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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연애란 자주 가시를 세워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당신의 마음을 마주했던 날들

by 윤슬

나에게 연애란,

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시간이 길었다


누군가와 호감을 가지고 연락을 시작하고

누군가에게 더 깊은 호감이 생겨 연애를 시작하고

매일 같이 일상을 공유하고, 일주일에 몇 번은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 일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순간들


고백하건대,

나에게 연애란 핑크빛으로 물들인 순간들보다 자주 가시를 세워야 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고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연애에 꽤 많은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둘보다 혼자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연애보다 사실하고자 하는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유난히 경험해 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 베이킹, 글쓰기, 창업, 플로리스트 수업 등 다양한 경험에 목말라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일도 잦아졌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혼자 떠나는 여행을 반대한다 하더라도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둘보다는 철저하게 혼자가 편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이십 대는 종종 핑크빛으로 물들려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스스로 멈추기 위한 이유를 찾아 사랑이라는 감정의 씨앗을 모른 척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누군가 나를 좋다고 마음을 전하거나, 긍정적인 호감 표시를 할 때면 나는 '왜'라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와 버려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 버렸다. '당신은 나의 어디가 좋은 걸까, 날 얼마나 알기에 나를 좋다고 하는 걸까'라는 세모난 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와 나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한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바라보기보다 앞으로의 걱정들이 나의 사랑에 '멈춤'버튼을 자주 누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랑 앞에서 진짜 약한 나의 모습들을 들킬까 봐 온갖 핑계를 대고 사랑을 시작하는 일을 두려워했던 건 아닐까. 누군가의 마음을 믿지 못했다기보다 사실 나는 내 마음을 믿지 못한 순간들이 많았기에 애써 누군가와 가까워지는걸 두려워했던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세모난 마음에 예쁜 마음을 건네준 이들에게는 여전히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도보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큰 곰인형을 들고 걸어와 건네준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찾아 헤매던 어떤 이의 마음, 자신의 진심을 긴 손편지로 조심스럽게 건네던 마음,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에서 함께 걸었던 시간들까지 말이다.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예쁜 순간들이 존재한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기보다 지나간 시간이 있기에 오늘의 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 누군가 건네준 귀하고 예쁜 마음들 덕분에 나는 사랑에도 조금씩 용기를 내고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 더 순수한 눈으로 마주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순수한 마음은 여전히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빛나고 있을 것이고

나는 오늘의 사랑에게 온전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여전히 사랑에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있긴 하지만
고슴도치인 나를 사랑해주는 이와 함께 산책하듯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한번 고슴도치가 한순간에 변하지는 않기에 나 역시 여전히 고슴도치처럼 살아가고 있다


사랑에는 유독 느리기도 하고,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애써 가까이 오는 인연을 다양한 이유로 밀어내며 고슴도치가 되어 사랑하는 나 같은 이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사랑에 유독 약하고, 혹여나 내가 상처 받지는 않을까 먼저 두려움을 느껴 사랑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을 꼭 안아주고 싶다. 그 누구보다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사랑에는 조금 더 느린 사람들일 것이다. 신중하고, 마음이 예쁜 사람들일 것이다. 조금 시간을 가지고 사랑을 마주하는 예쁜 사람들이 분명한데 상대방과 사랑이 속도가 다르다는 이유로 점점 멀어지는 경험을 하며 스스로 사랑의 문을 조금씩 닫게 되는 경험들이 쌓여 사랑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며 스스로를 혼자만의 동굴로 밀어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누구보다 사랑에 신중하고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예쁜 사람이 분명하니까

누군가 당신의 가시만 보고 진솔한 마음을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타인의 보는 눈이 부족하여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 뿐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분명 당신의 예쁜 마음을 알아봐 주는 예쁜 이와 마주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의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툰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보다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조금씩 용기를 내고 있는 순간들이 감사하기만 하다. 나처럼 고슴도치를 닮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꽁꽁 숨어버리기보다 나의 시선을 믿고, 나의 마음을 믿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꽁꽁 숨어 혼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도 물론 편하고 행복했지만

누군가와 일상을 공유하고 더 넓은 행복을 경험하는 순간들 또한 행복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대의 마음에 '똑똑똑' 노크를 한다면 너무 많은 자물쇠를 걸고 불안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기보다 조금 더 유연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는 날들이 기를 바라본다


내가 부족하기보다 우리가 인연이 되는 것 또한 타이밍이라고 믿는다


나를 불안하고 하게 만들고, 부족한 사람처럼 만드는 사람과의 인연이라면 멀리해야겠지만 당신을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당신의 일상에 미소를 선물하는 이라면 마음의 문을 열어 보면 어떨까


사랑스러운 고슴도치인 우리는 분명 사랑에 최선을 다할 예쁜 사람들이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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