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쓰지 못해도 괜찮아, 조금 느리더라도 괜찮아, 여전히 쓰고 싶은 마음들
나 홀로 여행, 22살 나는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홀로 제주로 여행을 떠났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혼자 수속을 밟고 가방을 맡기며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아서 뿌듯하기까지 했던 나의 첫 여행. 누군가에게는 시시콜콜한 여행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첫'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행은 설렘 그 자체였다
물론 딱 공항까지만 이었던 기억. 운전을 하지 못해서 버스로 여행을 해야 했고, 10년 전 이야기라 제주에 대한 여행 정보도 부족했을 터라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검색해가며 나는 고민 끝에 저녁 투어를 함께해주는 게스트하우스를 첫 목적지로 잡고 근처 해수욕장에 들러 게스트하우스로 갈 생각에 버스에 올랐다
'틱'
카드를 찍자마자 기사님은 무심한 표정으로 '어디 가세요'라고 물어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제주 버스는 목적지를 얘기하고 카드를 찍어야 했는데 당연히 몰랐을 육지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그 후로 버스를 타고 여행 가는 친구들에게 "꼭 목적지를 얘기하고 카드를 찍어야 해"라고 이야기해주었는데 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기던 친구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처음 마주했던 제주의 해수욕장은 차가웠고, 쓸쓸해 보였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차가웠던 6월의 제주 바다
삼삼오오 모여서 바다를 보는 몇몇 가족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했다. 잔뜩 시무룩한 하늘과 제주의 습한 바람, 거북이처럼 배낭을 메고 30분 넘게 걸었을 때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했다. 어색하고, 불편했던 8인실의 게스트하우스 2층 침대에서 '외롭다'라는 감정이 차올랐다.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던 첫 게스트하우스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고, 내가 왜 제주에 왔을까 라는 마음이 어둡게 흘러가던 밤이었다
둘째 날 여행지를 정하고 카메라를 꺼내어 무작정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무룩했던 하늘이 밤새 기분이 좋아진 덕분에 나는 방긋 웃고 있는 하늘을 덩달아 웃으며 찍기 시작했고, 길가에 핀 예쁜 들꽃을 보며 찍기 시작했다
쓸쓸하게만 느껴졌던 제주의 첫인상은 조금씩 맑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렇게 2년 뒤 제주에서 삼 개월을 보내고 또 4년 뒤 3개월을 제주에서 살았다
제주라는 섬은, 나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고 일 년에 몇 번씩 나는 그렇게 여전히 제주를 여행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모든 순간을 나 홀로 채워가야 했기에 조금 외롭기도 하고, 함께 하는 이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나 홀로 처음 마주하는 여행의 순간들은 하나하나 모든 게 소중하기만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 인지, 내가 어떤 순간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을 두려워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으니 나에게 '첫' 나 홀로 여행은 꼭 필요했던 순간이었고, 나를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는 조금 더 느린 삶을 꿈꾸곤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주말이면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또 월요일을 맞이하는 반복적인 삶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스펙을 쌓고,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우선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을까'라는 고민이 늘 나를 따라왔다
조금 느린 삶을 꿈꾸었던 달팽이를 닮은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우선 내가 좋아하는 제주에서 조금 느린 삶을 배워보자 였다
섬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왠지 모르게 섬에서는 조금 더 느린 삶이 가능할 것만 같았다. 이십 대가 되면 나의 삶은 여유롭고, 행복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생각에 매일 혼란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회사원이 되는 순간부터 나를 조금 더 예쁘게 꾸며야 했고, 조금 더 멋진 사람인척, 조금 더 밝은 사람인척 연기해야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진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을 잠시 멈출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제주에서의 삶이라면 진짜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만이 가득했던 제주살이의 시작이었다
늘 바닷가에서 사는 삶을 동경했던 나에게 제주는 행복 그 자체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주의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였고,
매일 저녁이면 수고했다고 포근히 안아주는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매일매일 이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던 날들이었다
좋아하는 바다와 자연을 보며 많이 행복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를 콕콕 찌르는 마음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온 섬이었는데, 이곳에서마저 나는 일상으로 돌아갈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섬 생활이 끝나고 나면 나는 다시 지겹게만 느끼던 일상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벌써부터 일상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일상으로 돌아가 새로운 곳에 취업을 해야 할 테고, 매일 밤 이력서를 보내고 매일 아침이면 면접 전화를 기다려야 할 테다. 애써 조급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애써 밝은 척 괜찮은 척 웃으며 생활해야겠지. 섬에서 마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온 것처럼 나는 조금 더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약한 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면,
약한 나의 마음과 더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섬에서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았던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가득 차 있던 책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 역시 글을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때라, 비교적 짧은 글들이 많았던 여행 에세이부터 읽기 시작했다
'오?'
누군가의 마음이 꼭 내 마음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꼭 내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졌던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조금씩 글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마음도 함께 적어보고 싶다는 작은 용기가 생겼다
그날부터 나의 마음을 작은 일기장에 적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적으면 적을수록 마음은 가벼워졌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신기했다, 누군가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사실 나는 가까운 지인에게도 나의 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누군가에게 힘든 이야기를 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어 혼자 해결방법을 찾고, 혼자 감당해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나의 약한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을 타인에게 안아달라고 이야기할 용기가 없어 혼자 끙끙 앓았고
끙끙 앓았던 마음을 글로 풀어내니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당연했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비워냈다
그렇게 나는 7년째 나를 찾기 위해 글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간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한다는 것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는 것
글을 쓰며 나의 마음을 조금 더 알아가게 된다는 것
감사하게도 나는 글을 쓰며 나의 마음과 가장 가까워 짐을 느낀다, 글을 쓸 수 있어서 감사한 삶이다
나는 여전히 마음이 무겁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나의 일기장에 솔직한 마음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적기 시작한다. 예쁜 글씨는 아니지만 빠르게 적어 내려가는 일기는 나의 마음 그 자체다,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지기 시작했다고 느끼면 노트북을 켜서 나의 마음을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의 무거운 마음을 비워내고 또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그렇게 용기를 내보기도 한다
정말 다행이다, 글을 쓸 수 있음이 정말 다행이다
나는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 글을 쓰기 이전까지의 나는 나의 마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꽤 많은 에너지를 모아야만 했다. 워낙 감정에 예민한 탓에 울컥하는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흘러 타인을 당황시키지는 않을까 조심해야 했고, 누군가 무거운 나의 마음을 듣고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쓰기도 했으니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삶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글을 쓰며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했다, 글을 쓰며 눈물이 흐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기뻐서 쓰는 글도 마음이 무거워져서 쓰는 글도 모두 나의 삶이라는 것을 배워간다
좋았던 일만 기억하고 싶었던 예전의 나는, 글을 쓰며 힘들었던 일도 나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외면하고 싶었던 약한 마음들을 조금씩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글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말이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순간들,
나는 그렇게 7년째 글을 읽고 쓰면서 나와 조금 더 친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