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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슬 Jan 06. 2020

좋아하는 책방에서 시작하는 왕초보 작가의 첫 사진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예쁜 시선으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내가 마주한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좋아한다

희미해지는 기억들을 조금 더 안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내가 위로받았던 순간들이 사진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경기도 한 도시의 작은 책방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방에서 한쪽 벽면에 작은 전시를 시작했다는 글을 보았다. 12월이 지나고 1월 전시를 할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자마자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먼저 꿈틀거렸고 바로 책방지기님께 연락을 드렸다. 나 같은 왕초보가 해도 괜찮을까, 내 사진이 부족하면 어쩌지 라는 마음보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에 '저도 해도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새롭게 시작하는 1월에 꼭 해보고 싶었다. '물론이죠, 편하게 해 주셔도 돼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셔도 돼요'라고 이야기해주시는 책방지기님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누군가가 함께 사진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던 용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냥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전문적이지도 않고 좋아하는 풍경만을 카메라 렌즈에 담는 나에게 기회와 용기를 주신 책방지기님께 고맙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는 왜 풍경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었던 걸까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무작정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좋아했다. 복잡한 카메라를 다루지 못해 항상 버벅 거렸지만,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참 행복했다. 그 뒤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무거운 카메라였지만, '찰칵' 소리가 좋아서 자꾸만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사진을 찍고 다니기도 했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의 사진들은 모두 풍경 사진이었다, 여행을 다녀오면 100장 중 내 얼굴이 들어간 개인 사진은 3장 미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정도로 나는 풍경 사진을 참 많이 좋아했다, 물론 인물 사진을 잘 찍지 못해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호기심 많고 끈기가 부족한 내가

잘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하는 일 중 하나였음을 분명하다


항상 내가 좋아했던 사진들을 누군가와 나누는 일을 참 좋아했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 기억하고 싶어 작은 포토북으로 만들어 혼자 간직해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골라 엽서로 만들어 선물을 하고 판매를 하기도 했다. 나의 사진들이 누군가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말이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사진을 고르고 또 골랐다, 3박 4일 여행에도 1000장의 사진을 찍어 오는 나였기에 사진을 고른다는 일은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다.


2012년부터 혼자 꾸준히 다녀왔던 제주 여행 사진부터 -

2014년 여름 두 달 반의 제주 살이,

2018년 가을 두 달 반의 제주 살이까지

수많은 여행 중에 고르고 고른 사진들은 온통 제주라는 섬에서 마주한 풍경들이었다


누군가는 그 작은 섬에 무엇이 있길래 그렇게 자주 가냐고 장난스럽게 물어오지만, 나에게는 제주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풍경들이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되었다


마음이 무거웠던 순간에는 제주의 풍경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마음이 조금 가벼웠던 날들에는 제주의 풍경 덕분에 행복이 배가 되는 신기한 마법을 경험했다. 두 번의 제주살이는 나에게 조금 더 아림다운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용기를 주었다






제주 한 달 살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유행처럼 번져오고 있는 것만 같아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첫 번째 제주살이는 무작정이었다, 젊은 날 바다 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 속에서 마주했던 순간들은 나의 상상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시간이 벅차기도 했고 때로는 처음 마주하는 새로운 경험에 세상에 이런 행복도 존재하는구나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가장 낮은 나의 마음을 마주하며 당황스럽기도 했고, 내가 생각지 못한 나의 또 다른 희망을 발견하며 때로는 행복하기도 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두 번째 제주살이는, 자존심이 강한 내가 누군가에게 '힘들다'라고 말할 수 없어 모든 이들의 곁을 떠나고만 싶었다. 더 이상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고, 마음의 롤러코스터에서 그만 내려오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떠났던 여행이었다. 어쩌면 여행이라기보다 어쩌면 도피였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 곁에서 자주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왜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시작했던 일에서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는 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었고 다시 0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매일 밤 불안했고, 매일 아침이 오는 일이 두려웠다


'안 되겠다' 생각한 순간, 내가 마주하고 싶었던 풍경은 제주의 풍경들이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두 번째 제주 살이를 결심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선택은 처음이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제주와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확히 4년 뒤 나는 처음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제주라는 섬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처럼 수많은 꿈들이 가득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용기조차 없어 선택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처음 계획했던 한 달 동안 내가 살아갈 힘을 다시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두 번째 역시 바다 곁에서 살게 되었다, 매일 아침 바다를 산책하고 매일 저녁 해 질 녘 일몰을 마주하며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했기에 내가 제주라는 섬으로 떠났던 게 아닐까


그렇게 한 달 살이는 자연스럽게 두 달을 넘게 이어졌다, 가을이라는 이유로 날씨가 좋다는 이유로 다시는 제주살이를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이유로 - 그렇게 겨울이 찾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두 번째 제주 살이를 고민할 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주었던 친구의 말에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가 어떤 말을 했더라도 나는 결국 제주에 갔을 테지만,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게 용기를 준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제주를 통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여전히 나는 일 년에 세 번 이상 혼자 또는 함께 제주를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이들과 내가 좋아하는 제주의 풍경들을 마주하는 순간은 내가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제주살이를 시작으로 꾸준히 어딘가에 글을 쓰고 있고, 꾸준히 사진을 찍고 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나와 결이 비슷한 누군가와 꼭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위로받았던 제주의 풍경들이 누군가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제주에서 돌아와 여전히 수많은 파도를 만나 휘청거리고 흔들리며 살고 있지만, 예전처럼 흔들릴 때마다 깊은 곳에 혼자 숨어 끙끙 앓지 않는다. 힘들면 힘이 든다고,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삶이 버거울 때면 삶이 버겁다고 이야기하는 용기를 얻었다. 나의 힘듬을 누군가에게 투정 부리듯 건네지 않고, 누군가 알아봐 주지 않더라도 누군가 내 곁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한번 더 용기를 내고 미소를 보인다





여전히 나는 제주라는 섬을 사랑하고

제주에서 수많은 위로와 행복을 얻는다


한 달 동안, 수원의 책방에서 사진을 전시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행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주의 어떤 공간에서 제주를 여행하는 이들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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