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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몽인 Mar 04. 2022

향을 향유하다

서울 삶

어제는 경복궁의 북쪽을 둘러보았다면, 오늘은 서쪽으로 향해 서촌을 갔다.

홈메이트이자 유일한 서울 친구와 함께한 첫 번째 데이트 장소는 서촌의 '그랑핸드'였다.

우리 집 거실에는 그랑핸드의 규장 멀티 향이 은은하게 퍼져있는데 매장에는 더 다양한 향이 있었다.


사실 난 코가 매우 예민해서 미세한 향도 세게 느낀다. 학생 때부터 향 강한 핸드크림도 바르지 않았고 특색 있는 향수를 쓰는 사람들과는 오랜 시간 대화를 하지 못했다. 당연히 향수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어 친구들이 줄줄 외우는 향수 이름 하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우와, 저 사람 향 뭐야?' 했던 순간은 테라로사에서 일하던 시절, 바리스타 한 분이 내 뒤를 지나가는데 무슨 나무가 스윽 지나가는 듯한 향이었다. 그때서야 '우드향'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은근히 중성적이고 따듯한 향이 기분을 몽글하게 만들었다.


가끔 구제 옷집이나 카페에 갔을 때 풍기는 절향, 숲향, 우드향 등에 차분함과 동시에 기분 좋음을 느끼게 되었고 향수를 쓰는 사람들이, 향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홈메이트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 매장인 '그랑핸드'를 졸졸 따라갔다가 또 다른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종이에 뿌렸을 때, 손목에 갓 묻었을 때, 그리고 시간이 지났을 때 냄새가 제각각 달라서 매력 있었다.

마치 뜨거운 커피, 미지근한 커피, 다 식은 커피 맛이 다 다른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홈메이트가 졸업 선물로 하나 선물하겠다는 말을 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향 찾기에 돌입했다.

첫 향수가 될 거라 생각하니 괜히 긴장되고 더 집중해서 사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


가장 유명한 수지 살몬은 포근했고 마린 오키드는 청량했고 익숙한 규장 멀티는 따뜻했지만, 내 이목을 계속 집중시키는 향수는 트와베르였다.


트와베르의 향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 식물관 B관의 입구문을 열자마자 높게 뻗은 열대나무에 시선이 갔다. 열대나무의 맨 위 이파리는 전면 유리로 된 천장과 거리가 얼마 차이 나지 않아 보였고, 그 끝에 시선이 다다르자 목뒤가 뻐근해져 고개를 숙였다. 길 양옆으로 식물들이 빽빽하게 늘어섰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초록과 어우러져 화려한 색감의 식물들이 뿜어내는 수분기 있는 싱긋한 향이 진해졌다."


정말 풀향과 식물향이 진하게 났고 처음 뿌렸을 때는 조금은 스파이시했지만, 알코올이 날아갈수록 남는 향이 초록한 여름이 떠올랐다. 손목에 뿌린 지 5시간이 지난 현재, 다른 어떤 향보다 더 매력적이고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이미지와 적합했다.


데일리하고 편하게 누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향이라면 단연 수지 살몬 이었겠지만, 나한테 향수는 특별하게 보이고 싶을 때 뿌리고 싶었다.

"나 이런 사람이에요."라고 캐릭터화 시키고 싶은 욕구가 담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트와베르'향을 골랐다.

우드향도 좋지만, 깊은 겨울 느낌보단 가벼운 여름을 더 선호하는 나에겐 물기 젖은 솔잎향이 더 이끌렸다.


사람들은 왜 향을 향유할까? 왜 굳이 인위적이게 향을 뿌리는 걸까?

이해되지 않았던 물음에 이제는 답을 할 수 있다.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 중에 향이 큰 차지를 하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각인시키고 여운을 남기고 싶을 때, 향처럼 강하고 인상 깊은 포인트는 더 없다.

동시에 타인이 없더라도 자신의 몸에 나는 향은 풍부한 기쁨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는 것이다.


트와베르 향을 톡톡 뿌리고 다니면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기억해줬으면 한다.


'아~ 왜 그 사람 있잖아요, 은은한 풀잎 향 나는.. 여름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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