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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r 24. 2022

걱정받는 마음

서울 삶

가끔 사람은 사람이 필요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아플 때이다.

물론 옆에서 지켜봐 주고 챙겨주는 물리적인 보살핌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아플 때 '누군가 대신 아파줄 수 없으니 혼자서 감내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마인드의 소유자로서 보살핌보다 내가 더 필요로 하는 건 바로 '걱정해주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을 바랄 때 스스로가 되게 철없어 보이는데 이를 무기 삼아 원 없이 아이 같은 면모를 드러낸다.


오늘은 아침부터 나름 부지런히 움직였다.

샤워를 하고 처리해야 할 문서 작업도 마무리하고 외출을 위해 일찍 점심을 먹었다.

이번 주까지 하는 전시회를 보러 나갈 채비를 하던 중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고 침대로 간신히 이동했다.


장염 증상 같이 온몸에 힘이 풀려 한 숨 자고 일어났더니 오후 3시가 되어 있었다.

배아픔은 사라졌지만 그냥 하루가 갑자기 뭉뚱그려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날은 흐리고 맥도 빠지고 코로나 때보다 덜 아픈 것 같은데 괜히 칭얼거리고 싶어졌다.


심리적으로 현재 가장 가까운 두 사람에게 아프다고 연락을 했다.

순간 내가 아프다는 연기를 하는 건가? 조금 긴가민가 했지만 그냥 두 사람의 걱정이 필요했다.


왜?

어떻게?

뭐 먹었는데?


죽 먹었어?

다 먹었어? 배는 안 고파? 지금은?

수분 보충해야 해

...


나의 아픔 정도보다 더 과분한 걱정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좋아졌다.

죽을 잘 챙겨 먹고 예능 프로그램까지 보며 깔깔 웃는 저녁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배는 조금 꾸룩 거리고 내일까지는 남은 죽과 함께 집에서 파김치가 되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이상하게 걱정은 없다.


걱정을 받으니 걱정이 없어졌다.

심리적 보살핌을 받고 싶었나 보다.


내가 안 아프길 바라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주는 안정감인가?

이런 마음을 찾는 걸 보면 사람은 역시 사람이 필요해.

아니 적어도 나는 사람이 필요해.


타인들 앞에선 '난 외로움을 감내하며 자유를 택한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하지만

은밀한 내면에는 칭얼거리고 의지하고 마음껏 걱정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단 말이지.


어쨌거나

고마운 사람들의 과분한 걱정을 내 마음대로 '사랑'으로 해석하고 나니 배는 차지만 마음은 따뜻한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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