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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r 26. 2022

선례가 되는 선배

서울 삶

[공무원, 교사, 금융권, 공사]

학창 시절 내가 아는 선배들의 진로는 위 4개로 정리되었다.

아마 다른 직군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몰랐을 확률이 높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한해서는 4가지가 다였다.


전공이 인문학 중에서도 가장 기초학문이자 쓸모없다의 대표 주자로 뽑히는 '철학과'이다 보니 모두가 자신의 진로를 위해 먹고살 길을 알아서 찾기 바빴다.


하고 싶은 것들은 넘쳐나지만 되고 싶은 직업은 없었던 학창 시절의 나는 명시되어 있는 직군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았다.

나만 빼고 모두가 하는 듯한 상경계열 복수전공도 택하지 않았고 영어공부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또 인문학과인 영어영문을 신청하는 그런 외로운 소외인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하나의 희망이 되어주는 선배가 있었다.

그때 그 시절, 트렌드가 아니었던 마이웨이를 하며 새로운 시도를 도전하는 유일한 여자 선배였다.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였기에 "그 선배 서울에 취직했대, 드라마 마케팅이었나? 그렇다더라."

2년 전에 이 정도의 근황만 건너들 었다.


서울에 올라온 후 이 선배만은 꼭 만나고 싶었다. 표현을 못해서 티는 못 냈지만, 선배가 새로운 선택을 하며 걸어가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힘이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어 이해를 못 할 수 있지만 내가 거주했던 대구에서는 새로운 분야나 진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특히 시야가 좁아지는 나의 전공에서 길을 개척하는 사람은 친하든 안 친하든 하나의 희망이었다.

  


드라마 마케팅 일을 마무리하고 현재는 영화제에서 일을 하는 선배는 다음 주에 전주로 떠난다고 했다.

물론 일은 힘들고 지치지만, 덕업 일치라고 워낙에 미디어 문화를 좋아했던 선배였어서 일에 욕심과 성취감은 느끼고 있었다.


출신 학교와 학과에 애정이 있는 선배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후배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한테도 전할 수가 없어 혼자만 간직했었던 마음을 내가 표현해주니 무척이나 반가웠다고 한다.


나도 나의 선택과 걸어가는 길이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까?


지역 특성상 확실히 선택폭이 넓지 않고 시야를 넓히는 사람이 드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소외감이 들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와서는 아는 사람은 적지만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는 것도 통했다.


"나만 이런 생각하나?

나만 괴로운가? 이렇게는 가면 안 되나?"

자신의 삶을 잘 만들어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런 물음이 가득했던 시간들이었는데 여기선


"우와 저렇게도 살아가는구나

이런 도전을 해보네? 이것도 돈이 돼?"

식의 새로움과 놀라움을 매일 느끼고 있다.  


어디가 좋고 어느 분위기가 낫고는 없지만, 적어도 나의 성향상 덜 외로운 쪽은 여기이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과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타지에서 혼자만의 삶을 잘 개척해 가고 있는 학연 선배는 이상하게 더 힘이 되고 든든한 기분이었다.


나도 뭐 아무것도 아니지만(아직은?) 그냥 위에 명시된 직업군 말고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선배가 되었으면 한다.


(문제는 나를 아는 후배가 거의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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