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관한 고찰
20대 초반, 첫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20대 중후반 언니들은 정말 어른 같았다.
"난 이게 내 스타일이더라"
"아, 그거 해봤는데 별로였어"
자신의 취향이 뭔지도 알고 본인의 스타일이 정해져 있었다.
특히 식당이나 술집에 갔을 때 이름만 보고도
'난 이거'라고 정할 때는 메뉴판 앞에서 어리바리 설명을 읽거나 시그니처 메뉴만 시키는 나에겐 약간의 선망의 대상들이었다.
취향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고유의 분위기란, 나도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생길 거라 여겼다.
5년이 지나 언니들의 나이가 되었고 나름대로 나만의 취향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언니들 모두 서울에 있어 성수에서 오랜만에 모였다.
피자 종류만 한 페이지에, 파스타, 맥주 등 오롯이 글로만 적혀 있는 메뉴판을 보고 나는
'우와.. 뭐 먹지?' 하고 눈알을 열심히 굴리기 바쁠 때 이제는 30대가 넘은 언니가
"이거 먹어봐, 아마 맛있을 거야! 술은 난 이거 시킬래, 너는?"
"어.. 저도요!"
특히나 많은 곳을 여행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고 동시에 애주가인 언니의 픽에 군말 없이 따랐다.
나는 뭐 다 괜찮고 사실 무얼 먹어야 할지 갈피가 안 서 있었기에 화끈한 언니의 시원한 결정이 좋았다.
언니는 확고한 취향과 뚜렷한 개성이 매력이긴 했지만, 나를 더 자극시키는 것은
'본인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에 과감 없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인 점이다.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 문제가 아니었다.
5년 전에도, 지금도, 언니는 새로운 음식에 늘 도전하고 좋아하는 술은 다 맛보았으며 돈이 조금 모이면 훌쩍 여행을 떠났다.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아는 사람, 그리고 나아가 그 행복에 투자하여 진정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최근에 퇴사를 하고 다음 달에 제주도 여행을 간다고 했다. 물론 원웨이라서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일단 좋아하는 바다 액티비티 예약을 다 끝냈다며 설레어하고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언니는 그저 취향만 있는 게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 '제대로'된 취향을 건강하게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단순히 경험이 많고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 아는 것과 별개로 돈을 쓸 줄 몰라 아직도 파란색 컨버스를 못 산 나에겐 더 큰 깨달음이었다.
*파란색은 기본템으로 신지 못하니 가장 좋아하는 색임에도 늘 사지 못했다.
조금 더 벌면, 이 정도 벌면.
필수품이 아니니깐, 없어도 되니깐.
아니라, 좋아하는 취향을 만들어 가고 싶을 땐 자신에게 투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쓸 줄 아는 사람이 벌 줄도 알고, 취향도 있고 개성도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제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경험시켜 줄 든든한 언니가 가까이 살아서 좋다.
지금 내 나이에 서울을 마음껏 즐겨봐라는 언니의 말을 잘 따라야겠다.
그나저나 언니가 갑자기 제주도에 정착해 버리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되지만^..^