가 인연이 되어 깊어지는 관계에 의미를 두었기에 상처를 받기도 했고 여전히 좋은 인연을 이어 가고 있기도 하다


K와의 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렵다고 생각이 들어서 제주 살이를 포기하려고 했지만, 용기를 내어 떠나게 되었고 제주에서 마주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시 사람을 믿을 용기가 생겼다. 한 달 뒤쯤 K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안하다는 마음과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니 어딜 가도 사랑받을 것이라는 내용, 답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제주여서 답을 할 용기가 생겼다 "언니도 잘 지내기를 바랄게요" 우리의 인연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마주했던 시간들은 내 추억 상장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수많은 관계가 혹여라도 틀어질까 봐 두려워했던 시기였다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내가 노력한다면 상대방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니었다,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그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언젠가부터 관계는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양쪽의 노력으로 이어진다는 꽤 단순한 사실을 마음속에 담고 살아간다. 친구 사이에서의 관계도, 연인 사이의 관계에서도, 회사 생활에서의 관계에서도 -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저 한쪽의 노력이 아니라 양쪽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수많은 관계를 내려놓으면서 진짜 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못난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자주 연락하지 못하더라도 서운해하는 관계가 아니라 걱정해 주는 관계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더 이상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만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관계도 잘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을 살필 뿐이다


가끔 인간관계에 힘들어하는 동생들의 질문에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럼 더 잘해주면 돼! 진심을 담아 잘해줘 봐! 진짜 내 사람이라면 고마움을 느낄 것이고 아니라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서운해할지도 몰라" 모든 관계의 끝을 정해 놓지는 않지만,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멀어 질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의 인연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니까

늘 인연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진짜 내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알아 줄테니까. 우리의 인연이 멀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보다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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