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슬 May 13. 2024

엄마가 퇴사 한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 결국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욕심으로 용기를 냈기에.


퇴사를 하니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엄마랑 넓은 저수지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던 날이었다



"퇴사를 한걸 후회하지는 않고?"

엄마의 시선에는 잘 다니던 회사를 딸이 갑자기 그만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수인계를 하면서 신나 보이는 후임자를 보며 내가 좋은 자리를 주고 퇴사를 하는 건가 싶은 정도의 0.1초의 고민을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민하며 내린 결정이었다


팀장과 1:1 마주 앉은 건 면접 이후로 처음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말들이 가득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기에 이런 이야기는 회사 좋은 일 시키는 건가 싶으면서도 다 털어내 버리고 싶었다. '이건 정말 변하지 않을 듯 하지만 변해야 하기도 해요, 제 자리가 얼마나 외로운 자리인지 아시죠? 그 사람의 행동은 잘못된 게 분명해요.' 고개를 끄덕이는 팀장, 다 알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회사. 인정받지도 변하지도 않을 내 업무를 내려놓고 싶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찰나에는 늘 새로운 이슈가 생겼다

'이제 퇴사를 해야지'라고 생각했던 순간마다 회사는 어떻게 알고 조금은 나은 상황을 보여주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급여 인상으로 아쉬워 퇴사를 하지 않았고, 외로운 순간 함께 할 동료가 생겨 퇴사를 미루기도 했다. 언젠가는 할 퇴사였지만 결국 미루고 미뤄왔다는 표현이 더 잘 맞을 듯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는 일을 하기를 원한다


나 역시 인정 욕구가 높은 사람이었다

지만 내가 맡은 업무는 일은 반복되었고, 급여는 오를 일도 없었다. '승진하면 뭐해요. 돈 2만 원 오르는걸' 승진에 욕심이 없었다기보다 큰 의미가 없는 승진 때문에 사람들에게 억지로 잘 보이고 싶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았다.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이 회사에 오래 있었는지 그리고 오로지 상사가 나를 얼마나 좋게 보고 있는지가 승진의 기준이 되었으니까.


'주임님처럼 똑 부러지게 일하는 사람 없어요'

'주임님이 출근하는 날이랑 쉬는 날이랑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요'


어떤 이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일에 책임감을 느끼는 나를 유별난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그런 환경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성장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곳에서 유별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도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변하지 않는 회사라면 결국 내가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30대의 퇴사에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30대에 퇴사했다

부모님의 눈에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특히 아직도 알만한 기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얼마 전 외숙모와 연락을 하다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머 나는 회사 그만둔 이야기도 안 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30대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백수가 되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내가 엄마에게는 부끄러운 존재인 걸까 싶기도 했다.


아무리 부모라 하더라도 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아무리 딸이라고 하더라도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부모님을 생각했더라면 더 빠른 시기에 결혼할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안정적인 삶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은 그렇게 흘러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 일지 몰라도 내가 원할 때 결혼을 하고, 내가 원하는 순간에 아이를 낳고, 남은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 30대가 되어 보니 내가 원하는 순간에 모든 걸 할 수 없음을 배워 가지만 그럼에도 억지로 모든 걸 이어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인생은 내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선택과 책임은 온전히 내가 하는 것이기에.


엄마,
나 퇴사를 후회하지 않아요.


엄마가 퇴사를 후회하지 않냐고 했을 때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지?'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 걸까 싶었다. 그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기를 바라는 나이를 지난 탓일까. 30대, 남들과는 다르게 아직 결혼도 안정적인 직장도 없는 사람이지만 퇴사를 후회하지 않는다. 앞으로 삶의 과정을 잘 꾸려가면 되니까.


엄마가 속상해 할까봐 하지 못했던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거기서 계속 일하면 진짜 병 걸릴 거 같단 말이야' 마음이 뭉클했다. 5년이라는 시간을 일하면서 매번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속상한 일들을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탓일까. 엄마에게 이해받기 위함은 아니었지만 내 상황을 전혀 몰랐던 엄마가 딸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엄마의 이기적인 마음이 먼저 피어오른 것만 같아서 속상했지만 결국 내가 그럼에도 좋은 척 연기를 잘한 탓이겠지.


주차장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던 사무실, 대부분 성장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그저 상사에게만 잘 보이면 승진이 되는 회사.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듯한 회사. 보람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다니기 좋은 회사지'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들. 결국 그 모든 걸 견뎌내다가 더 이상 버텨보고 싶지 않아서 퇴사를 한 나.


무엇 하나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저 각자의 선택이 있을 뿐이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하면 된다고 믿는다.


30대의 딸, 엄마에게는 그런 딸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서 다시 한번 용기를 냈으니까.

잘 살아가보자. 씩씩하게 한걸음 한걸음 용기를 내어 걸어가 보자. 길가에 핀 꽃을 보고, 나무를 보며, 예쁜 하늘을 보며. 내가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에 시선을 두고 소소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말이다.



내 정원에는 어떤 꽃을 피워 볼까?


우리의 가치를 나이로 판단하지 않기를. 그저 늘 그래왔듯 마음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용기를 내보기를. 타인의 눈치를 보다가 내 삶에 후회가 가득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30대의 퇴사를 해서 불안한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30대, 몸이 자신부터 챙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