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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몽희 Sep 28. 2024

외계인, 외지인

외계인

독일로 건너온 지도 3년 차 재연은 용접을 하며 살고 있다. 여행을 통해 독일을 왔다가 불현듯 여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아 이민을 결심했다. 많고 많은 나라 중에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재연이 느끼기에 가장 민주적이고 다름에 대한 수용력이 높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민자에게 열려있는 다양한 직업선택지, 인종의 다양성, 좋은 교육, 환경에 대한 높은 인식 등 늘 다양성에 목말라했던 재연은 그곳이 좋았다.


흑백적인 한국은 재연에게 너무 폭력적이었다. 재연의 의견은 항상 소수에 속했고 소수는 늘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다양성만을 생각해 봤을 때 미국도 고려대상이었지만 뿌리 깊은 만능물질주의와 자본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국에서 재연은 굳이 해도 되지 않을 말을 하는 불편한 눈엣가시였다. 누군가의 언행과 태도가 불쾌한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인종이든 젠더든 차별에 대해 불편한 것을 꼭 말해야 직성이 풀렸다. 한국에서 그녀는 융합되기 어려운 사람, 튀는 사람, 별난 사람이었다.


독일에서 그녀는 자유로운 표현의 권리를 누렸고 별난 사람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로웠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을까. 더디게 늘어가는 독일어와 종종 받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인종차별은 대부분의 항목에서 불편하게 살지는 않아도 되는 한국의 삶을 그립게 했다. 여기서 나의 의견은 존중받지만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피상적인 껍질로 받는 차별은 존재했다. ‘내가 독일인이었어도 하다못해 백인이었어도 저렇게 대했을까?’ 계속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진짜 이방인인 곳에서 소외감이 드는 것은 모국에서의 소외감보다 참을만했다. 한국이 그리웠지만 재연은 독일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다. 이것이 최선일까 라는 질문은 늘 그녀의 머리를 맴돌았지만 모든 게 좋을 순 없다며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다독였다. 어쩌면 나는 지구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외계인일지도 몰라. 잠깐 지구 탐방을 왔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매일 밤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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