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떨결에 가게 된 여행
2016년 9월의 남미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미뤄뒀던 여행뒤풀이를 하던 날, 여행의 감명과 기운이 사그라지는 것이 차마 아쉬워 다음 여행을 도모하기로 했다. 설왕설래 끝에 결정된 차기 여행지는 아프리카. 그냥 차분하게 2년을 준비해서 가면 될 텐데도, 2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하니 중간에 짧게라도 어디를 한군데 갔다 오자는 제안이 분위기를 탔고, 알코올의 힘은 주저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가게 된 것이 조지아 여행이었다. 특별한 이유나 별다른 인연 같은 것은 없었다. 양 선생이 TV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곳, 한국과 별로 멀지 않은 곳,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한 곳, 중남미를 두루 섭렵한 우리에게 조지아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문제는 케빈이 바쁘다는 것이었다. 무슨 금사과를 재배하는 것도 아니면서 평창에서의 사과 농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하염없이 케빈만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이번 여행에는 케빈을 제외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결단할 수 있었던 데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은 여행사를 끼지 않고, 혼자서 기획을 해서 친구들과, 어쩌다가는 동생을 데리고 쉽게, 그리고 저렴하게 해외여행을 잘도 다녔다. 우리 같은 구닥다리들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유창한 영어실력, 시공간을 압축시킨 디지털혁명의 도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역마살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아직도 철부지 같은, 엄마를 꼭 닮아서 덤벙거리고 정신없는 딸을 믿고 따라가야 하나 하는 회의와 망설임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경험이 만만치 않고, 대학원생인 내가 있으니 뭐 문제가 되겠는가 싶어 자신있게 조지아 여행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지아만 달랑 갔다 오기에는 아까워서 인접국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도 같이 가기로 했다. 그 세 나라를 합쳐서 코카서스 3국이라고 통칭했다. 그러나 코카서스 3국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국이었다. 자료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봐도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없었다. ‘코카서스’라는 입력어를 쳐서 겨우 구입한 책은 그야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날 정도로 허술했다. 여행지에 대한 설명은 1도 없고, 자기가 다닌 곳의 사진과 짤막한 사진 설명이 전부였다. 문법을 아예 무시한 비문에, 종교 편파적인 감상평, 도대체 이런 책을 버젓이 내주는 출판사는 뭐하는 곳이란 말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봄 여사도 그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는 나랑 똑 같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나마 봄 여사는 빌려보기라도 했지, 나는 그 걸레 같은 책을 돈을 주고 직접 구입까지 했으니. 다행히 조지아의 역사를 정리한 책 1권과 조지아만이 아니라 구소련 국가를 두루 여행하고 난 뒤 쓴 여행기 1권을 추가로 구입할 수 있었다. 2018년 9월 22일 토요일, 코카서스 여행을 떠나는 날, 익숙한 전화벨소리에 잠을 깼다. 오전 10시. 잽싸게 일어나 세탁기부터 가동시켰다. 이번 여행에 동행할 옷 몇 벌이 아직도 새 단장을 못한 채 뒹굴고 있었기에 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딸과 가장님은 아직도 짐을 다 못 싸서 부산스럽기만 하다. 그 사이 세탁기가 제 할 일을 마쳤다. 지체 없이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었다.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혹자는 세탁물은 쨍쨍한 햇빛에 말려야 최고라지만, 누군들 그걸 몰라서 못하겠는가? 아파트에 살면서 어찌 그런 호사를 바라겠는가. 아파트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건조기는 가히 혁명적이다. “비 온다. 빨래 걷어라.”라는 말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12시 10분쯤 미역국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앞으로 열흘 넘게 집을 비워둬야 해서 남은 음식은 남김없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빨래도 개야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성질을 부렸더니 그때서야 가장님이 어기적거리며 빨래를 갠다. 음식물 쓰레기와 헌옷가지 등을 버리고 들어와서 꼼꼼히 집단속을 했다. 14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기동성을 고려해서 내짐은 배낭에다 넣었다. 자신이 감당할 수도 없는 무게의 짐을 가져갈 것이 분명한 가장님을 고려한 선택이다. 역시나 낑낑대는 가장님 가방을 대신 끌고 근처에 있는 공항리무진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15시에 출발한 공항버스는 16시경에 공항에 도착했다. 웬걸, 그 새에 터미널이 하나 더 생겼다. 버스에 탔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리는데, 제1터미널인지, 제2터미널인지 헷갈려하는 딸. 여기서 내려야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우왕좌왕하는 사이 버스는 출발했다. 아, 저런 딸을 믿고 가야하다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10분을 더 가니 제2터미널이 나왔다. 다행히 대한항공, 델타항공 등 4개 항공사는 제2터미널을 이용한다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도착한 양 선생과 봄 여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제르바이잔 직항도 있다는데, 우리는 베이징 경유행을 택했다. 체크인을 하러 갔는데, 공항 직원들이 컴퓨터로 하는 셀프 체크인을 권유해서 다들 기계와 씨름을 해야 했다. 내꺼만 자꾸 에러가 나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반대편에 가서 줄을 서서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참을 지루하게 줄을 서서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직원이 하는 말이 일반석은 매진이라 비즈니스석을 주겠다고 했다. 추가되는 비용은 없다고. 아마도 베이징에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비행기 좌석이 비즈니스석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고 생각했다. 딸이 비행기표를 예매하는데 내 영문이름을 잘못 입력해서 수수료를 지불하고 반환을 했고, 다시 시도했더니 일반석은 자리가 없어, 할 수 없이 비즈니스석을 예약했었다. 가격 차이가 거의 2배가 난다고, 저 인간은 뭘 해도 재수가 좋다고 투덜거리던 가장님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검색대를 무사히 빠져나와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티켓에 적힌 대로 정확히 18시 10분에 게이트가 열렸다. 비행기는 18시 40분 출발 예정이었다. 베이징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비즈니스석은 처음이라 모든 게 어리둥절하고 어색했다. 일행들하고 떨어져 혼자만 있게 되니 더 그런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승무원이 중국 입국 카드를 나눠주면서 식사주문을 받았다. 메뉴는 한식 비빔밥과 중식 닭고기였다. 닭고기를 선택했다. 간단한 음료와 땅콩을 줬는데, 땅콩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땅콩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비행기는 19시경에 이륙했다. 안정된 항로에 접어들자마자 승무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뜨거울 정도의 따뜻한 물수건을 줬다. 사용한 물수건을 걷어가더니 곧 바로 기내식이 나왔다. 쟁반에는 구은 닭고기와 소스, 누들, 샐러드, 빵 등이 오밀조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반주로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당연히 잔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앙증맞은 조그만 병으로 1병이 나왔다. 기내에서 마시는 화이트 와인은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식사 후에 영화를 보려고 헤드폰을 연결하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꽂는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옆 사람을 훔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비즈니스석은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좌석이 지그재그로 배치돼 있었다. 오호라, 헤드폰은 우리처럼 꽂는 게 아니라 자석의 원리를 이용해서 서로 붙이게 돼 있었다. 아마도 도난을 방지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일반석의 좁은 자리에서 다리에 쥐가 나고 있을 일행들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는 했지만, 의자가 거의 180도로 기울어져서 너무 편하고 좋았다. 영화가 끝나갈 쯤,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의자를 바로 하고 앉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어.’ 황당해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행기는 착륙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 후에 착륙한다고 다시 방송이 나왔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좌석을 똑바로 했다. ‘뭐지, 나만 속은 것 같은 이 기분은’. 21시경(현지 시각 20시) 비행기는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