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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Jul 09. 2024

10.5cm 거대 자궁 근종을 낳았습니다

두려웠고 무서웠던 시간들을 흘려 보냈다.

2024년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기록하고 싶은 마음들이 많았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잘 흘려 보내고 조금 용기를 내어 기록해 보는 시간들. 기록하지 않으면 훗날 오늘의 마음들이 흐릿해질 테니까.


겁이 나고 수없이 흔들렸지만 그럼에도 잘 흘려 보내고 있는 요즘, 내 마음에도 꼭 장마가 온듯 했다.




4월, 5년간 근무했던 회사를 퇴사했다

일적인 스트레스보다 환경적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어렵게 결정한 퇴사였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회사 생활,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한 이유는 이 곳에서 일하다가는 정말 병에 걸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가득해졌기 때문이었다.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지하의 사무실, 검정색 먼지들. 그저 시간을 채워야 하는 의미 없는 야근에 저녁 식사는 대부분 좁은 차안에서 떼우곤 했다


몇 년이 지나고 돌아 보니 차안에 가득해진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이었다. 매일 저녁 가족들과 함께 먹는 따듯한 밥 한끼가 그리워졌다. 특별하지 않더라도 소소한 반찬으로 함께 먹는 밥. 5년간 대충 대충 저녁을 챙기다 보니 정말 집에서 먹는 밥이 그리워졌다. 이렇게 빵, 떡, 김밥, 가공식품으로 식사를 대신 했다가는 정말 큰일날 것만 같았다



퇴사 날짜를 잡아 놓고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불규칙적인 식사와 과도한 카페인 섭취. 매일 빵과 김밥으로 떼우던 식사가 탈이 난듯 했다. 위가 답답해진 느낌에 일상 생활이 불편할 정도였다. 위내시경을 하고 약을 먹고 퇴사를 기다렸다. '괜찮아 질거야' 퇴사를 하면 마음의 평온과 함께 괜찮아 질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내 마음대로 흘러 가지 않는다는걸 내 몸이 한번 더 증명을 해주었다


10.5cm
자궁에 거대 근종이 자라나고 있었다


퇴사를 며칠 앞두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배밑에 무언가 잡히는데 왜 그럴까요?' 내과 진료가 있어 의사 선생님에게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배에 가스가 찼거나 그게 아니라면 부인과 진료를 받아 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변비약을 처방 받아 먹어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듯했다. '이상하다 이상해' 자려고 누우면 조금 납작해진 배 위로 동그란 알이 튀어 나와 있었다. 그 사이즈가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다, 왜 여기만 볼록하지?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을겸 산부인과를 들렀다


2024년 4월 18일, 질 초음파와 자궁초음파를 진행 했다. 초음파를 진행하시던 선생님은 '수술 하셔야 겠는데요' 라며 내 자궁 안에 근종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것도 이미 10.5cm가 되어버린 거대 근종, 선생님에게 수술을 잘하시는 선생님을 여쭤보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울컥, 누구에게나 있는 자궁근종 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이렇게 큰 근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수많은 마음들이 얽혀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증상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매달 정확하게 했고, 생리통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자궁 근종도 위치에 따라 심한 빈혈기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아무 증상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커질때까지 왜 몰랐을까? 병원에 왜 오지 않았지?' 부인과 진료를 게을리한 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차 버렸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탓일까,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은 탓일까.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를 해봐야 달라지는게 없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저 속상한 마음으로 가득차 버렸다


수술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 나 수술 해야 된데.. ' 몇달 전 언니의 수술이 조금 회복이 될만하니 둘째 딸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울컥하는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엄마와의 통화를 빠르게 종료했다.


'J야, 나 수술 해야 된데'

'괜찮을거야. 내일 맛있는거 먹을까?'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전화가 왔다. 그저 괜찮을 거라며 자신이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속상하지만 맛있는걸 먹으며 훌훌 털어 버리자고 말해주던 친구의 담백한 다정함이 참 고마웠다.


첫 대학 병원 진료를 받게 되었다


산부 인과 에서 받은 진료의뢰서를 들고 처음 대학 병원 예약을 잡았다


4월 29일, 부인과로 유명 하다는 대학 병원 예약을 잡아 처음 뵙게 된 교수님.


초음파상 거대 근종이 있기에 MRI를 촬영하고 수술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공복으로 오전 9시 첫 진료를 받았기에 공복을 유지하고 1시에 MRI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일주일 후 MRI 촬영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찾았고 근종이 큰 상태라 개복 아니면 로봇 수술만 가능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장 빠른 수술 날짜는 7월 중순, 의료 파업으로 밀려버린 수술 날짜들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일단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을 나왔지만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수술을 해주는 교수님과의 대화에 물음표가 가득했다. 처음 하는 수술에 친절함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섬세한 안내를 받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담담한 수술 이야기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모르고 집으로 귀가 했다


추후 담당 교수님을 변경 할 수 있냐고 병원에 문의했지만 변경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 대학병원은 주치의 선택이 정말 중요하구나' 생각했다. 처음 대학 병원을 방문 하시는 분들이라면 중간에 변경은 어려울듯 하니 잘 알아 보시고 첫 진료를 받으셨으면 좋겠다


4월 30일, 두번째 대학병원을 찾았다

언니는 응급 수술을 받았는데 그당시 이교수님께 수술을 받았었고 급하게 생각이 났는데 빠르게 첫 진료를 잡을 수 있었다. 두번째 대학병원 방문이라 조금 더 수월했다. MRI 결과 CD를 기계에 넣어 복사하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두근두근, 처음 본 선생님의 인상은 부드러우셨다. 앞자리가 아니라 옆자리에 앉아 내 MRI 결과를 다시 세세하게 보기 시작했다


내 자궁에 10.5cm 근종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크기는 더 거대 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장기보다 가장 큰 크기, 동그랗고 큰 주먹 하나가 내 뱃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선생님은 지방층이 얇기 때문에 수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온화한 인상에 실력까지 좋다고 소문난 교수님에게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가장 빠른 날짜는 6월 21일, 그렇게 인생 첫 수술을 잡았다.


수술을 기다리며 긴장했던 날들.


수술 날짜를 잡고 한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크게 증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점점 거대해지는 근종 때문인지 증상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큰 증상은, 잦은 화장실 방문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또 가고 싶어졌고 어느 순간 근종이 다른 장기들을 누르는지 소화도 느려짐이 느껴졌다. 배는 점점 빵빵해졌고, 소변이 차면 근종도 함께 불어 나서 배가 꼭 기형아 처럼 변해 버렸다. '얼른 수술 하고 싶다' 정말 한달 반 동안, 수술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빨리 수술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일까.

수술 하기 전에 생리를 해야 하는데 생리를 하지 않았다.


병원에 문의하니 수술 날짜에 생리를 하게 되면 어떻게 할지 교수님과 의논해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애타게 기다려온 수술 날짜가 늦춰 지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인지 매달 정확히 하던 생리는 결국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입원 하는 그날까지도 생리에 대한 압박감으로 혼자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것 같다. '제발 제발 제발!' 정해 놓은 수술 날짜에 수술이 끝나도록 모든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2024년 6월 21일
10.5cm 거대 근종을 낳았다.


6월 20일, 입원 절차를 밟고 홀로 하룻밤을 보냈다

다행히 수술 전날까지도 생리는 하지 않았다. 홀로 입원해 죽을 먹고 수술을 하면 씻지 못할 것을 대비해 머리도 감고 샤워도 했다. 하루가 저물어 가던 시간, 붉은 노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이면 정말 수술을 하는구나. 다 잘될거야' 피를 뽑고 수술 준비를 하면서 병원에서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아침은 유독 빠르게 느껴졌다

7시 30분이 되면 아침 식사가 나왔고 오늘 수술인 나는 당연히 금식이었다. 오후 1-2시쯤 수술실로 갈거라고 하셨기에 오전 시간은 수술 복을 입고 양갈래 머리를 하고 침대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는 정맥 주사를 위해 선생님이 오실거라고 하셨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거대 근종을 안고 사는게 더 힘들었기에 얼른 근종을 낳고 싶었다


보호자로 엄마가 오셨고 조금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술실 선생님이 나를 데리러 오셨다. 시간을 보니 12시쯤이었다. '수술실로 이동하실게요' 정말 갑작스럽게 수술실로 이동한다는 말에 당황하신 병동 간호사 선생님이 급하게 나에게 정맥 주사를 놔주셨다. 그렇게 걸어서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 앞에서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엄마는 수술실을 나섰다. '수술 잘 받고와, 잘될거야' 엄마의 한마디에 눈물을 참고 수술실 침대에 누웠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어떤 수술 받으시죠?'

'로봇 수술 받으시는거 아시죠?'


여러번 내 신원을 확인 하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지킬것이니.' 정말 수술 침대에 누우니 긴장감이 가득해졌고 수술실 천장에 적힌 문장을 여러번 되뇌였다. 괜찮을거야, 다 잘될거야. 그렇게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했다. 로봇 수술실 8번, 수술대로 누웠다. 차가운 공기에 괜스레 겁이 났다. 또 내 신원을 확인 하시더니 마스크를 가져오셨다. '숨을 들여 마셔보세요' 마취 하는 과정이었던것 같은데 숨을 들여 마셔도 큰 반응이 없는거 같아 혼자 걱정하면서 그렇게 마취가 되었던 것 같다


12시쯤 시작한 수술은 3시가 되어 끝이 났다고 한다.

회복실에서 깨어 알 수 없는 몸의 떨림이 가득했다. 회복이 되어 내 이름을 확인하고 병실로 이동한다고 했다. 수술실에 걸어 갔던 나는 돌아 올때는 침대에 누워 병실로 향했다. 겨우 부여 잡은 정신에 눈을 떠보니 엄마가 보였다. 병실 침대에 엉금엉금 기어 이동을 했고 배는 처음 겪어 보는 찢어질듯한 아픔이었다


수면 마취를 했기에 2시간 동안은 잠들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언니와 대화를 이어갔다

잠깐 동안 엄마와 아빠가 다녀갔고 그렇게 2시간을 졸린 눈을 뜨고 버텼다. 3시간 이내에 소변을 봐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겨우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 오고 처음으로 물 한잔도 마셨다. 수술 당일, 내가 먹은건 이온 음료 한잔. 그렇게 수술 당일이 정신 없이 흘러 갔다.


2024년 6월 21일

나는 10.5cm가 되어버린 자궁 근종을 낳았다.


건강이 최고라는걸 배운,
병원에서의 6박 7일.


로봇 수술의 힘인지 모르겠지만 수술 다음날 나는 조금씩 걸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잠깐 다녀 가기도 했고, 밥을 먹고 약을 먹고 엄마와 함께 산책을 했다. 조금만 걸어도 체력이 확 떨어지는게 느껴져 다시 병실에서 쉬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수술이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원래 병원에서의 일정은 수술날을 포함해 2박 3일이었다

일요일 오전, 교수님께서 회진을 도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방에는 침대가 없어 집에 가서 생활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에 교수님께서는 오늘 당장 퇴원을 안해도 된다고 하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럼 조금 더 회복하고 퇴원을 하기로 했다


배가 땡기는건 기본이고 알 수 없는 통증들도 시작 되었다. 그리고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38도가 넘지 않으면 괜찮다고 하셨는데 37.6도로 시작해 37.8도가 된 열은 내릴 듯 말듯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이틀 동안 미열과의 전쟁이 시작 되었다. 어떤 날은 약을 먹고 약 기운에 기절하듯 잠들기도 했다. 밤에도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해서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새벽에도 여러번 열체크를 하러 오셨다.



'많이 걸으시면 더 좋아지실거에요'

조금 체력이 회복되었던 날, 걷고 병실로 돌아와 쉬고를 반복했다. 처음으로 10000보를 걸었던 날이었다.

열심히 걷고 오니 열이 37.1도에서 36.9도로 내리기 시작했다. 피검사 수치도 좋아졌다고 해서 다음날 퇴원을 결정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일정이 길어져 7일을 병원 생활을 하고 퇴원을 했다. 다행히 몸 컨디션도 많이 좋아 졌고, 혼자 바닥에서 일어 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한방 병원이 아니라 집으로 퇴원을 했다.


'샤워 하셔도 되요'

병원에서 들었던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병원복이 아니라 내 잠옷을 입었다. 당연해졌던 일상들이 다시 감사하게 느껴졌다. '역시 집이 좋다' 내 공간, 내가 좋아 하는 것들이 가득한 곳. 그렇게 병원 생활이 끝이 났다.


나를 위한 시간
건강과 여유로움.


그렇게 퇴원 후 2주가 흘렀다

몸도 조금은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아 조심하며 일상을 채워 나가고 있다


요즘 가장 신경썼던건 식사와 스트레스 관리였다.


자궁 근종에 좋지 않다는 음식들을 정리해놓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브로콜리와 닭고기 위주로 식사를 했고 자궁 근종에 좋지 않다는 카페인, 당류, 튀김류, 밀가루, 붉은 육류는 최대한 먹지 않는 쪽으로 식단을 바꿔 나가고 있다. 어쩌면 전 직장에서 매일 습관 처럼 먹었던 카페인과 빵, 스트레스가 자라나 자궁근종을 키웠던 것일지도 모르기에 일단 모든걸 끊어 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수술 1주일 후면 회복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새로운 회사에 교육 일정을 잡아놔 고민이 많았는데 일정을 미루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나만 뒤쳐지는건 아닐까 불안함이 컸지만 회복이 필요한 시점에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요즘 나의 통밀 베이킹 :)


꼼지락 꼼지락 무언가를 만들고 새로운 풍경을 보는걸 좋아 하는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보니 답답함이 찾아 오기도 했다. 답답함을 또 다른 여유로운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사부작 사부작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고 있다. 최근들어 재미 있는 놀이는, tv 프로그램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통밀빵을 보고 재료를 사서 만들어 보고 있는 일이다. 생각보다 예쁘고 맛있는 건강한 빵, 달지 않더라도 충분히 담백하고 맛있는 빵. 그렇게 또 다른 재미들을 하나씩 늘려 가는 중이다.


그렇게 2달간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처음 거대 근종의 소식을 들었을때는 세상이 무너지는듯 했는데 돌이켜보면 이것 또한 앞으로 건강을 잘 챙기며 살아 가라는 또 다른 신호 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나는 닭고기 좋아 하는데! 닭고기는 자궁 근종에 괜찮데! 정말 다행이지!'

자궁 근종이 다시 생기거나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앞으로 닭고기를 먹을 거라는 나의 이야기에 친구는 긍정적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결국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 하는 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슬퍼할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 시중에 나와 있는 빵을 먹지 못해 조금 속상했는데 이것 또한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면 되니 다 괜찮다. 결국 인생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싶다.


기록하고 싶은 마음들이 가득 했는데 도통 노트북 앞에 장시간 앉아 있는게 용기가 나지 않아 미뤘던 기록을 오늘 드디어 마무리 했다. 두달 간의 자궁 근종 수술의 기록, 아직 근종의 조직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탈하기를. 그리고 첫 수술을 통해 앞으로의 내 삶에 더 건강한 날들이 가득하기를.




자궁 근종 수술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수많은 마음들이 스쳐지나갔다


처음 뱃속에 만져졌던 동그란 근종의 존재, 산부인과에 갔다가 수영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술 소식에 수영은 커녕 눈물만 흘렸던 날, 처음 가보는 대학 병원의 진료, MRI를 처음 찍어 보는 경험, 홀로 입원해 수술을 준비하던 밤, 수술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던 차가운 복도, 처음 마주하는 수술실의 차가운 풍경, 건강이 최고라고 배웠던 병원 입원 생활, 내 첫 수술을 함께해주던 고마운 이들의 마음,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야 할지 배웠던 마음들.


나는 자궁근종 수술과 함께 수많은 마음과 인간 관계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다

나에게는 큰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별일 아닐 수 있음을 배우기도 했고, 행동까지 이어지는 마음과 그저 말뿐인 위로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우게 되었다. 결국 인생은 그렇게 흘러 가는게 아닐까. 그렇기에 타인의 눈치를 보기 보다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아 가야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게 아닐까.


여자들에게는 흔한 산부인과 수술, 갑작스럽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기록해 보는 마음들. 놀란 마음이 잘 흘려 보내기를,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면 수술은 잘 될것이고 그 이후의 삶은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2024년 6월 21일, 나는 10.5cm의 자궁 근종을 낳았다.


앞으로의 삶은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는다.


두려운 마음, 겁나는 마음, 속상한 마음 모두 잘 흘려 보냈다. 앞으로의 삶은 내가 만들어 가면 된다. 더 건강하게, 더 나답게, 더 아름답게. 온전히 나의 마음을 위해 하루하루를 채워 가보자. 감사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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