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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y 24. 2020

나의 가을

사랑해 그리고 행복해

*목표: 글 쓰면서 안 울기


2020년 5월 20일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양산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울먹거리는 목소리에 '또 언니가 아픈가' 하고 마음이 쿵 내려 앉았는데 언니의 첫마디가 내 심장을 더 밑은 곳으로 떨어트렸다.

"세인아, 가을이가 죽었어."


담담하게 부산으로 갔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불쑥불쑥 눈물이 차올랐지만 침착했고 아무표정 없이 망미역에 내릴 수 있었다.

2번 출구에서 올라온 순간부터 눈물이 미친듯이 나왔다. 가을이랑 항상 산책다니던 길이 보이자마자 엉엉 소리내서 울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아팠다.

도저히 혼자 집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밖에서 아빠를 기다렸다. 작년 휴학시절에 매일 가을이랑 가던 수영공원에 앉아서 아빠를 기다리는데 눈물이 안 멈췄다.


이제 이 길을, 이 공원을 가을이랑 못 온다는 건가? 아니 가을이가 없다는 건가? 현실이 안 믿겼다.

그리고 아빠를 기다리는 동안 가을이를 외롭게 한 것, 더 많이 못놀아 준 것, 무관심했던 것, 더 맛있는 간식 주면서 더 따뜻한 곳에서 못 지내게 한 것 등 후회와 미안함이 미친듯이 밀려와 조금 힘들었다.


아빠는 나에게 조금 있다가 들어와라고 했다. 이틀 전 산책하다 길가에 버려진 음식을 먹었던 가을이가 조금 이상했다고 했다. 가을이는 13살, 노견이고 원래 위가 약해 잘 켁켁 거리다가도 금방 나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그 음식 안에 쥐약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피를 흘리며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가을이 피를 닦고 잘 눕힌 후 나에게 들어와라고 했다.


가을이가 누워있었다. 반쯤 감은 눈으로 편하게 누워있었다. 정말 예쁘게 누워있었다.

근데 너무 차가웠다. 너무 딱딱했다. 그 순간 '가을'이 보다 '죽음'에 정신이 팔렸다. 어떻게 이렇게 기약없이 가지? 저번주만 해도 같이 뛰면서 산책했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가는거지? 슬프기보다 무서웠다. 나와 달리 듬직한 아빠가 날이 밝으면 할머니 빈소 옆에 묻어주고 오자고 했다.


수요일 밤은 언니와 노래를 들으며 가을이 사진을 보다 잠에 들었다.

'선우정아-백년해로', '가을방학-언젠가 너로 인해'를 무한 반복하며 가을이 사진을 보며 웃다가, 울다가를 무한 반복하며..


다음날 가을이와 밝게 인사를 하고 왔다. 창녕에 가는 길은 마치 여행길 같았다. 아빠와 언니와 차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갔다. 즐거웠다.

근데 체했다. 제대로 먹은 건 샌드위치밖에 없었는데 체해서 다 빼내고 하루종일 쫄쫄 굶었다. 빨리 먹었나? 잘 못 먹었나? 했는데 아마 '신경 써서' 였을 거다. 내 위는 얇고 예민해서 나의 신경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밝고 즐겁게 인사를 하고 왔다고 내 머리는 생각했는데 내 몸은 그렇지 못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을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걷다가 멈추어서 가을이 사진을 조금 봐야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일기장의 끝은 가을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빨리 일상에 적응하고 싶지 않다. 그냥 천천히 내 마음이 가는대로 두고싶다.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내면의 평정심에 눈물은 불청객이지만 요즘은 눈물에 양보하고 있다.


자기전에 엄마한테 "혼자 살면 강아지를 키우면 안될 것 같아. 죽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라고 말하자

엄마는 "그럼 사람이랑도 같이 살면 안되지. 사람도 죽잖아. 마치 헤어질까봐 못 만나겠다, 시험에 떨어질까봐 시험 못치겠다와 비슷한 말 같네." 라고 했다.


맞다. 다 끝이 있고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다.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고 끝이나면 마음껏 그리워하면 되는거다.

그래서 난 지금 가을이가 무척이나 그립다. 무척이나 보고싶다.

대신 이제 그만 미안해 하기로 했다. 최대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기로 했다.


그래도 되겠지 가을아? 사랑해 그리고 더 행복해.


*목표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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