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술청 Nov 07. 2019

코카서스 3국 여행기20

아제르바이잔 여행 명소 하루 만에 완전정복

 아침식사를 마치고 하루투어를 위해 숙소를 나왔더니 현지인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당신 이름이 ○○냐고 물어보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도 했고,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 자체가 수상해서 단호하게 아니라고 무시를 해버렸다. 의아해하며 주변을 서성이던 그 청년은 잠시 후에 나타난 가장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잠깐의 대화를 마친 가장님은 봄 여사를 찾는데, 당신이 모른다고 했냐고 다그쳤다. 아하, 그 ‘춘다 리’가 바로 봄 여사를 지칭하는 거였구나. 그때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 청년은 어제 우리가 예약을 했던 여행사의 직원이고, 예약한 이름과 주소를 들고 우리들을 찾으러 왔던 것이다. 한동안 가장님으로부터 그 정도 상황 파악도 못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아야 했다.



 청년의 뒤를 따라 여행사에 도착하니 하루투어를 같이 할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확인 절차를 거치고 차에 올랐다. 여행객은 우리 일행을 포함해서 13명이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코도 크고, 키도 크고, 하얀 머리에 수염을 기른 중년의 가이드가 빠르게 영어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무슨 얘긴지 들어보려 신경을 곤두세웠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가뭄에 콩 나듯 튀어나오는 아는 단어 몇 개로 아제르바이잔식 영어를 이해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구시가지를 벗어난 차는 카스피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달렸다. 


주변에는 석유 시추시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대로를 벗어나 황량한 벌판으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눈을 의심케 하는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벌판에 검은 액체가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유였다. 한국의 어떤 독재자가 그토록 찾아 헤맸다던, 대륙붕이니, 제7광구니, 노래를 불렀다는 그 원유가 이곳에서는 벌판의 맨땅에, 샘물 솟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다니고 있었다. 잠시 후에 차는 첫 번째 목적지인 진흙화산에 도착했다. 

 사막 같은 벌판에 무덤의 봉분처럼 솟아 있는 진흙화산은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전 세계 800여 개의 진흙 화산 중 350여 개가 아제르바이잔에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보글보글, 꼬르락꼬르락 괴상한 소리를 내는 앙증맞은 화산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뜨거운 진흙이 아니라 차가운 회색 진흙이 분출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흙화산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암각화 문화 경관으로 유명한 고부스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사막 가운데 위치한 고부스탄은 수천 년 전 바닷속 땅이 해수면이 차차 낮아지면서 지상으로 올라와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구석기부터 중세까지 이어지는 삶의 터전이었던 고부수탄엔 약 2만 년 전부터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6200여 점의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유목민이었던 이곳의 주민들은 화산 분화와 오일가스 분출로 형성된 동굴에서 삶을 영위하면서 부드러운 석회암에 흑요석으로 그림을 그렸다. 기다란 창을 들고 사냥을 하러 가는 남자들, 하늘을 향해 팔을 뻗쳐 들고 기도하는 제사장, 여럿이 모여 춤을 추는 듯한 모습, 임신한 여성 등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장면이 묘사돼 있고, 사슴, 멧돼지, 말, 노새, 뿔을 맞대고 싸우는 황소 등도 볼 수 있다. 나룻배와 물고기, 그물망 등을 묘사한 그림을 통해서는 그들이 어로 생활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암각화는 돌산 주변에 널려 있는 바위에 마치 낙서라도 한 듯 자유롭게 새겨져 있었다.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정신없이 돌산을 누볐다. 

산 아래쪽 바닥에 직경 20~30㎝, 깊이 약 50㎝의 동그란 구멍이 뚫린 평평한 바위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구멍들은 제물로 희생된 동물의 피나 식수를 받아두거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데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도마뱀 한 마리가 이방인들의 무단침입에 잔뜩 성난 얼굴로 항의를 하고 있었다.


 13시경 고부스탄을 떠나 바쿠 시내로 들어와서 뷔페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름도 모르는 음식들이 종류별로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는데, 맛은 별로 였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아테시카 불의 사원’(Ateshgah Fire Temple)으로 갔다. 이곳은 ‘배화교’라고도 부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수도원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수도원 기능은 사라지고 역사박물관으로 명패를 바꿔 달았다. ‘조로아스터교’는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라는 인물이 기원전 6세기경 개혁한 종교로 빛, 불, 물, 흙 등을 신성시하는 종교인데, 특히 불을 제사 때 많이 사용하여 불은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이곳에 수도원이 세워진 것도 고대 언제쯤 지하에서 나온 천연가스에서 발화한 불 때문이라고 한다. 수도원 가운데 제단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의 사원에서 나와 다시 시내로 접어들었는데, 시내 한복판에서도 석유 시추시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바쿠는 어디든 파기만 하면 석유가 나오는 모양이었다. 16시쯤 ‘야나르다그’에 도착했다. 2천 년 전에 자연 발화되어 아직까지도 꺼지지 않고 줄기차게 타오르는 자연 불로 유명한 곳이다. 지하에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고 한다. 언덕 위에 올라가니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하루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는 헤이다르 알리예프 문화센터였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를 디자인한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로 유명한 곳이다. 11만 1천292㎡ 부지에 세워진 문화센터는 흘러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이 특징이다. 멀리서 보면 달팽이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면 골프채 같기도 하고, 물고기 같기도 하고, 진흙이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한, 다양한 모습을 한 유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돌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부에 회의장, 공연장, 박물관, 도서관을 갖추고 있는 이 문화센터의 이름은 현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전임 대통령에게서 따왔다. 건물 앞 넓은 잔디밭에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17시 35분에 문화센터를 출발한 버스는 18시쯤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면서 맥주, 물, 소시지, 컵라면, 과자, 과일 등을 샀다. 컵라면을 안주 삼아 간단하게 소주와 맥주를 한잔했다. 모처럼 여유가 생겨 사진도 올리고, 빨래도 하고, 자료 검색도 하며 한가롭게 하루를 마감했다.

작가의 이전글 코카서스 3국 여행기 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