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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함을 말로 표현하는 게 두려웠으니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마음

by 윤슬

서운하다

: 마음에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있다




'나 이만큼 서운하니까 나 좀 챙겨줘'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서운하지 않도록 나를 자주 살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만 하고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나는 전자처럼 나의 외로움과 서운함을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없어 후자처럼 나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마음을 꽁꽁 숨기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대화를 풀어가는 일들이 친구 관계에서도, 연인 사이에서도, 회사생활에서도 모든 인간관계에서 꼭 필요한 사실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머리는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을 표현하며 살지 않았던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솔직한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게 유난히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특히, 누군가에게 서운한 일 마음이 상하는 일은 더더욱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편에 속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던 시절


나는 어렸을 적부터 세 자매를 돌보느라 바쁘신 엄마를 위해 '알아서 척척' 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왔다. 부모님께 '알아서 척척 잘하는 우리 딸'이라는 칭찬을 들을 때면, 무의식 중에 나는 무언가 하나라도 스스로 '잘'해내야 칭찬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기준에 칭찬받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 나에게 소소한 칭찬을 하기 시작하면 나는 그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내가 웃는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의 웃음이 밝고, 예쁘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그 칭찬에 고맙다 라는 인사를 건네기는커녕 그 칭찬이 진심일까 라는 생각으로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들만 늘어갔다


연애에서도 비슷한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연애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시직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호감 표시를 할 때면 지레 겁부터 먹기 시작했다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어떠한 행동도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아마도 나는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나를 자꾸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니 누군가 나에게 보여주는 호감 자체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누군가 나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표현했고,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누군가의 호감 표현에 지레 겁부터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네가 날 좋아할 리가 없어, 언젠가는 분명 실망하게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누군가의 진심을 회피하려고만 했던 날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존재만으로 사랑받지 못했던 날들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잊고 살아왔다


힘들다

외롭다

지친다

슬프다

서운하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마음을 건네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부정적인 감정을 누군가에게 건네거나 누군가 나에게 건네 올 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당황스러워했다. 부정적인 마음 또한,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라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안아주며 살아가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다



여전히 '서운하다'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그래서일까, 연애를 하면서도 '서운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무의식 중에 연인에게 서운하다 라는 표현을 쓰기 전에 '알아서 척척' 해주기를 바라 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알아서 척척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던 터라 누군가의 서운함이 나에게 스며드는 게 썩 유쾌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서운하다'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을 두려워하기만 했던 시간들은 오히려 더 많은 오해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의 모습에 연인은 안절부절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전전긍긍했고, 나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극단적인 생각만 늘어갈 뿐 - 해결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연애를 하면서 '나 서운해'라고 표현해야 하는 순간들이 자주 생기곤 한다


알아서 척척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도, 연애를 하면서 알아서 척척 잘하던 나의 모습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연인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으면서도 혹여나 '상대방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정말 말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 쉽게 상대방에게 서운한 마음을 건네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우리의 마음이 '펑'하고 터져버리지 않도록


연인과 만나면서 연락과 만남의 문제로 서운한 마음이 점점 더 커져갔지만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말하지 않아도 연인이 나의 서운한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고, 한편으로는 나는 연인에게 이해심이 많은 멋진 여자 친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연인에게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알아서 컨트롤하는 것 또한 '알아서 척척' 잘하는 연애가 상대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불필요한 공기가 가득 들어간 풍선처럼 결국 내 마음은 펑하고 터져버렸다


나름대로 서운한 마음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분명한 착각이었다. 꽁꽁 숨겨둔 마음은, 연인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펑하고 터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연인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분명 플러스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운한 감정을 혼자서 묵히면 묵힐수록 쾌쾌한 냄새를 풍겼고, 결국에는 펑하고 터져버리고 말아 버린다면 과연 펑 터져버린 풍선을 보고 우리는 웃을 수 있을까. 터져버린 풍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어떤 생각과 마주하게 될까, 서로가 서로를 탓하며 오히려 더 날카로운 말들로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서운한 마음을 통해 우리는 또 그렇게 깊어지고 있다


'펑'


연인과의 통화에서 결국 펑하고 터져버리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펑하고 터져버린 우리의 풍선은 동그랗고 예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여러 조각으로 흩어져 힘없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시 터지기 전으로 돌릴 수 없었다, 이미 터져버린 풍선을 마주하며 우리는 이 풍선이 왜 터졌는지를 서로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야만 했다


우리는 서운한 감정이 쾌쾌한 냄새를 풍기기 전에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이 없는지 조금 더 깊게 바라봐줬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로 표현하지 않아 우리의 서운함은 깊어져만 갔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펑하고 소리를 내며 우리의 마음속을 흔들어 놓았다


한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다


서운하다 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우리의 미로 같은 대화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서운하다'라는 표현은 양쪽이 모두가 이해가 되는 상태가 아니라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건네는 마음이었던 탓에 한쪽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일까 - 우리의 솔직한 마음만이 이 서운한 감정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배워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에도 없는 상처 가득한 말들을 남길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정'과 '솔직한 마음'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실수한 말이 있다면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고, 상대방이 실수한 말이 있다면 '나는 당신이 이렇게 얘기할 때 서운한 감정이 들었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서운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해야 한다


결국,

'서운하다'라는 마음을 빙빙 돌려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다행인 건 우리는 이렇게 또 서로가 서로에게 깊어진다. 서로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피어올랐고, 우리는 솔직한 마음을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면서 서로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간다


연인 사이에서도, 친구 관계에서도,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가 그 어떤 관계 속에서도 두 가지를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인정과 솔직한 표현,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한쪽의 노력만이 아니라 양쪽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솔직해야 할 것이며, 스스로 잘못된 행동이나 말은 인정하고 사과해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누군가 인정하고 사과를 건네 온다면 나 또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는 사과를 받아주고 자신의 서운했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려고 노력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더 넓은 마음으로 안아 줄 수 있는 건강한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여전히 소중한 존재임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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