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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r 07. 2022

사소한 친절의 힘

서울 삶

이따금씩 찾아오는 공허함은 익숙함이 없어서 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새로 살게 된 집이나 동네를 알아가는 재미는 너무나 쏠쏠하지만, 익숙한 사람이 없다.

대구에서 자주 만나던 친구들, 매일 가던 체육관, 단골 카페 사장님 등등.

훌쩍 떠나기 직전 2월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적이게 지냈어서 그런가 그 대비에서 오는 공허함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이는 동시에 새롭게 채워갈 빈자리가 생겼다는 것이기에 마냥 우울하거나 나쁘지는 않다. 지나가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잔잔히 그리고 재밌게 채워가는가는 나의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본다.


귀에서 계속 바스락 소리가 나서 집 앞 연합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의사 선생님과 데스크 선생님 모두가 친절해서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이거... 말투 때문인가..? 경상도에서만 살아서 내가 얼마나 강한 말투로 사람들과 소통했는지 실감을 못했었나..


사도 그만 안 사도 그 만인 약을 사러 약국에 들렸는데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 약사님들이 서 계셨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약인 듯 조금 시간이 걸렸고 어떤 병이 담긴 봉지에 약을 담아주셨다.


"어.. 이거 뭐예요? 제 거 아닌데요..?"


"서비스~"


비타 500을 서비스로 끼워주는 약국은 처음이었다. 순식간에 마스크 안에 웃음이 번졌다. 우렁차게 인사를 하고 신나게 문 밖을 나섰다.


카페에서 스트레스받는 자소서를 쓰던 중 예매한 콘서트 티켓이 배송 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티켓은 직접 전달이 원칙이라 멀지 않은 카페에 있었기에 얼른 집 앞 골목으로 뛰어갔다.


"어..!! 천천히 와요!! 뛰지 마요~~~

오늘 날씨가 좋죠~~? 이거 많은 사람들이 만진 봉투니깐 얼른 티켓만 꺼내서 봉투 버리고! 손 잘 씻고! 코로나 조심해요~~"


아빠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시는 배송원분께서 웃으며 안부를 물어주시고 코로나를 걱정해주시는데 따뜻한 상냥함에 조금 놀라 멈칫했다.

모르는 상대가 전하는 온기가 생각보다 더 뜨거웠고 순식간에 마음까지 흘러 기분이 몰랑해졌다.


오늘은 운이 좋은 하루였다.

집 밖에 나가면 낯선 환경과 사람들 틈에서 모든 신경세포가 곤두서 있는 예민한 개인 모드로 생활을 하는데 사소한 친절에 철통 같은 방어막이 한 커플 풀어졌다.


타인의 상냥함에 익숙하지 않은 서울에 점점 정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두려움보단 기대가 앞서는 하루다. 사소한 친절은 참 큰 힘을 가진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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