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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현 Nov 17. 2021

친절한 오지라퍼로 산다는 건

: 일상 속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행복한 마음으로

"커피 드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얼마 전 나의 오지랖 덕분에 고맙다며 커피를 사 온 아르바이트생 B였다. 얼마 전 B는 갑자기 여성 용품이 필요했고, 다른 아르바이트 사원과 교대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나를 가장 먼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쉬는 시간에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야만 했다. 비상용으로 두었던 여성용품을 B에게 건네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나도 참, 그냥 편의점에서 사라고 하면 될 것을 말이야.

이걸 건네주겠다고 한걸음에 사무실까지 오다니, 오지랖도 참 친절하군'

스스로의 친절한 오지랖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의 오지랖은 어느새 나와 한 몸이 되어 있었나 보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오지라퍼 까지는 아니지만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는 수동적인 오지라퍼인 듯하다. 친절한 오지라퍼인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이상한 사람에게도 친절했던 오지라퍼


첫 번째 사건은, 중학교 2학년쯤이었나 보다.

집에 오는 길이었는데 한 트럭이 친구와 내 앞에서 멈췄고 우리 학교 건너편에 있는 남자 중학교 가는 법을 물어보시길래 의아했다. 바로 길 건너편에 위치한 곳인데 골목이라 찾기 힘드시구나 라는 마음으로 기사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앞으로 가셔서 우회전하시고요, 또 골목이 나오면 좌회전을 하시면 돼요"라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길을 친절하게 안내드리고 "조심히 가세요!"라고 인사까지 하고 뒤를 돌아보니 친구가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친구의 굳은 표정 나 역시 놀라서 "괜찮아? 무슨 일이야?" 라며 친구에게 다가갔고,

친구는 "저 아저씨 바지를 안 입고 있었어" 라며 나에게 되려 "괜찮아?"라고 물어왔다


'아 아저씨가 바지를 안 입고 계셨구나'

친절한 오지랖을 부리느라 바지를 안 입고 있던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지만, 뒤늦게 당황한 나보다 더 놀랐을 친구의 마음을 살폈던 날이었다. 친절한 오지라퍼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웠던 어린날의 추억이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오지라퍼의 행복


두 번째 사건은, 25살의 크리스마스였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려면 좌석 버스를 타야 했고, 나는 저녁 약속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꽉 차 있는 한겨울의 버스는 히터와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해서 답답함 그 자체였다. 창문을 열 수도 없고 그저 겨울 외투를 탓하며 노래를 들으려고 이어폰을 꼽고 있는데,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외국인 분이 기사님과 얘기를 하고 계셨다


그저 이어폰을 꼽고 눈을 감고 쉬면서 가면 될 것을, 친절한 오지라퍼인 나는 어떤 일인지 듣기 위해 이어폰을 살짝 빼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셨어야 했는데 좌석 버스를 잘못 탔고,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한 상태라 내릴 수가 없었다. 일을 하러 가는 중이신 것 같았고, 늦을 것만 같아 초조한 표정이 계속되었다. 버스는 1시간 넘게 달려 서울역에 도착했고, 그녀는 넓은 서울역에서 내려 기차를 타야 할 것만 같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경주에서 살면서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버스가 달리는 동안 서울역에 내리면 그녀를 도와줘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고 친구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했다. 그녀를 도와줘야 하는데, 그녀가 점점 멀어진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급했던 건지 빠르게 뛰는 그녀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명감만 가지고 체력이 저질이었던 나였지만 크리스마스의 서울역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혹시 기차 타고 가시려고 하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나를 따라오라고 이야기하고, 함께 표를 끊고 곧 들어오는 기차 타는 곳을 알려드리기 위해 함께 뛰기 시작했다. "이 번호가 쓰여있는 좌석에 앉으시면 되고, 꼭 여기서 내리셔야 해요!" 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녀는 어설픈 문장으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기차에 올랐다


그녀를 보내고 나서야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그래도 길을 알려드려서 뿌듯하다' 그녀는 비록 조금 늦었을 지라도 무사히만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에 캐럴송이 울려 퍼지는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 그녀에게도 크리스마스가 좋은 날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했던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



친절한 오지라퍼로 살아간다는 것


여전히 나는 타인의 일을 못 본 척, 모른 척 쉽게 넘어가지 못하곤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일만 신경 쓰기에도 바쁜데 남일에 오지랖을 부린다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오지랖이라는 단어의 어감 자체가 긍정의 뜻보다는 부정의 뜻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위험에 놓일 수 있는 상황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나의 오지랖은 여전히 친절함을 띄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우리는 길을 찾고 버스를 타는 일이 능숙하지만,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으신 어르신 분들이 길을 물을 때 조금 더 친절히 알려드리는 일부터 대리 기사 일을 하시는 분들의 초행길에 내가 아는 길을 알려 드리는 것. 일상 속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더 다른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했던 고마운 도움이었을 테니까


나의 친절한 오지랖이 잘못되었다거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일만 신경 쓰기에도 바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지만, 누군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못 본 척 넘어가기보다 잠깐이지만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다정한 오지라퍼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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