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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Dec 15. 2021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수없이 흔들렸던 관계가 끝나고 난 뒤 마주하는 다정함

타인에게 더 다정했던 사람

나의 20대는 스스로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소소한 선물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을 좋아했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 작은 선물을 고르곤 했다. 금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나의 작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행복했던 것 같다. 작은 선물과 짧은 손편지를 건네는 순간이 좋았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감동했던 이유를 사실 잘 알지 못했는데 돌이켜 보면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날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는 일이 드물었기에 더 감동하지 않았나 싶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손편지를 받는 일은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더욱 드문 일이었으니 더 감동했던 게 아닐까. 나는 타인에게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능숙했고 누군가 행복해하는 일에 나 역시 행복했다


나의 다정함은
진짜 일까 거짓 일까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챙긴 만큼 그 누군가도 나를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나 보다. 사실 아낌없이 주는 건 나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순간부터는 온전한 다정함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건네면 누군가도 나에게 다정함을 건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다정함을 지키려고 했던 나의 노력들이

어떤 순간에는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취미 생활로 시작했던 클래스에서 만났던 J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날은 나에게 작은 쪽지와 선물을 주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다정함을 선물 받곤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우리는 비슷한 점도 참 많았다. J와 종종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가 비슷한 듯 다른 점이 많아 참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J보다 이동이 편한 내가 J가 있는 곳으로 자주 찾아갔다. 어떤 날은 전철을 타고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다녀왔지만, 그럼에도 J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J를 만나는 길 또한 나의 다정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미리 작은 꽃다발을 준비한다거나 J가 좋아하는 식물을 선물하기도 했다. J 역시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 정성이 담긴 식사를 차려 주기도 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니트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늘 힘이 되어 주는 J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고, 스치듯 지나갈 수 있었던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참 좋았던 것 같다


한파주의보로 코가 시렸던 계절, 가게를 오픈한 J를 축하해 주기 위해 케이크를 사서 기쁜 마음으로 다녀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밝은 J를 보니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각자의 생활로 우리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J의 안부가 궁금할 때면 J에게 연락을 했고, 몸은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 사이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고 믿어왔다


"J야, 얼굴 보러 갈게!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고 이동이 힘든 J의 근처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J의 대답이 나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J는 당연히 내가 그곳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저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일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다. "왜 나에게 일적인 부분을 이야기할까?" 그저 J의 얼굴을 보기 위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다녀오는 것인데 내가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마음과 일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는 J에게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대화들을 올려다봤다. 무심코 지나왔던 대화들 속에서 J는 일을 시작하고는 일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 이제 막 새로운 일을 J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에게 안부가 아니라 일 이야기를 먼저 하는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저 J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생각이 들었고 나는 결국 J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그 뒤로 J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못했다. J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대화 속의 J는 나를 위한 생각이라며 말을 하고 있는데, 정말 나를 위한 생각이었던 걸까.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화를 올려다보니 나의 안부에 J는 늘 그렇게 일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다는 것에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내가 J였다면 과연 어떤 말이 먼저 나왔을까 떠올려 보면 답은 간단해졌고 마음은 쓸쓸해졌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는지도 몰라


가끔 20대를 지나오고 있는 동생들이 30대가 된 나에게 관계에 대해서 물어올 때가 있다. 관계에 대해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 가득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있는 힘껏 잘해주면 될 거야! 그럼 진짜 관계가 보여" 20대에 수없이 흔들리고 나서야 내린 결론이다. 나 역시 20대에는 넓은 관계만이 나를 증명해 준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의 인맥이 나에게 힘이 되리라 생각했고,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이 모두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는데 20대 때는 그저 내가 잘한다면 모두가 날 좋아하리라 믿었던 것 같다.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 받는 일도 빈번했다. 누군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혼자 잘해주고 혼자 상처 받는 꼴이었다. 몇 년 전, 회사를 퇴사하고 마음이 늘 불안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던 터라 사람에 지쳐 있었고, 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밀려오면서 나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앞의 모든 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안과 후회만 가득했던 시기에

나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던, 내가 현재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나를 아껴주는 관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정하기 위해 수많은 관계를 껴안고 있던 내가, 모든 관계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늘 먼저 연락하고 사람들을 먼저 챙겼던 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의 마음이 우선이 되니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멀어질 관계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단단했던 관계들은 미동 하나 없이 단단한 관계로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었다


나의 다정함이 당신에게 전해지도록


수많은 나의 다정함은,

관계에 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바다에서 수없이 흔들리고 배 한 척이었다면, 단단했던 관계들은 같은 바다에 있는 또 다른 배였고 언제든 자신의 배로 넘어와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수없이 많은 순간들에 다정하려고 했던 노력에 후회하지 않는다. 수없이 다정했기에 인연이 된 관계들도 분명 존재하니까. 관계에 수없이 흔들리고 무너질 때마다 나를 단단하게 잡아 준 내 사람들 에게 한없이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 나에게 다정하고,

그 다정함으로 타인에게 베푸는 삶.


나는 여전히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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