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꽃 같은 마음 "아야, 다음에 또 오니라"

아림다운 계절, 고슴도치의 스물아홉 기록

by 윤슬

아림다운 계절, 고슴도치의 스물아홉 기록

웅웅 - 차 소리만 듣고도 저 멀리 복실이는 '멍멍'하고 온 마을이 떠나가도록 짖어댄다


"복실아 ~ 우리 왔다 ~"

이 말을 알아듣는 건지, 우리를 알아보는 건지

일 년에 많이 보면 세 번 볼까 말까 한 복실이는 우리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꼭 '왔어?'라는 표시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한 강아지다. 모르는 사람이 오면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짓는데 일 년에 몇 번 보지 못하는 우리를 알아보는 건 참 신기할 노릇이다. 귀여운 놈


복실이의 소리 뒤에는 낯익은 목소리와 얼굴이 보인다.


"아야, 어서 오니라"


전라도의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고 계신 할머니가 방긋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신다.






평생을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사 남매를 키우느라 바삐 또 바삐 움직이셨던 할머니, 매년 우리가 먹고 있는 참기름부터 고추장, 각종 나물까지 - 모두 할머니께서 땀 흘려주신 선물들


그만 일하라는 자식들의 아우성에 할머니께서는

" 놀면 뭐한다냐, 심심하기만 하지"라고 시크하게 받아치신다.


막내 삼촌이 막 크기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는 마흔 살이 넘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찍 돌아가셨던 할아버지 그리고 작은 시골마을에서 딸 둘, 아들 둘을 키우느라 바쁘게 살아야만 했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편이 뭉클하다. 젊은 나이의 누군가의 엄마 , 한집안의 가장으로 살아야만 했던 할머니는 어떤 심정이셨을까. 얼마나 무서웠고, 얼마나 두려웠을까 - 감히 내가 짐작할 수 없는 할머니의 인생이다, 소녀스럽기보다 한가정의 든든한 울타리로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세월. 할머니 , 할머니는 그동안 행복하셨을까 - 문득 할머니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시골의 이른 아침,


여전히 시골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아야, 인자 인나서 밥해야제"

새벽부터 깨서 한참을 우리를 기다렸던 할머니는, 자고 있는 엄마를 깨우기 시작하신다.


달그락달그락,

또 다른 방하나가 부엌인 할머니네 집에서는 세 모녀가 오랜만의 수다와 함께 아침 밥상을 뚝딱 차려낸다.


"아야, 자는 밥 안 먹어도 된다냐"

"우리 애들은 원래 아침을 잘 안 먹더라고"

걱정하는 할머니, 그리고 무덤덤한 엄마의 대화


아침을 잘 거르는 나는 "저는 좀만 있다가 먹을게요"라고 해도 할머니의 손녀 걱정은 끝이 없다.

걱정 어린 할머니의 말에 나는 또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야, 밥을 먹어야제. 포도라도 가져다주랴?"

뭐라도 먹었으면 좋겠는 , 할머니의 이른 아침

조금 더 쉬고 싶은 철없는 손녀의 아침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밥상을 두고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연히 이모와 할머니의 대화에서 할머니에게 '식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먹을게 부족했던 시골에서 할머니에게 식사는 너무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 서른이 다돼가는 철없는 손녀는 그것도 모르고, 매번 할머니의 걱정만 가득 안겨드렸다.


어렸을 적 사 남매에게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사는 할머니의 마음, 사 남매에게 챙겨주지 못했던 끼니를 손녀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 한 끼는 할머니에게 곧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하루


할머니의 따듯한 온기, 사회에서는 어른인 척해야 하는 손녀가 은근히 어리광 부릴 수 있는 시골집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만 같은 나의 시골집


사회에 나와 서른 즈음이면 이제는 정말 어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손녀가 유일하게 어린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나의 작은 시골 마을뿐이겠지 - 어렸을 적 엄마와의 시골집 방문은 귀찮은 일이기만 했는데, 서른이 다돼가는 나이의 나는 시골집 방문이 조금은 불편해도 여전히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누군가 대가 없이 주는 사랑,

그 사랑에 보답하는 일은 더 자주 찾아뵙고

더 자주 아침밥을 먹고,

더 자주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는 일이다.


"아야, 다음에 엄마랑 또 오니라"


며칠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아쉬운 인사를 남긴다.


"아야,

다음에

또 오니라"


"네 할머니 또 올게요"







그렇게 서른 즈음에 손녀는

엄마의 엄마를 통해 무 조건 적인 사랑을 한번 더 배워간다


서른 즈음에 엄마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할머니는 우리에게 더 나눠주시려고 하시나 보다


할머니, 할머니

엄마, 엄마

그렇게 불러보는 이름


딸에게

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랑스러운 나의 어른들이 있어 다행이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배우고 또 배우며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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