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혼자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영상 편집을 하는 시간들이 좋아서 늦게 잠들고 피곤한 상태로 일어나 출근하는 일을 반복했다
하면 할수록 보이는 성과가 뚜렷하지 않았기에 불안했고 답답했다. '부족해 어떤 부분을 더 채워야 할까?' 회사 업무 외에도 개인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은 점점 더 늘어났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부족한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휴무날 비가 세차게 내렸다
오랜만에 시원한 비에 나 역시 통잠을 잤다. 컨디션 조절을 못한 날들에 몸은 '쉬어가자'라며 말에 12시간 잠들어 있었다. 개운하지 못한 몸,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휴무 2일 차,
약속했던 일이 있어 졸린 눈을 떠서 서울을 다녀와야 했다. 정신없는 서울 운전에 취약한 나는, 비좁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조금 돌더라도 밀리지 않는 길로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말 서울이랑 나는 안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0.1초라도 아껴서 살아야만 하는 게 정답일까 싶을 정도로 유독 복잡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서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빠르게 운전해서 나를 앞서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내가 조금 느린 사람이구나'라는 마음만 가득했다.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가득 주는 도시 일지 몰라도 유독 나에게는 장점이 없는 곳이었으니 서울을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급격하게 빠져나갔음을 느꼈던 날이었다
차가 밀리면 이 복잡한 도시를 빠져나가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할지 두려워 급하게 도망 나오다 보니 결국 내 몸의 모든 에너지들이 뒤엉켜 버렸다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와 제대로 먹은 한 끼는 결국 탈이 났고, 아침부터 속 울렁거림을 시작으로 두통이 이어졌다. 점심을 거르고 차에서 한 시간 내내 누워만 있었다.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다시금 알게 되었던 날, 나는 오늘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후 5시의 햇살은 내가 꼭 어디로 가야 할 것만 같은 화창한 날이었지만 씁쓸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7년 전, 맑은 가을 하늘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던 날.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이리 잘하는 것도 없고 부족하기만 해서 이렇게 못난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겨우 입에 넣고 있던 도시락도 내려놓게 되었던 그날의 햇살
스스로에게 조금 느리더라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안 그래도 느린 내가 더 뒤 쳐는 건 아닐까 두렵고 무서웠던 날들
나만의 속도를 고집하면서도, 결국 빠른 삶을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내며 살아왔던 날들
나 많이 지쳐있구나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아무리 새로운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도 신나지 않았던 이유. 나는 지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린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잊은 채, 빠른 사람인 척하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내 삶에 들여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탈이 나고 나서야 내 삶을 돌아본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는 것을. 시도하면서 때때로 나에게 긍정적인 자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유 없이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이유가 있도록 선명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결국 타인의 속도가 아니라 나만의 속도로 걷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주변을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며 걸어간다
앞만 보고 빠르게 걷는 내가 아니라 주변의 들꽃과 자연 풍경에 감사하며 하늘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사랑하며 걷는 일, 나에게는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가 존재하기에.
나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애쓰기보다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찾아올 행복이 아니라 오늘 찾아온 행복들을 마음껏 껴안으며 살아가고 싶다. 내 삶의 속도로, 산책하듯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