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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몽희 Sep 08. 2024

천천히, 느려도 괜찮은 거북이들의 동네

인도네시아 롬복 길리 T

여름휴가로 인도네시아 발리, 롬복에 다녀왔다. 이번 휴가의 하이라이트는 롬복에 있는 길리 섬에 가는 것이었다. 길리는 인도네시아어로 작은 섬이라는 뜻이다. 내가 4일 동안 머문 곳은 그중에도 길리 트라왕안(길리 T)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윤식당에 나왔던 섬이라고 하면 다들 알 것이다. 나도 예전에 윤식당을 보며 ‘와 저 섬 너무 이쁘다’라고 생각했다. 길리는 짧은 일정으로 가기에는 힘든 곳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기상이 좋지 않으면 섬에 꼼짝없이 갇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길리를 가려고 하거든 무조건 여행 중간 일정에 넣어야 한다. 이번 여행의 가장 긴 일정으로 길리를 넣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냥 바다 있고 흔한 휴양지 아닐까? 했다. 하지만 결론은 다시 떠올리면 가슴이 몽글몽글 해질 만큼 너무 그리운 나의 인생 여행지가 되었다.


길리는 환경보호를 위해 연료로 움직이는 모든 교통수단을 금지한다. 그래서 모두들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마차를 탄다. 21세기에 자동차 없는 섬이라니. 그리고 섬이 크지 않아서 걸어서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같이 간 엄마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 나도 덩달아 많이 걸었다.

길리에서의 하루는 늘 아침에 눈을 떠서 조식을 먹고 서둘러서 스노클링을 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했다. 거북이를 보기 위해서다. 깊은 수심을 두려워하는 나를 아는 듯 길리 T의 해변은 전혀 깊지 않았다. 허리 정도에 오는 수심에도 많은 거북이를 볼 수 있었다.


길리에는 많은 스노클링 포인트가 있는데 처음에는 북쪽 스노클링 포인트로 갔다. 인도네시아 여행 카페에 유명한 곳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거북이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거기 말고 그냥 터틀 포인트라고 적힌 썬베드에 가자고 했다. 썬베드에 자리를 차지하니, 서버가 와서 거북이? 거북이? 하고 한국말로 물어봤다. 거북이를 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냥 지금 바다에 나가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주문을 하고 바로 바다에 갔더니 세상에. 발로 거북이를 밟을까 봐 걱정이 되는 수준이었다.

북쪽 스노클링 카페 (좌) / 썬베드가 있던 스노클링 포인트(우)

많은 사람들이 스노클링 장비를 끼고 둥둥 떠서 거북이를 본다. 서로 거북이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기도 하고, 몇몇이 모여 거북이가 해초를 뜯어먹는 모습을 본다. 거북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 괘념치 않고 평화롭게 해초를 뜯어먹는다. 고요한 물속에서 거북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그냥 저 거북이들처럼 파도가 치면 치는 대로 밀려났다가 돌아왔다가 하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거야. 얼마나 많은 눈이 근처에 있던,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거야. 자동차가 없어도, 오토바이가 없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느리면 느린 대로 그 속도에 맞춰 살 수 있다. 빠르고 바쁜 세상에서 모두들 인생에 한 번쯤은 길리를 경험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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