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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r 05. 2022

나의 공간

서울 삶

서울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던 날이었지만, 어느 때 보다 피곤하고 기력이 딸리는 하루다. 드디어 방에 쌓여있던 짐들을 다 정돈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삿날이었다.


수납장 하나와 선반이 달린 책상 하나만 방에 들어오니 일주일 동안 정신을 어지럽혔던 짐들이 정리되었다.

지난날들은 잠깐 친구 집에 놀러 와서 신세 지고 있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내 집'에서 생활하는 기분이다.


하메와 (우리는 서로를 하우스 메이트, 하메라 부르기로 했다.) 같은 집에 살지만 각자 분리된 방이 하나씩 있다는 점이 지혜로운 동거 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있다. 하지만 저녁 시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할 땐 철저히 분리되어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본가에서 나와 타지 생활을 시작했지만, 기숙사에만 4년 정도 생활을 해서 완전히 분리된 독립 공간은 가진 적이 없었다. 작년부터 룸메 없는 기숙사에서 반년, 자취방에서 반년 생활을 해보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에게 온전한 나의 공간은 언제나 따뜻하고 완전한 느낌이었다.


어쩌면 한창 혼자를 무서워했을 어린 시절, 4인실과 2인실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용감히 훈련해왔는지도 모른다. 연습이 된 상태였기에 혼자 남겨진 공간이 쓸쓸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게 낯설고 소속된 울타리가 없는 서울에서 홀로 살았다면 과연 난 덤덤히 생활할 수 있었을까?

밤마다 찾아오는 생각과 고민에 파묻혀 조금은 무겁고 푹 꺼지는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대학교 친구이지만 서울에서 먼저 적응을 해둔 친구가 하메로 존재하기에 지금 나로선 적절한 균형을 그나마 찾고 있는 것 같다.


막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도 않은 그런 생활.

그리고 항상 남던 요리 재료들을 탈탈 털어 알뜰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동거인이 있다는 건 여러모로 참 좋다.

나의 실력 발휘


오늘 혼자서 처음으로 책상을 조립했다.

늘 책상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 있거나 조금만 조립 설명서를 봐야 할 때면 "아빠"를 찾곤 했었다.

'나는 만드는 거 잘 못해, 소질 없어. 흥미 없어." 등등으로 나를 정의했었는데

생각보다 재밌고 어렵지 않았다. 천천히 설명서를 따라서 이리저리 나사를 조으고 공간을 확보하는 게 처음 느끼는 형태의 성취감을 선물해줬다.


설명서에는 '혼자 조립하지 마세요, 2명이서 30-40분 소요'라고 적혀있지만,

난 혼자 조립해서 약 2시간 만에 완성했다. 시간은 상관없었다. 그냥 내가 쓸 책상을 스스로 조립하고 나의 공간을 멋있게 완성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하루였다.


(영상 삭제)


어제의 하루를 편집했다.

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만드는 것은 시간이 꽤나 걸리지만 재밌는 취미가 될 것 같다.

시작이 어렵지,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공부도 하고 싶다.

무엇보다 매일 보고 정성 어린 리뷰를 남겨주는 친구가 있어 혼자 있는 나의 공간에서 외롭지 않게 하루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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