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는 행복한 직장인이 될 수 있다면

by 윤슬

사회초년생,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설렘과 걱정이 함께 했지만, 걱정보다 설렘이 더 크게 느껴졌던 순간들이 많았다. 우리는 '신입' 또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시절들이 있었다


나 역시 사회초년생이었던 시절에는 모든 일에 '신입' '초보' '사회초년생'이라는 수식어가 최대한 따라다니지 않도록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숙했던 모든 일처리가 신입의 티를 팍팍 내고 다녔지만 말이다


내가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간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조금 더 이용할 수 있고 조금 더 무례하게 굴어도 괜찮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잘 모른다는 이유와 누군가의 열정을 자신의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 내가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업무량은 늘어갔고, 알 수 없는 무례한 마음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되었고, 업무량에 비례하여 월급이 오르는 마법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사회초년생이라 단단하지 못한 걸까


무슨 일이든 '열심히'만 하며 된다고 생각했던 사회초년생에게는 조금 더 무례한 이들의 마음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사회초년생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는 이유와 어떤 업무 지시에도 자신의 의견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했기에 조금 더 무거운 마음을 가득 안고 일해야 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나에게 업무를 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무례한 부탁에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답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나의 업무량이 많고, 그 업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도와드리기 힘들 거 같아요'라고 예의를 갖추고 이야기해도, 어떻게든 자신의 업무를 열정이 가득했던 나에게 넘기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상사를 이용해 나에게 업무를 넘기곤 했다. 어느 순간, 내가 알지 못하는 업무가 하나씩 나의 업무가 되었고 나는 그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능력이 없는 사회초년생으로 낙인 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일이 벅차다고 생각할 때면, 무례한 이들을 원망하기보다 가장 먼저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무례한 감정을 마주할 때도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지 못했을 때도

자꾸만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으려 할 때도

모든 순간이 꼭 내 탓인 것만 같아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울컥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화장실로 숨고 또 숨었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화장실에 숨어 애써 마음을 가라 앉혀야만 했다. 단단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원망했고, 무례한 이들의 마음을 오롯이 건네받는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모든 화살은 무례한 이들이 아니라 나에게 향해졌다


꽤 오랜 시간 나는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신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멋진 회사원이 된 것만 같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벅찬 사회초년생의 시절을 보내야만 하는 걸까. 나의 열정과 노력을 왜 이렇게 이용하고 아프게만 하려고 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들만 가득해졌다






그렇게 어느덧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사회초년생이라는 이름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여전히 나는 단단하지 못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예전처럼 쉽게 흔들리거나 쉽게 나를 원망하지 않는, 이 순간들이 참 좋다


모든 순간에 열정적이고, 완벽하고 싶었던 직장인의 모습이 때로는 그립기도 하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더 인간적이고 따듯한 직장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너무 이성적이지도, 너무 감성적이지도 않은 - 내가 하루 일상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오롯이 나를 지켜나갈 수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다


종종 사회초년생을 마주할 때면 나는 조금 더 마음이 쓰인다, 모든 순간의 처음은 빛나기도 하지만 어두운 모습들도 가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 사회에서 만난 동생들이 조금 덜 휘청거리고, 더 많이 행복한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내가 화장실에서 흘렸던 수많은 눈물들을 동생들이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의 계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금 더 늦게 알았으면 좋겠고

너무 열정적이고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평생 몰랐으면 좋겠다


나는 아프면서 자랐지만, 이왕이면 내 동생 들은 웃으며 자라날 수 있으면 좋겠다. 직장인의 삶이 매 순간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소중한 동생들에게는 직장인의 삶이 조금 더 즐거운 삶으로 스며들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단지 동생들보다 조금 더 빨리 사회초년생의 마음을 배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치듯 마주하는 동생들의 마음을 꼭 안아주는 일이다. 여전히 단단하지 못한 내가, 동생들에게 위로받고 동생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며 조금씩 행복한 직장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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