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림다운 계절, 고슴도치의 스물아홉 기록
아림다운 스물아홉 일기
서른이 가까워지고 있는 나이를 실감하는 날은, 친척들의 결혼식 또는 명절날이다. 온 식구들이 모이는 날이면 하나 둘 나의 결혼 이야기로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 "남자 친구는 있고? 결혼은 언제 할래? 좋은 사람 만나서 얼른 결혼해야지"
왜 여자 나이 서른이면 꼭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품어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도 한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을 꿈꾸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기도 하는 스물아홉 살의 나
사랑을 하면 수많은 감정들을 함께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예쁜 이름으로 함께 하기로 한 마음에서 따듯한 온기를 느낄 수도 있고, 혼자 일 때 느낄 수 없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라는 말처럼, 나는 정말 사랑을 하면 얼굴에 진짜 미소가 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두렵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사랑에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에 완벽한 마음은 없겠지만, 나는 유난히도 사랑에 겁이 많은 사람임은 분명하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눈치채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가 당신을 한번 더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랑받는 상상보다 상처 받는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 사랑이라는 마음에 거리를 두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모든 사랑에 완벽한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타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완벽함을 핑계로 수많은 사랑을 모른 척하기도 한다. 작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혹여 상처 받지는 않을지, 당신이 나의 진짜 못난 마음을 발견하고 떠나버리는 건 아닐지 혼자 수많은 상상을 하며 너와 나의 마음을 모른척하며 살아오기도 했다
친구로 시작했던 우리가 친구가 아닌 연인 사이로 발전하면서 멀어지지는 않을까 두려웠고, 나의 뾰족뾰족 세모난 진짜 모습을 알게 된 너의 실망한 표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온전히 나의 못난 마음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두려움만 가득 안고 살아오며 나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마음과 거리를 두며 혼자 보내는 삶이 더 익숙한 사람으로 오랜 시간 지내왔다
오랜만이었다, 자꾸 당신에게 시선이 향했고 당신의 안부가 궁금했다. 당신과 보지 못하는 날이면 당신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궁금했고, 당신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당신을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두려워졌다, 당신은 잠깐의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커졌고 무뚝뚝해지는 당신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점점 작은 사람이 되어갔다
'역시 당신은 나의 못난 마음을 알아 차린 걸까'
또다시 겁쟁이의 마음이 피어올랐고 우연히 당신과 단둘이 술 한잔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평소에 술을 잘 먹지 않는 짠 - 하고 싶은 날이라는 핑계로 당신과 술잔을 기울였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졌던 날, 당신이 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가득 꺼내 놓았던 것 같다. '당신은 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냐는 둥,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둥'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나는 어린아이 마냥 당신 앞에서 하나둘씩 풀어놓았다. 당신과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여전히 당신과 나는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몰라 굽이굽이 돌아가고 있지만 '사랑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안겨준 당신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겠다 라는 용기를 심어 준 당신에게 고맙다
스물아홉의 사랑, 스무 살의 사랑이 설렘이라면 스물아홉의 사랑은 다정함을 더 깊게 사랑하게 된다
동글동글한 척하고 있지만 유난히도 세모인 나의 마음을, 한편으로는 누군가 나의 못난 마음까지도 사랑해줄 수 있을까 라는 겁을 내기도 하지만 - 우리는 모두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세모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고, 서로가 서로의 세모난 마음까지도 안아주며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모난 마음을 가진 너와 내가 만나 조금 더 깊게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세모난 우리는 가진 우리는 동그란 마음을 가진 이들을 종종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 서로의 세모난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며 조금 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가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너와 나의 못난 마음을,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