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력은 내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 꽤 까다로운 사람 인가 봐
언니의 결혼식을 앞두고 강제 쇼핑을 해야만 했다
결혼식에 안 간 지 벌써 몇 년 째라 마땅히 입을 옷이 없었고,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하지도 않던 쇼핑을 해야만 했다. '아무거나 입을까?'라고 생각하다가도 그 아무거 나가 없어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보니 벌써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인터넷 쇼핑으로 옷을 골랐고 옷이 맞지 않아 반품을 한 것도 여러 번, 오프라인은 다르지 않을까 해서 둘러보면 사고 싶은 옷도 없을뿐더러 간혹 살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옷들은 몇십만 원의 가격을 지불하고 살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다
언니는 "이제 그런 옷들도 한벌쯤은 있어야지"
언니가 말하는 그런 옷들은 백화점에서 파는 꽤 퀄리티가 괜찮아 보이는 옷들일까? 그저 브랜드라는 이름만으로 가격이 몇 배가 뛰어 버리는 옷, 나에게 그 옷이 필요한 이유가 딱히 없었고 30대가 되었다고 해서 그 정도의 옷이 내게 꼭 필요한 것만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니 내가 꽤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기준이 확고한 걸까 아니면 정말 그저 까다로운 사람인 걸까 생각하게 되었던 날들. 이제야 내가 쇼핑을 잘 안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쇼핑은 늘 "오 이거야!"라고 한방에 끝나 버리곤 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한 번에 고르는 스타일이고 꼭 사야 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템들은 늘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내 취향이 잘 반영되고 한눈에 들어오는 아이템만을 쇼핑했고, 억지로 쇼핑을 하면서 내 에너지를 쓰는 일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내 사전에 '쇼핑'이라는 단어는 늘 뒷전이었다
30대가 되어 명품백 하나쯤 사는 일도 아직은 관심 분야가 아니다. 반짝 거리는 쇼핑몰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다지 흥미가 없는 것 또한 내가 쇼핑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가 꽤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 였고,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무기력의 진짜 이유를 찾아서
억지로 쇼핑을 하고 있었던 시기에 무기력이 함께 찾아와 버렸다
억지로 이어가던 쇼핑을 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는데 취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을 보며 마음이 답답했고,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회사도 똑같았던 걸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무기력이 찾아왔다.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답답함이 찾아왔고 현재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왜 특별히 잘하는 게 없을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볼 때면 나도 그림을 잘 그린다면 좋겠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먹고사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언제쯤 글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 보이는 내 삶을 미워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서 늘 애매한 재능으로 애매한 취미들이 많았던 나
타인이 나를 바라볼 때면 '다양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특별히 한 곳이 빛나지 않아 늘 내 삶을 조여오곤 한다. 항상 무언가 경험하고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결국 오늘의 나를 돌아보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만이 나를 반겨준다
요즘 내 무기력의 이유는,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의 연속이었다
좋아하지 않는 쇼핑, 일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회사의 일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들이 내 마음을 더 좁게 만들어 버리곤 했다. 무기력은 언제든 나를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깊어져 버린 무기력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또 다른 무기력으로 빠트리게 한다
파도에 잘 흔들려야겠다, 애써 무기력을 빠져나오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내 무기력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내야겠다. 무기력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건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의 무기력이 나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나는 무기력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속에 비친 나를 바라볼 것이다
무기력은 내 삶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