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직 경험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엔 운이 좋게 학교 근로를 할 수 있었다. 약 4주 정도 학교 안에 있는 연구지원팀에서 사무 보조 근로를 하는 것이었는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하루에 4시간? 5시간 정도만 일을 했던 것 같다. 받았던 월급은 72만 원으로 정확히 기억난다.
그때 당시에는 일하는 시간 대비 금액이 높아서 학교 근로는 흔히 말하는 '꿀알바'로 유명했다. 2016년 때만 해도 최저시급이 6,030원 정도였기 때문에 72만 원이라는 금액은 나에게 정말 크고 값진 월급이었다.
짧게 일하기도 했고 한 게 없어서 아무리 머리를 짜내서 기억하려고 해도 서류 파쇄한 일 말고는 생각이 안 난다. 다만, 같이 일을 했던 교육 공무원(?)분들의 업무 분위기는 아직까지도 조금은 생생하다. 연구지원팀은 안에 있는 부장님을 제외하고 6명 정도였었고 파티션으로 나뉜 각자의 책상에 앉아 모두 타자를 치며 모니터만 바라보고 일을 했다.
학교 교수님들의 연구에 관한 서류, 예산 등을 지원하는 팀이었다. 지금은 산학협력팀으로 묶여서 연구 지원 1, 2, 3팀이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한 사무실에 6명의 인원으로 모든 사무실이 떨어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 사무직 일을 하는 이들은 종종 수다를 떨며 일을 했다.
주로 나누는 이야기 주제는 연예인들의 구설수와 각종 루머, 어제 본 드라마 정도가 다였다. 내가 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한 선생님께서 육아 휴직으로 1년간 자리를 비우게 되었고 끄트머리에 앉아서 종이를 파쇄하던 난 휴직하신 선생님 책상으로 옮겨 전자책을 보거나 인강을 들으며 근로 시간을 때웠다.
신기하게 육아 휴직을 낸 선생님이 떠난 순간부터 남은 3주 동안은 이들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험담이었다. "00 샘은 너무 일을 꼼꼼하게 못하고,,," "00 샘은 말을 너무 공격적이게 하고,,," "00 샘이 없으니 눈치 볼 일이 없어서 편하고,,,"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는 것밖에 못하는 나에겐 차라리 이들의 주제가 연예인 루머였을 때가 나았다.
그때는 '와.. 사람들은 왜 저런 걸 믿지? 왜 저거에 관심이 있지?'라는 생각을 하며 신기해하기만 했다면 하루 종일 남 험담을 듣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일의 육체적 힘듦과 정신적 힘듦 중에서 한 공간에서 듣기 싫은 말을 계속 들어야만 하는 정신적 힘듦을 경험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이렇게 20살에 경험했던 사무직 근로는 일의 '장소'와 함께 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사무실 '분위기'에 대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만약 공무원이 되어 이 공간에 이 사람들과 평생을 일해야 한다면?이라는 상상을 하며 짧은 근로 시간 동안 탱자탱자 놀고 72만 원을 얻는 두 번째 사회생활도 끝이 났다.
물론 대학교 1학년인 나에겐 모두가 잘 대해 주시고 뭐든지 가르쳐 주시려고 하셔서 편하게 일했다. 특히 유일하게 수다에 적극적으로 끼지 않았던 한 선생님께서 근로가 끝나는 날 수고했다고 커피를 사주셔서 훈훈하게 마무리하긴 했다. 사람 인연이 생각보다 길다는 게, 현재 인턴을 하고 있는 학교 내 연구센터가 같은 건물에 위치해 있어 가끔 출, 퇴근 엘리베이터에서 근로 당시 함께 일했던 분들을 보곤 한다.
물론 이들에게 나는 스쳐 지나가는 근로 학생 1에 불과하지만, 나에겐 유일한 교육 공무원들이 이들이기에 속으로만 아는 체한다. 마주칠 때면 지금 이들은 어떤 수다를 떨며 일의 지루함을 입으로 풀고 있을까?라는 재밌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