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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y 09. 2020

대학교 동아리의 로망

연극반

[대학교 동아리의 로망, 연극반]

     

한산한 학교 기숙사에 살던 2017년 1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동아리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1층 오른쪽 제일 첫 번째 방을 두드렸다. 팻말에는 세상 심플한 ‘연극반’ 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똑똑’

     

“누구세요? 그냥 들어오시면 돼요.”

     

지금보다 훨씬 경험이 없던 그땐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부터가 긴장이었다. 하물며 새로운 단체에 무작정 문두들이는 것이었기에 화장실에서 긴장의 쉼 호흡을 몇 번이나 쉰지 모르겠다. 문을 열었을 땐 연극반이라는 글자가 적힌 롱패딩을 입은 4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연극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오래전부터 직접 만들어 온 것 같은 포스터들의 행렬과 곳곳에 흐트러져 있는 소품, 의상들 그리고 색 바랜 소파까지. 찾았다! 내 대학 로망!

     


영화에서 배운 대학은 청춘을 강조한 탓에 촌스러움이 가득 묻어있었다. 어설프지만 열정은 넘치는 아마추어 집단 같은 이미지가 강했던 영화 속 대학과는 달리 실제 대학에 입학해서는 ‘집단’ 자체를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1년정도 학교를 다니고 어느정도 이 공간이 익숙해졌을 때, 어느날 2층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나에게 룸메이트 언니가 동아리는 안드냐고 물었다.

동아리에 관해서 그리고 대학에 관해서 내 로망은 다~ 사라졌다고 푸념하는 내 말을 듣던 언니는 우리 학교에 1년에 4편의 극을 만들어 올리는 집단이 있다고 했다. 자기들이 직접 극을 쓰고 시험기간에도 매일 연습하고 무대를 만들고 연출을 하는 북치고 장구치는 집단이라고 했다. 심지어 작품이 끝나면 자기들끼리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까지 흘린다고 했다. 뭔가 그 집단은 현재만 사는 듯한 배짱 있는 사람들이 가득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구성원들이  강렬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을 듯한 그 느낌이었다. 그렇게 충동적인 이끌림으로 택한 나의 첫 동아리는 연극반이었다. 연극을 좋아하냐고? 연기가 하고 싶었냐고? 땡! 그냥 나의 유일했던 대학교 로망을 채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가두모집이 시작되기도 전에 혼자 들어갔던 패기 있는 사람치고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 활동을 포기했다. 소속감을 느끼기 전에 소외감으로 상당히 소극적여 졌기 때문이다. OT 이후 종적을 감추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던 난 여름방학에 다시 한번 문을 두들었다. 내가 포기했던 집단에 남은 사람들이 나 대신 나의 로망을 실현하는 것 같아 미련가득한 아쉬움이 남았기에 작디 작아진 간땡이로 마지막 용기를 냈다.


3개월간 진행됐던 정식공연 연습기간 중 2개월은 말이 없는 수줍은 무대미술 조원9 정도로 지냈다. 공연 팀에 들어간 이상 참여하지 않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무책임한 인간류가 되는 것 같아서 스케쥴노트에 적어가며 의무적으로 참여했다. 하루가 시작할 때 마치 과제처럼 ‘동아리 참여하기’를 수첩에 적고, 갔다 와서는 글자 옆에 체크해가며 꾸역꾸역 동아리에 나갔다. 역시 시간이 약인걸까.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향하던 동아리방은 어느새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물론 입은 잘 안 열었지만.

여느 때와 같이 무대 관련한 아이디어를 내는 시늉을 하다가 조명을 맡은 친구가 공연팀을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 멘붕이 온 연출은 가장 인구가 많은 무대미술원들 중에서 조명감독을 할 사람을 찾아 헤맸고 그때  난, 손을 들고 내가 하겠다고 했다. 이때 나의 충동성에 나도 놀랬달까.


이왕 책임감 가질 거 감투 하나는 써야지 더 큰 재미가 있을 거 아닌가~ 인맥이 아니면 하기 힘든 오퍼자리에 한번 에 갈 수 있다는데 이거 완전 기회가 아닌가! 내면의 감투욕심이 나왔었나?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그냥 무대를 만드는 척 하는 내 모습이 꼴보기 싫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자의로 덥썩 조명감독이 된 나는 더 자주 동아리방에 출근했고 형광팬을 짝짝 그어가며 대본에 조명사인을 체크하고 다녔다.


“이 부분에는 이 조명이 낫지 않아요? 동선에 맞춰서 천천히 끌까요?”

연출에게 따로 연락해서 하나하나 물어보는 내 모습은 땜빵치고는 아주 열정적이었다. 어느 순간 과제처럼 가던 동아리방은 제2의 기숙사가 되었고 그냥 재밌어서 동아리방에 더 오래 있기 시작했다.

본 공연 전날 하루 종일 밤을 새며 조명 연습을 하고 반 놓은 정신 상태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입을 열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내가 이 집단을 아직 낯설어 하고 있었다는 것도 까 먹은채.

이틀간의 우당탕탕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에서 고삐 풀린 채 놀고 나니 내가 그토록 원했던 오늘만 사는 배짱있는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있었다! 새벽까지 놀다 일출과 함께 기숙사에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게 대학이지~’

     


연극반 활동은 자의로 한 첫 도전기였다. 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두 번의 공연 팀에 소속해 음향감독이라는 감투를 뒤집어 쓴 채 활발히 활동을 했고 마지막 공연 팀에선 수업까지 빼가며 일주일동안 학교가 아닌 실제 공연장에 출석했다. 이때 만난 연기하는 언니와 작곡하는 언니는 대학교에서 만난 최고로 소중한 인연들이 되었고 이 밖에도 나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친구들을 많이 만나 덕분에 따뜻한 학교생활을 보냈다.

     

졸업반이 된 지금 나의 대학생활에 가장 큰 임팩트는 역시나 연극반이었다. 그리고 가장 두려웠고 망설였던 도전도 연극반이었다. 이 경험덕에 지금은 새로운 집단, 새로운 도전에 별 망설임 없이 시작한다. 언젠간 잘 적응해 나갈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보자마자 연극반 추억이 떠올랐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장 하나로 이번 글을 끝마쳐야겠다.

기회가 된다면 연극반 추억들을 시리즈로 연재해보아야지!

“아마도 그것은 내 마음속 보물 상자 같은 곳에 간직되어 어떤 상황에서 보았는지 어떤 기분으로 보았는지, 까맣게 잊힌 후에도 내가 죽을 때 행복의 상징으로 반짝반짝 빛나며 나를 데리러 와 줄 광경과 하나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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