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여섯 번의 퇴사생이 되었습니다

일곱 번의 입사와 여섯 번의 퇴사와 함께 했던 마음들

by 윤슬

나의 첫 사회생활은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가기 전에 시작됐다

첫 월급 통장을 만들고 첫 월급을 받고, 첫회식을 하고, 첫 사회 친구들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즐거웠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방학 동안 오전 8시부터 5시까지는 스포츠센터에서 일을 하고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며 일주일을 일일 일일 일일일로 가득 채웠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만두고 몇 년 뒤에 그 당시 매니저가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우리의 욕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괜찮다. 나에게는 그저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기억 속에 고이고이 묻어두리다


나의 첫 직장, 첫 아르바이트, 첫 동료들, 첫 월급 - 모든 게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모든 순간의 처음이 좋은 경험이었던 덕분에 나는 모든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었으니까, 고맙다 나의 첫 직장아






첫 사회생활 이후에도 나는 방학마다 또 다른 아르바이트로 바쁘게 지내야 했다. 세 자매의 둘째 딸인 나는,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독립을 하고 싶었다. 세 자매를 키우느라 바쁜 부모님에게 짐이 되기보다 힘이 되고 싶었다. 나의 학기 중 용돈을 벌기 위해 방학 때마다 밤하늘의 별따기처럼 쉽지 않은 아르바이트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했고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처럼 전투력 가득한 모습이었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며 내 작은 통장을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똑딱똑딱, 이십 대의 나에게 정해진 시간은 분명 한정적이었고 나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내야 하는 슈퍼우먼이 돼야만 했으니까 - 나는 강한척하며 독립적인 사람인척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근로소득자가 되자고 마음먹기보다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해보자고 다짐했다


가정형편상 용돈을 받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하면서 지낼 수 없었기에, 나에게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내가 돈을 벌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해나가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고 내가 많이 웃을 수 있는 경험들을 해보고 싶었다


졸업과 동시에 나는, 취업이 아니라 나의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첫 월급을 받는 일이 신기하고 즐거움이었다면 진짜 나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니 조금 더 신중해졌고 조금 더 현실적인 부분을 더 많이 보기 시작했다


취업 면접을 봐야 할 시기에 나는 조금 당돌했다. 나 같은 인재를 뽑아 줄 회사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처럼 일을 척척 잘하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면 손해일 거라고 자만했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니 나의 세상은 당연히 좁을 수밖에 없었고 나의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도 분명 존재했다


어쩌다 보니 일곱 번의 입사와 여섯 번의 퇴사를 하게 되리라 내가 상상이나 했을까


경기도 토박이인 나는 첫 사회생활을 경주에서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고 용기를 냈고 큰 가방을 하나 들고 기차에 올랐다. 낯선 도시의 풍경과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 처음 보는 직장 동료들이 나를 마중하러 나왔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설렘이 가득한 밤이었다


경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낯선 도시의 풍경은 나에게 설렘으로 다가왔고 처음 해보는 업무는 나에게 많은 용기와 책임감을 필요로 했지만 하루의 끝에서 오는 뿌듯함과 행복함 또한 크게 다가왔다. 경주에서 돌아와 제주살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세 달을 제주에서 보냈고 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오랜 꿈이었던 일을 시작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겁이 났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만 가득 차올랐다, 우연히 기회가 되어 내가 원하던 직업의 교육을 받기 시작했지만 상상하던 일과 다르다는 생각에 또다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 두려움과 마주하는 일이었다. 무언가 용기를 내어 시작했지만 내가 생각한 일과 다를 때 - 지금 생각해보면 현명한 판단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실패했다는 패배자의 마음과 앞으로 또 다른 일을 구하기 위해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직장에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고 나만 큰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무서웠다. 힘든 내색을 할 수 없어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많이 두려웠고, 많이 주눅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다시 새로운 직업으로 이직을 했지만 자신의 실속만 챙기려고 하는 주변 동료들과 퇴근을 하고도 다음날 업무 스트레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말이면 쉬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여러 번의 퇴사를 반복하면서 또 한 번의 퇴사를 통해 실패했다는 마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부모님에게 더 이상 실망을 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잦은 퇴사는 내가 꼭 나약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일이 되는 것만 같아 버티고 또 버텼다


낭떠러지 앞에 서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삶을 버텨내기보다 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퇴사를 했고, 운이 좋았던 건지 다행히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합격했습니다"라는 전화를 받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와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 역시 덩달아 좋아했다, 소위 말하는 대기업이었고 집에서도 가깝고 복지도 좋아 나 역시 두근거리는 입사였다.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면서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일도 잠시였던 걸까, 조금 더 넓은 세상에서 헤엄치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던 찰나에 나는 또 다른 유혹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대기업이었던 회사에 퇴사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영업 사원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생활해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분명, 욕심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날개를 펼쳤다는 행복도 잠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나의 가능성을 믿고 싶었고, 포기를 인정하는 순간 나는 진정한 실패라는 걸 경험하게 되리라 생각했다. 무서웠고,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얘기할 수 없었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사람을 만나는 일을 점점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일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서 나를 멀리 떨어트려 놓기 시작했다


넓은 바다 위 조그마한 섬에 혼자 갇혀 버린 느낌이었다






스물여덟, 어린 나이는 분명 아니었다. 나는 여섯 번의 퇴사라는 이력만 남긴 채 바다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실패한 인생인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무서웠다. 우선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내가 일상을 떠나도 괜찮은 걸까 생각하던 시기에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섬으로 떠났고 나는 그 섬에서 삼 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일상생활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며, 나의 마음보다 타인의 마음에 더 신경 썼던 나는 섬에 가자마자 우선 모든 마음의 스위치를 OFF 시켰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4년 전의 섬 생활이 단순한 호기심이었다면 스물여덟의 섬 생활은 살고자 하는 마음에 발버둥 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바다를 산책했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나의 마음을 글로 적고 표현하는 일이 나에게는 유일하게 마음을 안아주는 일이었으니까, 매일매일 잊지 않고 글을 썼다. 나의 나약한 마음을, 실패를 통해 얻었던 마음들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들을 말이다


가장 먼저 많이 채우려고 했던 욕심들을 내려놓기 시작했고 비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채우려고 노력했을 때보다 비우려고 할수록 내 마음은 채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게 무서워 무조건 YES를 외쳤던 나는, 진짜 내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NO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NO라는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내 마음에 조금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여섯 번의 퇴사와 일곱 번의 입사를 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나는 또 일곱 번째 퇴사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의 여섯 번의 퇴사가 일반적인 이력은 아닐 테지만, 나는 여섯 번의 퇴사 덕분에 돈 주고도 배울 수 없었던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다


생각만으로 했던 나와 진짜 내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어떤 상황에서 조금 더 스트레스를 덜 받는지,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나의 삶은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조금 더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의 찬란했던 이십 대, 누군가는 여섯 번의 퇴사가 실패라고 이야기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실패라고 부르는 경험들이 분명 존재하니까 말이다. 여섯 번의 퇴사에 넘어질 때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매일 밤 취업 사이트를 보며 내 인생이 정말 실패한 것만 같아 무서웠다. 겨우 면접 기회가 생겨서 면접을 보러 가는 날이면 수많은 경쟁자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의 심장을 두려움으로 뛰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십 대의 시간 동안 여섯 번의 퇴사가 나에게는 실패이기보다 나를 알아가는 분명한 시간이었기에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고 느낀다.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두려움과 무서움이 깊게 파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 나는 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자주 넘어지고, 자주 일어난 경험 덕분에 나는 실패했다는 마음이 피어오를 때마다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올 거라 믿으며 나를 위로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자주 실패했다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자주 실패했고 자주 성공한 사람이었다






만약 나처럼

자주 퇴사하고 자주 입사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진심으로 그대를 꼭 안아주고 싶다


지금 걷고 있는 터널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려울 테지만, 당신의 터널은 끝이 분명히 존재하니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긴 터널이 지나면 당신은 밝은 빛을 보게 될 테고, 밝은 빛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상인지 알게 된 그대는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긴 터널을 묵묵히 걷고 있는 그대가 참 예쁘고 사랑스럽다


당신의 삶은 실패한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하기 위해 잠시 쉬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꽁꽁 숨어 버리고 싶은 마음 대신 고개를 들고 어깨를 쫙 펴고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당장은 자신이 너무 못난 사람 같아 힘들겠지만, 그대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고 앞으로 더 빛날 일들이 많은 사람임이 분명하니까 더 많이 웃으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나의 잦은 퇴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용기였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수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인간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당신의 새로운 시작은 분명 수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 테니까


조금만 힘들어도 퇴사라는 카드를 내민 게 아니라 더 다양한 삶을 마주하기 위해 당신이 자주 용기를 낸 거라면 나는 당신의 용기를 칭찬해 주고 싶다, 당신의 삶에 애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당신이 참 멋지다고 말이다


서른이 되어 돌이켜보니 나의 이십 대는 수많은 방황과 실패, 두려움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보니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고,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 가게 되었고 사소한 일에 예전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수많은 파도를 만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 파도를 즐기며 넘는 방법 또한 이십 대에 배웠다고 생각한다


실패와 두려움, 부정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자랑스럽다 나의 이십 대, 어두운 긴 터널을 홀로 걸어왔던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리고 나처럼 홀로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는 이들을 응원해주고 싶다, 삶에 애정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대는 삶을 더 깊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니까,

그대의 삶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는다


긴 터널을 지나면 주변을 더 살펴볼 여유가 생길 것이고

매일매일 찾아오는 파도를 유연하게 넘을 힘이 생길 것이다


우리, 이제 파도를 타고 더 넓은 세상으로 함께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