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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y 18. 2020

Sorry, we missed you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만든 켄 로치 감독의 작품이다.  주인공이자 아빠 역의 이름인 리키를 딴 한국어 제목은 '미안해요 리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원제가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택배회사 상하차 일용직 리키, 하루에 14개 정도의 방문을 해야 하는 방문 요양사 애비,  미래의 희망을 부정하게 되는 청소년 셉 그리고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며 커 가는 어린 라이자. 네 가족이 주인공이고 네 가족의 이야기만을 다룬다. 이전 작품처럼 켄 로치의 영화에는 악역이 없고 동시에 희망을 예고하는 해피엔딩도 없다.

네 가족의 캐릭터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현실'이라는 단어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경제대공황 이후 직장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긱(Geek)경제'라 칭하는 이 현상은 프리랜서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노동권, 생명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으로 내몰았고 시간 외 수당도 없는 '제로 아워 계약' 자들로 남겼다.  과도한 업무와 사라진 여유로 부터 만들어진 부부간, 가족간의 갈등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보고 있으면 너무 답답하고 꽉막힌 마음에 절망적이다. 누구 한명의 잘못 때문에 만들어진 불화가 아닌 그냥 그 상황이, 그 상태가 지속되어옴으로서 생겨난 갈등에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가족 넷이서 둘러앉아 시시한 농담을 하며 저녁식사를 하는 게 유일한 행복이다. 영화를 보며 이때만 마음놓고 웃을 수  있었다.

근데 세상은 이 시간마저 빼앗았고 더 큰 위기로 가족들을 떨어트렸다.


불합리함의 끝을 겪은 리치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트럭을 몰며 회사로 향한다. 돈을 벌어야 하니깐. 절망적인 얼굴에 눈물을 흘리는 리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리키가족은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 행복했을까라는 물음도 나오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노동의 굴레 속에 갇혀있는 이들 앞에서 어떻게 '인격의 품위' '인류의 연대' 등을 논할 수 있을까.

그동안 공부하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이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정말 몰랐을까?

연휴기간 과도한 업무로 생을 마감했던 쿠팡맨의 부고 기사를 접했으면서도 우리는 계속해서 빠르고 편리한 배송에 열광한다.  

'빠른 배송' '빠른 행정' '빠른 의료 시스템'등 우리나라의 장점은 편리함과 신속함이다.

하지만 자부심을 가지기 이전에 그 이면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속된 말로 '사람 갈아서 만든' 시스템 이라고 한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인간이 희생되는 이 체제를 변화시켜야 하는데..

"그럼 열심히 공부해서 너가 돈을 많이 벌던가." 라는 능력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불편한 콜라보 사상으로 합리화 되는 이 세상이 무섭다.


"Sorry we missed you"는 택배 주문자가 부재시 남기는 부재중 알림 문구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you는 주문자가 아닌 리키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놓쳐야 할까.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명복을 빌어야 할까.  


When things are intolerable, we have to change them

-켄 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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